아나벱티즘의 정신, 세족식으로 전해지다.

관리자2026.05.13 06: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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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공동체는 아나벱티즘의 정신인 제자도, 공동체, 평화를 지향한다. 작년부터 공동체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세족식은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했다. 치유공동체에 입소한 형제님들과 사랑과 섬김의 교회에 출석하는 형제 자매님들이 교회 앞 잔디밭 위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발을 씻길 물을 담고 앉을 자리를 정리하며, 잔잔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를 맞이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세족식은 드문 경험이라 무척 낯설었다. 이번 세족식을 통해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발을 제대로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발을 이렇게 꼼꼼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물놀이하듯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어른들이 줄지어 찬양을 부르고 서로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발을 닦아주기 시작하자 이내 조용해졌다.

어색하게 바지춤을 걷어 올리고 양말을 벗어 물에 발을 담그며 낯선 미소를 짓던 형제님들도, 한쪽 무릎을 꿇어 자신의 발을 정성스레 만지며 닦아주는 손길 앞에서 이내 숙연해졌다. 말로만 듣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던 모습이 눈앞에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무릎을 꿇고 형제 자매님들의 발을 어루만지자,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이내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모두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말로만 겸손과 섬김을 이야기했던 나는, 남편의 발을 마주하는 순간 울컥했다. 중독으로 고생한 우리의 시간이 무려 10년인데, 단 한 번도 가정 공동체인 남편의 발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술을 향해 위태롭게 걸어가던 그 발이 마침내 멈춰 서서 내 손안에 들어온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라파공동체에서 말하는 평화, 아나벱티즘 신앙을 가진 이들이 고백하는 평화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중독으로 헤매는 가족을 원망하고 미워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회복을 향해 묵묵히 걸어온 발을 마주하며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순간, 마음속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형제님들은 저마다 서로의 발을 씻겨준 후 말없이 서로를 깊이 끌어안았다. 함께 병든 마음을 돌이켜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는, 나와 비슷한 세월을 살아온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며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아 훗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도 이때 배운 공동체로 하나되는 마음, 예수님의 제자된 마음, 그리고 평화의 마음을 삶으로 실천해 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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