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일, 교회의 사명입니다.

관리자2026.05.13 13:037

이 글은『월간목회』창간 50주년 기획특집 '한국교회 목회백서'중 교회의 '구제와 봉사' 부문과 관련해 라파공동체/사랑과 섬김의 교회가 걸어온 여정및 사역에 대해 기고 청탁을 받아 작성한 원고입니다. 2026년 6월호 게재 예정 원고입니다.

중독자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일, 교회의 사명입니다.

윤성모 (사랑과 섬김의 교회 담임목사 / 라파중독치유공동체 대표)

 

예수님께서 1995년 서른여섯 살 내 인생에 찾아오시면서 내 삶의 모든 것이 변했다. 예수님은 내게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 말씀하심으로 내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셨다. 그것은 나의 그리스도인 됨의 영원한 표식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제자로서의 삶을 결단하고 다짐하며 이를 실행케 하는 근원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기까지 당신의 살과 피를 나같은 죄인을 위해 내어주심으로 거듭남의 은혜를 입었기에 나 또한 새로 얻은 생명을 주님께 드리기로 작정하기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1997년 38살의 나이에 북아프리카 튀니지 단기 선교여행 중 주님은 나를 장애인, 노숙자,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사역으로 부르셨다. ‘튀니지 선교 사역의 현장으로 저를 부르신다면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할 때에 주님은 내게 장애인, 노숙자, 알코올중독자들의 영상을 보여주심으로 당신의 뜻을 내게 나타내 보이셨다. 그것은 마치 바울에게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과 같았다. 튀니지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와 나는 평신도로서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였고 2000년 5월부터 노숙자, 알코올중독자 돌봄 사역을 시작하였다. 2001년 영국의 <켄워드 트러스트> 마약·알코올중독자 치료공동체를 보름간 탐방한 이후 돌아와서 2002년 4월 1일 중독치료공동체인 라파공동체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라파공동체는 2002년 4월 1일 대전 삼성동의 30평 단독주택을 임대하면서 시작되었다. 5명의 노숙자, 알코올중독자, 장애인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본격적인 공동체 돌봄치유선교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로다”(마 6:33)의 말씀에 의지해 두려운 가운데 사역을 시작하였다. 예수원 설립자인 대천덕 신부의 본을 따라 먹을 것, 쓸 것 위해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겠노라고 결단하고 시작한 사역이었다. 극한 가난에 처해 있었지만 신실하신 주님은 먹을 것을 떨어지지 않게 하셨고 옷이 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채워주셨다. 2004년 대전 대사동 500평 부지의 오래된 유치원 부지로 전세자금을 마련해 옮겨 주셨고, 2011년에는 지금의 1,400평 옥천 부지에 120평의 교회·공동체 건물을 신축하여 입주하게 하셨다. 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의 추천으로 2001년 신대원에 입학하였고 졸업한 후 2004년 6월 10일 회복자들과 그 가정으로 구성된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사랑과 섬김의 교회>를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9년에는 중독에서 회복한 이들과 함께 수도적 삶을 결단하고 중독치유사역을 감당하며, 소박하고 단순하며 청빈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예수의 단순한 삶 공동체>를 설립하였고 야마기시 양계를 중심으로 농업과 농촌 생활을 통한 재활 자립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2025년에는 <리커버리 빌리지(Recovery Village)> 비전을 선포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애쓰고 있다. 리커버리 빌리지는 말 그대로 ‘회복을 꿈꾸고, 회복을 이루고 누리는 사람들의 마을’을 이루려는 비전으로 신앙의 회복, 중독으로부터의 회복, 무너진 삶으로부터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을 경험하고, 회복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자는 비전이다. 이는 소멸 위기에 놓인, 죽어가고 있는 농촌과 시골을 살리고, 힘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갱신을 촉구하며, 중독으로 고통당하는 이들과 가족들에게 회복의 소망을 가져다 주려는 생명 살림과 갱신의 비전이다. 또한 나의 은퇴 이후 중독돌봄치유 선교 사역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25년 전 평신도로 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나는 20년 후에는 나와 같은 일을 감당하는 공동체와 사역자들이 200곳은 되리라 기대하며 기도하였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 중독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와 공동체를 발견하기 어렵다. 중독은 죄이며 병이다. 죄는 사함받아야 하고 병은 치료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여 주시면서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 같이 중독자들의 병도 치유되어야 하고 그들의 죄는 사함받아야 한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하는가? 교회가 감당해야 함이 마땅하다. 중독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이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한다. 그러나 사랑할 만한 것이 조금도 없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임은 자명하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18)는 말씀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일상 속에서 빛을 발해야 할 것이다.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선교여행을 떠난 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행 1:8, 마 28:19-20)에 순종해서였다. 그런데 그 땅끝에서 주님은 내게 새로운 “땅끝”을 보여주셨다. 장애인, 노숙자, 알코올중독자들이 주님이 내게 가라 하신 또 다른 땅끝이었다. 흔히 마태복음 28:19-20절의 말씀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최후 명령으로 인식하는데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마태복음 25장에서 또 다른 의미의 최종 명령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셨다. 곧 이 세상의 작은 소자들,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었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라 하셨고 이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이 곧 예수님 당신을 돌보고 섬기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중독자들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소자”들이다. 그들은 중독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었거나 잃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산과 건강을 잃었고 가족관계, 직장관계, 사회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등 모든 관계가 산산히 깨어지고 부서졌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 내몰려 있다. 이들의 끝은 비참한 죽음이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라”(잠 24:11)는 말씀은 이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를 특징지어 “중독 사회”, “중독 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알코올, 도박, 마약, 인터넷, 쇼핑 중독에 빠져든 이들의 숫자가 1,000만명을 상회한다고 한다. 교인들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중독자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핸드폰에 어린 시절부터 노출되면서 인터넷으로 인한 각종 중독에 너무 쉽게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독은 영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우상 숭배”에 해당한다. 그러니 우상에 빠진 하나님의 자녀들,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일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사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대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구제와 봉사는 교회다움의 표징이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 예배 공동체이면서 사회적 차원에서는 구제와 봉사의 공동체였다. 구제와 봉사는 교회의 가장 강력한 선교 활동이기도 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교회의 구제와 봉사는 그리스도를 세상 속에 육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통로인데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제와 봉사를 통해 육화된 사랑을 경험한다. 중독은 치유가 몹시 어려운 정신장애(Mental disorder)로서 정신병동에서의 치료조차도 한계가 있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중독을 치료하는 가장 유력한 모델은 <치료공동체>이다. 중독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 생활을 하는 가운데 교육(teaching), 상담(counseling), 훈련(training)을 통해 중독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독교 치료공동체>는 여기에 말씀, 기도, 교제, 증거의 삶을 일상 가운데 구현할 수 있으므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치료 세팅이 된다. <치료공동체>의 핵심은 중독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려는 이가 중독자들과 일상의 삶을 함께 나누고 공유함으로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는데 있다. 그것은 엄청난 헌신을 요구한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마 16:24) 십자가의 헌신의 길이다. 중독자들과 일상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다 내어주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다 내어주신 삶을 원형 삼아 우리들도 타인을 위해, 죄인들을 위해, 중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다 내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골 1:24)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된다. 바울이 말한 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일이며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롬 12:1)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독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그들을 치유하고 돌보는 일을 감당하며 얻는 가장 큰 유익은 나의 믿음과 인격이 성장하고 성숙해 간다는 점이다. 내 삶의 전 과정과 영역을 점점 더 주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에 맡기고 의지하는 신앙이 되어 간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에 대해 더 배우고 알게 되며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함”(빌 3:10)과 같은 삶을 살아내게 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해 그러한”(갈 6:14) 삶을 살아내는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중독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일에서 필요로 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영성과 전문성이다. 영성의 핵심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를 마음에 새겨 실천하는 힘과 능력으로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계명을 삶 가운데, 사역 가운데 실천함을 말하는 것이고, 전문성이란 정신과 의사들의 치료 대상인, 정신장애의 일종인 중독과 중독자에 대해 전문가적 식견과 역량을 길러야 함을 말한다. 심리학, 상담학, 정신분석학에 대한 깊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한 소이이다. 목회자들은 설교를 통해 중독문제를 다룰 수 있다. 그것은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접근이 될 수 있다. 상담역량이 구비된 교회는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 교회>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을 위해 고안된 영적 프로그램인 AA 12단계 프로그램을 교회 안에 적용해 다양한 자조모임을 활성화함으로 중독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독교와 교회는 인적, 물적 자원을 모아서 <기독교 중독치료공동체>를 세우고 운영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시급하게 돌봄과 치유가 필요한 이들이 적어도 100만명 이상이 될 터인데 이들을 중독 환경으로부터 격리된 안전한 환경으로 초대하여 회복으로 안내할 <치료공동체>가 적어도 200개 이상이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해 마약중독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공동체의 필요성이 국가적으로 제기되었을 때 기능하고 있던 마약치료공동체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화가 되어 오히려 해당 지역 주민들에 의해 문을 닫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이고 민낯이었다. 이러할 때 교회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한 섬김과 봉사의 마음과 문을 활짝 열고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들도 중독자들에게로 낮아져 죽기까지 순종하며 그들을 섬겨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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