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이야기 - 아들의 첫 걸음
“아들아, 고맙다.”
우리 공동체에 아주 앳된 형제님이 찾아왔습니다. 어쩐 일인지 새하얗게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밥도 먹지 않고 방 안에 들어가 도무지 나오지를 않아 모두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입소 상담을 마치시고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셨습니다.
“31살 도박중독자라고 합니다. 부모님께서 목회를 하시는데, 자라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중독에 빠져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잘 적응해야 할 텐데, 영성 형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잘 지낼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 후로 우리는 영성 형제와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눈치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방 문 여닫는 소리가 나면 혹여나 나오나 들여다보고, 밥을 안 먹으면 계단으로 발걸음을 돌려 올라가 문을 두드리고, 커피를 마실 건지 묻기도 하며 한 달가량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횟수도 점점 잦아졌습니다.
대청호 배가 들어선 저희 마을에는 금강변을 둘러싼 생태 사무실이 있는데, 제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 양손 가득 검은 짐을 든 영성 형제가 서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서늘했습니다.
결국 나가나…?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혹시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냐고 물으니 전혀 모른다고 하시며 말이라도 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말을 붙였습니다. 영성 형제만 모르는 007 작전입니다.
“형제님! 여기서 뵙네요! 어디 가는 길이세요?”
“아… 저… 그게…”
서로 얼마나 긴장하고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는지, 영성 형제의 다음 말을 듣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간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걸어서 내려왔어요. 30분이나 걸어야 하네요? 과자를 잔뜩 사고 버스 타고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아! 과자!
손을 보니 검은 비닐봉지 사이로 빼곡히 누워 있는 과자들이 보였습니다. 라파공동체까지 태워드리겠다며 차에 태우고 들어가는 길, 어색한 적막을 깨기 위해 솔직해져야만 했습니다.
“사실 집에 가시는 줄 알고 물어본 거였어요. 그런데 짐이 아니라 양손 가득 과자가 들려 있어서 너무 안심됐어요.”
잠깐의 정적 후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아이, 저는 나갈 길을 벌써 다 알아놨죠. 나갈 거였으면 몰래 나갔을 텐데 그러지 않으려고요. 모두 잘 대해주시고, 저도 이제 슬슬 적응해야죠.”
아, 은혜의 순간입니다. 충동이 많이 찾아오고 사회와의 단절이 두려울 나이에 이곳에 적응하여 도박중독을 치료하겠다고 마음먹은 형제님의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그 후 영성 형제님은 여러 형제님들과 어울려 탁구도 치고, 말씀도 묵상하고, 영농 작업도 하고, 상담도 받으며 지낸 지 어느덧 6개월가량이 되었습니다.
벚꽃이 흩날리던 때, 가족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잔뜩 상기된 얼굴로 어머니께서 오신다며 내일 계란 몇 판 싸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함께 포장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나누었고, 다음 날 어머니와 이모, 이모부께서 방문하셔서 영성 형제님과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 후 영성 형제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벚꽃이 저렇게 예쁜데, 지난날 어머니는 이렇게 늙으셨나 싶어 눈물이 났습니다. 꽃잎이 떨어지는데 우리 엄마의 젊은 날도 저렇게 지나간 것 같고, 내가 도박에 빠져 지낸 날들 동안 놓친 것들이 참 많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모두 그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언가 채우지 못한 채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결핍을 줄 때가 참 많습니다. 자녀들은 훨씬 자극적인 세상 속에서 자족하고 인내하기보다, 빈 공허를 빠르게 다른 것으로 채울 기회도 많습니다.
영성 형제의 지난날의 빈 공허에 대해 더 알아가고, 그 빈자리를 빠르고 자극적인 도박이 아닌 하나님으로, 공동체 형제자매와의 교제로, 가족과의 화해로 채워가며 회복의 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와 우리의 얼굴에도 웃음이 활짝 피었습니다.
이번 어버이날, 부모님을 뵙기 위해 떠나는 형제님은 각오가 비장합니다.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늘 가족의 예쁨과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의 걱정과 근심거리가 되었던 날들.
부모님 댁에 방문하기 전 큰 용기를 내어 형들에게 전화를 걸고 함께 부모님을 뵙자고 말한 용기 있는 동생이 되었습니다. 근심이었던 나에서 화해와 화평의 나로 바뀐 순간입니다.
에어컨 설치와 이전 작업을 했던 영성 형제님은 라파공동체 리커버리빌리지의 첫 시작이기도 합니다. 6개월을 맞아 이곳에서 다시 에어컨 설치 작업을 시작했고, 지난달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 월급으로 정산할 빚을 정리하고 생활비를 내자 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감동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들아, 고맙다. 스스로 일어서줘서 고맙다.”
평생 “아들아”라는 이야기가 귀에 쟁쟁히 들린 적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목회하시며 늘 어려우셨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이곳 라파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영성 형제님의 회복 스토리를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