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삭 1년 간증문
안녕하세요.
공동체에서 생활한지 어느새 1년이 된 성중독자 김이삭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날씨와 기온이 달라지고 몸의 컨디션이 달라지는 것처럼 제가 공동체에서 보낸 삶 속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라파에 오기 전의 삶보다는 공동체에서 경험한 사건들, 제가 일으켰던 문제들을 통해 깨달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타이핑하기에 앞서 6개월 간증문을 다시 읽고 타이핑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제서야 겨우 제가 중독자임을 인정하고 제가 느끼는 모든 중독의 가능성과 모든 문제를 다 끄집어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6개월 간증 시점에는 제 문제를 축소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의 '성중독'에 집중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6개월 시점에도 제가 성중독자라고 말하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명료하고, 솔직하게 해오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성적 자극이 주는 쾌감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있었고, 제 중독 문제를 인정하면 저라는 존재가 문제투성이고 사고뭉치고 성숙하지 못한 반푼이 어른아이임도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저라는 존재를 들어내는 것이 민망했고 '꼭 말로 해야 아나? 이미 다들 알고 있는거 아닌가? 굳이 이런걸 말하면 오히려 식구들에게 폐 끼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제 모습을 수용하지 않고, 숨기고, 감춤으로서 제 감정, 욕구, 생각을 은폐한 것이 오히려 관계를 파괴시키고, 이런 나에게 용기를 내서 다가와주는 공동체 식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임을 이제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제 '욕구, 감정, 생각'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므로 이것들을 느끼고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죄의식을 가졌었습니다. 또한 이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고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행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모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렇게 느낄 때 '저는 이런 욕구, 생각, 감정을 느끼는데 이렇게 느끼는 제가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어요' 라고 말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6개월이 지나고 고참 대열이란 것에 끼게 된 저는 회복이 많이 된 척, 괜찮은 척, 아무 문제 없는 척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회복자들처럼 당당하게 회복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회복자에 대한 저의 이미지도 왜곡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년 간증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또다시 '그냥 피곤해서 그랬나봐요' 라는 말로 저를 숨기고, 거짓말함으로 공동체 식구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저는 이제야 저를 들어내는 방법을 배워가며 회복의 첫걸음을 뗐습니다. 이제서야 공동체 생활 1년만에야 진정한 회복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저도 이곳 라파에서 회복의 삶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꿈꾸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얻은 기회를 붙잡고 회복의 길을 나아가길 원합니다. 1년을 저를 위해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어주신 목사님과 사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직이라는 것은 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을 성찰하며 붙잡고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가치임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라파의 6대 덕목 (정직, 순종, 겸손, 자족, 순결, 인내) 중 이제 하나를 배웠고 그 깊음을 알게되었는데 나머지 다섯 덕목도 깊게 깨달아 알고 싶습니다.
회복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음에도 저는 가족의 문제를 고민하며 가족이 달라지고 회복되어야 나도 달라지고 회복될 수 있다며 그 책임을 가족의 문제로 많이 돌려왔습니다. 제 상태를 거짓말하고 축소했고, 중독적 행위를 하기 위해 많은 합리화를 했으며, 내 중독의 문제를 부인하며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제 문제를 가족 탓, 즉 남탓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중독의 네가지 방어기제를 모두 사용하고 있던 분명한 성중독자입니다.
이번에 목사님이 아프신 것을 보면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것과 비교해서 가족들이 아플 때 제가 느꼈던 감정과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실 때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훨씬 많이 했었습니다. 나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는데 했더라도 그 생각, 그로 인한 감정을 억누르고 감춤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부모님과 진정한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태껏 제가 부모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한 이유가 부모님께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저에게 계속 용기를 내서 다가와 준 것처럼 제가 먼저 부모님과 형과 동생에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작은 형이 집 명의를 2년만 더 빌려달라고 한 것에 대해서 제 이야기를 하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렇게 거절하는 것이 내 이기적인 욕구라고 생각했고, 내가 불편한 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거절하지 못했었습니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내 이야기를 하며 거절하였을 때 형이 제 생각보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진정한 회복의 길이 이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간증을 아버지가 듣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했는데 못오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이제 어떻게 살거냐며 네 나이의 다른 애들은 연봉 4,5천씩 받고 있는데 너는 뭐하고 있냐"며 책망하실 때, 내 문제를 최대한 솔직하게 용기내어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항상 야한 생각에 시달린다고, 그것과 싸우느라 여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나는 다른 것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준이 형제님이 가족들에게 라파에서 배운 것을 계속 전달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몰랐는데 제 이야기를 정직하게 용기내어 말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저를 얼마나 수용해주었고, 이런 문제투성이 저에게 계속 다가와주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여태껏 그런 식구들에게 상처를 주어온 제 모습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저의 원가족을 대신하여 저의 가족이 되어주려고 애쓰는 공동체 식구들이 정말 고맙고 좋습니다. 그럼으로 지금부터라도 매일매일 정직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며 공동체 식구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제 문제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핵심은 '성중독'이고, 또한 '관계중독'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부정적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공상'이 포함된 여러가지 것 (잠, 미디어, 게임)을 통해 현실도피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제 문제라고 얘기해왔던 공황장애도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쌓아둠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성적 공상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를 했고, 손톱에 성기가 다치고, 부어올랐을 때도 자위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10대 때 수련회 같은 곳을 갔다오면 이제부터 성적 공상에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자위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하루도 안 되어서 무너지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죄책감에 힘들어하면서도 그런 삶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파에 오기 전 혼자 살 때는 '이렇게 사는 것이 뭐 어떤가? 성욕을 원동력으로 오히려 더 열심히 살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죄책감을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이성을 만날 때는 성중독 뿐 아니라 관계중독의 문제도 엮여서 상대를 소유하고, 의존했습니다. 서로의 욕구만 채워주는 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서 오히려 관계가 깨어지는 경험을 계속 해왔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전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고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관계를 끊었음에도 그 친구의 삶이 부도덕적이어서 끊어낸 것이라고 나를 속이고 합리화했습니다. 계속해서 제게 남아있던 신앙과 양심이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음을 경고해왔지만 이성을 만남에 있어서 내 욕구를 우선해서 제 성도착증을 받아줄 수 있는 이성을 최우선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중독으로 인해 성화된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을 사람으로,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고 성적인 것과 연관시켜 성적 공상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내게 돌봄과 위로를 제공해 줄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저번 복숭아 나무 훼손 사건을 통해 제 안의 지배 통제 욕망을 깨닫게 된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저의 성중독과 관계중독은 제가 이성과의 관계에서 돌봄과 사랑을 받으려면 상대에게 성적 만족을 주고, 상대의 모든 고민과 어려움의 책임을 느끼면서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왜곡된 사고를 제 기본 사고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삶을 살 때 저는 이정도면 제가 정직하다고 저를 속이며 살았습니다. 문제를 지적당하면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저는 제 문제를 계속 축소하고 합리화했음을 이제 알고 고백합니다. 이전에 사모님 수업 때 자꾸 내 성도착증을 다루며 나를 성중독자로 몰아가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감정관찰일지에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중독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숨기고 축소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큰 고민과 고통을 목사님, 사모님 및 공동체 식구들에게 안겨드린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계속 하게되는 말이라 부끄럽지만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관계의 시작은 내가 나로 바로 서는 것이지 문제들로 얼키고 설키는 것이 아님을 이제 알았습니다. 전 중독적이지 않은 삶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중독의 문제와 평생 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내 성중독과 관계중독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아직 막막하지만 일기쓰기와 감정 관찰하기, 정직하게 내 감정과 존재를 표현하기, 내 감정을 가지고 기도하기 등의 무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중독과 싸워나가다보면 점차 중독적이지 않은 진정한 나를 결국에는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삶을 꿈꿉니다.
이제 저는 공동체를 제 삶의 기반으로 세상에 나가서 사회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순간순간 제 문제를 직면하게 될텐데 제가 정직하고 솔직할 수 있기를 그리고 재발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공동체를 이용하지 않고, 공동체에 대한 감사와 소중함을 마음으로, 행동으로, 물질로 표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럼으로 제 삶을 제가 스스로 처리하는 경험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삶의 자신감을 갖고, 얼키고 설켜 의존된 가족과의 고리를 끊고 바로 서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많은 기도와 응원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