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0)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0)
박성철은 한국교회와 기독교 극우화의 문제를 탈근대 파시즘과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1980년대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부상한 탈근대 파시즘 – 히틀러로 상징되는 근대 파시즘과 구별되는 – 은 21세기 들어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확장해 왔는데 한국의 기독교 극우 세력도 그 영향 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민족주의, 인종주의, 능력주의, 극단적 권위주의 등이며 사회적 위기상황이나 극단적 갈등 상황에서 빠르게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민성을 보이며,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경제적 양극화와 노동 시장의 불완전성 등에 기대어 세력을 얻고, 가상의 적을 상정하거나 희생양을 만드는 방식으로 권력이나 사회적 헤게모니를 획득하려 하고, 혐오와 차별을 선전 선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파시즘은 통상 정치적 메시아주의와 연결되는데 정치적 메시아주의란 “현실 정치를 대표하는 지배자를 신적 통치의 대리자로 여겨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상”을 말하는데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한국에서는 윤석열이 그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고 봅니다. 정치적 메시아주의는 필연적으로 교회의 정치도구화를 촉진하게 되는데 지난 3년 동안 한국의 극우 기독교 세력은 윤석열 정권의 비호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며 기독교회를 과잉 대표해왔다는 것입니다. 박성철은 한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다층적 사회정체성”과 “억압의 상호교차성”을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한국 현대 사회의 특징이 탈근대 파시즘 생성의 사회 구조적 토대가 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개념으로 20대 남성(이대남)이 탈근대 파시즘의 주요세력으로 포진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장동민은 한국 기독교의 극우화 현상을 “영성의 부재와 왜곡”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 궁극적 실재를 인식하며, 그 혹은 그것과 관계 맺으며 사는 사람의 지향성”인데 이를 초월자에 대한 열망, 내면의 변화 추구, 타인이나 자연에 대해 열린 마음, 기도와 명상 등 영성을 위한 실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성령론”의 활성화를 주장합니다. 흔히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는 영적 능력을 추구하고, 진보적 교회는 지성과 행동을 강조하는 특성을 보여왔다고 평가되는데 사실 이 두 특성은 성령 안에 통일되어 있는 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개인의 영성을 함양하고 공공의 영성을 진작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그는 동방 신학이 주장하는 성령론을 소개하는데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서 구속을 넘어 창조와 역사를 주관하시며, 예술, 과학, 정치 영역에서 역사하시며, 우주 안의 모든 생명 활동의 주체이시며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와 민족공동체의 사고와 정신을 엮어 주시는 영”이시므로 바른 성령론을 배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영적 생활이 이루어질 때 교회는 현대 사회의 문제인 배제와 분열을 극복하면서 차이를 인정하고 일치를 이루는 포용의 공동체, 타자를 환대하는 환대의 열린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기독교는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세상의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가, 이들과 연대하여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끼고 통회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한국 교회는 반공과 시장경제 이념에 기대어 교회와 국가가 동반 성장하는 시점도 있었지만 지금은 역사의 심판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고 진단하면서 체제순응적 영성, 교회내에 머무르는 영성을 벗어나 바른 영성, 공공 영성을 회복하고 진작할 것을 촉구합니다.
위와 같은 내외적 조건 속에서 성장한 한국 보수 기독교는 1990년대 김진홍 목사를 위시한 일단의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합니다. 김진홍은 뉴라이트의 출범에 대해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는 세상을 교정하기 위해서 였다” 라고 말하는데 그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 뉴라이트 기독교는 건강한 보수를 넘어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쳐 극우 파시즘의 행태를 띠기에 이르렀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음모설’이나 ‘주사파에 의한 국가장악과 북한추종설’에 이를 때쯤이면 도무지 대화 가능한 일말의 합리성마저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그들의 현실 인식은 지극히 왜곡되었거나 심지어는 망상적이기조차 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입법, 사법, 행정, 군대, 언론 등 모든 기관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이 주사파에 의해 장악되어 있고, 이들 주사파가 중국 공산당과 커넥션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불순한 체제를 깨부수기 위해 폭력을 통한 혁명조차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기꺼이 순교하겠다는 것입니다. 체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정당의 이름이 “국민혁명당”이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지난 2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재판 선고가 이루어지기 이틀 전 제게 카톡으로 보내온 기독교 극우 세력의 기도요청문을 공유합니다.
윤대통령 선고 D-2일
(받는 즉시 소리 내어 기도하므로 기도를 모아주세요)
1. 주님! 대한민국의 소망은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아니라 배도의 죄, 우상숭배, 물질숭배, 음란 죄, 태아살인, 등의 온갖 죄악으로 하나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목회자들은 종이 아닌 어느새 종교 CEO로 둔갑하여 엘리 제사장처럼 영적으로 둔하여 이제는 그들이 받을 심판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 교회들의 이 태산 같은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긍휼을 구하며 연합하여 드리는 믿음의 중보기도들을 기억하사 용서해 주시고 불쌍히 여기사 회개와 회복의 은혜를 다시 한 번 허락해 주시옵소서.
2. 주님! 국민들이 지귀연 판사님의 입만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께 소망을 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분의 마음을 다스리시고 주장하사 곧 무너지고 사라질 허망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역사 속의 권력은 순간이지만 역사는 최종을 평가한다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역사가 내릴 준엄한 평가 앞에 부끄럽지 않을 선고를 내리도록 하늘의 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주님, 내란과 관련하여 이미 여러 사람들이 과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그 정치적 판결들에 영향받지 않고 법치의 역사가 요구하며 증명한 공정과 정의의 판결을 할 수 있도록 진실 편에 서는 믿음과 담대함을 주사 지귀연 판사님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3. 주님! 윤대통령께서 초등학교 시절 교회는 다녔지만 그후 50년 동안 예수님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 돌아와 주님 없이 산 삶의 덧없음과 권력의 허무를 깨닫고 회개하며 나라와 민족과 이 땅의 젊은이들을 주님께 맡겨드리며 기도하고 있사오니 주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재 대신 화관을 씌워주시옵소서.
주님!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면 그냥 버티다 임기를 마쳐도 될 것을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나라의 속을 들여다 보니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곳곳에 붉은 마수들의 손길이 안 미친 곳이 없이 늪에 빠져버린 나라를 보며 국민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깨워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실제로 자신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주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약속하셨으니 주님! 자신의 영화 대신 나라 살리기를 선택하신 윤대통령님의 혹독한 댓가 지불이 이 고통과 풍랑의 소용돌이를 지나면서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많은 선한 열매들로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
4. 주님!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약속 하셨으니 부정선거가 기적 같은 방법으로 밝혀지게 하시고 에이웹과 미르시스템, 선관위 등의 거짓과 조작들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뽑지 않은 자가 정치인이 되는 일이 없도록 투명한 공명선거를 통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자들이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젊은 청년들이 이 나라의 자유를 지키는 주역들이 되게 하시고 거짓과 불의 그리고 자유의 박탈과 싸우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거듭나는 소망의 세대가 되어 우리나라 좋은 나라로 만드는 주역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서부지법 사태의 43명의 수감 중인 청년들이 범법자가 아닌 자유 민주 수호자들로 반드시 그 지위가 변화되는 때가 오게 하시고, 군의 명령 체계에 의해 계엄지시를 따르다 갑자기 파면되어 연금도 박탈당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참 군인들의 명예가 회복되도록 이들을 기억하시고 축복해주시옵소서.
6. 주님! 주님은 언제나 옳으시고 100% 옳으십니다. 우리의 원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도도히 주의 역사를 완성해 가시며 통치하시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히틀러와 스탈린, 마오 최근의 마두로까지 무소부재의 권력의 칼을 휘둘렀지만 역사는 그들을 몰락한 악인으로 기록하고 평가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자유의 상징으로 펄펄 살아있는 본 훼퍼 목사님과 챨리 커크는 생
명의 영향력이 되어 지금도 자유를 낳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언제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초신자 윤대통령님이 자신의 안위가 아닌 나라를 위해 드리는 그 간절하고 마음을 찢는 애통의 기도를 기억하여 주시고 전국 각지에서 연합하여 함께 드리는 기도가 주님께 상달되어 응답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수기 14장28절)
(ps: 주변의 기도 하시는 분들에게 전하여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모아주시기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생각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그저 단순한 다름의 문제일까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기독교 극우화의 문제는 다름의 차원을 넘어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함께 어떻게 공존의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존을 위한 기준이 있을 수 있을까요? 스탠리 하우워어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사무실 문에는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에서 보내준 액자가 걸려 있는데 고통스러워 보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그 그림 아래에는 “평화를 위한 겸손한 제안 :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서로 죽이지 않기로 결심하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 제안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닐까요. 서로의 생각이 아무리 다를지라도, 혹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제기된다 할지라도 ‘서로 죽이지는 말자!’, ‘적개심을 품고 상대를 대하지는 말자!’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