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9)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9)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국 기독교의 극우화 현상을 분석하고 아나뱁티즘의 시각에서 제 나름의 답을 찾으려 했는데 어느새 지면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한국 기독교의 극우화  현상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분출되었고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써온 글 속에 이 현상에 대한 개괄적 답이 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려면 한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두 권의 책을 소개함으로 제가 하려 했던 작업을 가름할까 합니다. 한 권은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권수경 외 6인, 야다북스, 2025년)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시온주의의 역사」(도널드 M루이스저, 홍수연 역, 새물결플러스, 2024년)입니다.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는 <기독교윤리실천본부>에서 주관한 여섯 차례의 공개 강연을 책으로 엮어 출간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한국 기독교가 걸어온 140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기독교 역사 속에 이미 기독교 극우화의 씨앗이 깊이 뿌려져 있음을 확인합니다. 권수경은 이것을 “우상 숭배”의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한국 기독교 140년의 역사는 “민족의 고난과 광복에 기여하고 복음을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긍정적 역할을 잘 수행하여 왔지만 동시에 “민족사를 정의, 평화, 공평, 자비 등의 보편 가치에서 이탈시키는 일도 많았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 해악의 중심에는 “우상 숭배”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일제 말 천황 숭배와 신사 참배의 우상 숭배가 있었다면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에는 “권력 우상, 재물 우상, 이념 우상”을 섬기며 기독교와 교회가 성장해 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기독교와 교회는 국가의 기독교화를 추진하면서 국가, 정권과 한 몸이 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정치민주화가 달성된 1987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세가 급격하게 증가한 70-80년대, 주류 기독교는 ‘산업화 이념과, 반공주의 이념’을 군사독재정권과 공유하면서 정치권력과 깊이 결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권수경은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와 대학생 선교회 CCC의 창설자인 김준곤 목사를 적시합니다. 이들은 박정희의 3선 개헌이나 10월 유신을 통한 유신 헌법의 제정과 정권 영구화 시도를 앞장서서 찬성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했던 군사독재정권에게 명분을 쥐어주고 기독교는 강력한 정권으로부터 전도와 선교, 포교의 자유를 획득합니다. 전군의 신자화 계획을 추진하고, 빌리그레이엄 초청 집회를 개최하며, 커다란 기독교 회관을 짓고, 기독교 사학들이 설립되기 시작합니다. 1966년 김준곤에 의해 시작된 국가조찬기도회는 기독인 실업회와 결탁하여 정권과 기독교와의 검은 유착을 공고히 고착시키고 한경직에 의해 민족과 교회가 동일시 되어 성시화 운동이 시작됩니다. 독재 권력과 유착하고 결탁한 기독교는 복음의 급진성과 전복성을 잃어버리고 반쪽 복음으로만 기능하게 됩니다. 정의, 평등, 인권, 평화 등의 복음 본래의 가치가 진작되지 못하고 정권 방어적 입장에 서서 이것을 주장하는 세력을 불순 세력, 용공 세력으로 몰아감으로 반(半)복음에서 반(反)복음으로의 일탈을 스스로 고착화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흐름이 오늘의 기독교 극우 세력이 발흥하는 역사적, 신앙적 근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옥성득은 개신교 140년의 역사를 기독교 근본주의의 수용, 발전, 왜곡의 역사로 개관하면서 이를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 근본주의와의 상관성 속에서 고찰합니다. 개신교 역사를 특히 1910, 1945, 1990년을 기점으로 구분하여 영미 복음주의 수용(개화기), 미국 근본주의 수용(항일독립투쟁기), 반공 근본주의의 성장(냉전 분단기), 그리고 신우파의 성장과 근본주의의 극우화 시기로 나누어 자유주의(진보주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근본주의가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를 추적합니다. 권수경이 개신교 140년의 부정적 역사를 기독교가 국가, 정치권력과 유착, 결탁하여 “권력 우상, 재물 우상, 이념 우상”을 섬겨온 과정으로 정리했다면 옥성득은 그와 같은 오점을 갖게 된 이유와 원인을 신학적 차원에서 치밀하게 분석하고 논증합니다. 한국 개신교는 1910년부터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 근본주의와 강하게 연결되어 냉전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르기가 되었고, 군사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정치적 행보를 통해 교회의 성장을 일구어 냈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인의 구원과 기복 신앙을 강조하는 경향이 심화 되고 사회적 불평등과 권위주의 체제를 용인하며, 현실의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평가합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좌파 운동에 자극을 받은 근본주의자들은 1990년대 이후 뉴라이트 운동 등을 통해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미국의 기독교 극우 운동과 결합하여 현재의 기독교 극우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배덕만은 미국 트럼프 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가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이들과 한국 개신교 극우 세력이 어떻게 인적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정리합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처음 출마할 즈음 미국 복음주의 진영 내에는 “미국은 나락에 빠졌고”, “기독교가 공격받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에 트럼프가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 종교적 쟁점을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양자 간의 강력한 동맹이 결성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 제조업의 쇠퇴로 타격받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를 기치로 트럼프와 강력한 동맹을 구축하게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이들은 트럼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의 성품도 의혹투성이인 것을 모르지 않지만 정치적 좌파로부터 “기독교적 미국”을 구하고 방어하기 위해 트럼프를 하나님이 선택한 “현대판 바사의 고레스”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 민족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편파적 지지에 안도하며, 트럼프의 비도덕적, 폭력적 의식, 발언, 행동, 정책에는 관대하게 반응하며 전쟁, 무기, 환경, 복지, 세금 문제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12.3 비상 계엄을 단행한 윤석열 대통령을 대하는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행태는 트럼프에 대한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태도, 곧 정치적 메시아주의와 너무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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