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4)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4)
<갈릴리 신학>은 갈릴리 시골을 공간적 배경으로,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 도시 문명과 종교 권력에서 떨어진 주변부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삶을 원형삼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을 정립하려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갈릴리 신학은 ‘삶의 양식’으로서의 신학 (Form-of-Life Theology)입니다. 갈릴리 신학은 교리와 율법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삶의 양식’으로 드러나는 신앙입니다. 설교, 교리, 제사와 같은 종교 의식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 공동 식탁, 환대와 나눔, 느린 시간,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통해 복음을 살아내는 신앙이자 신학입니다.
2. 갈릴리 신학은 장소의 신학 (Theology of Place)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 장소에서 펼쳐집니다. 특정 지역, 특정 공동체, 특정 삶의 리듬 속에서 육화합니다. 도시는 속도-익명성-경쟁-효율-소비로 특징되고, 농촌과 시골은 얼굴-이름-관계-노동-계절로 특징되는데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후자의 가치가 인정되는 공간 속에서 꽃을 피웁니다.
3. 갈릴리 신학은 탈도시·탈제국 신학 (Post-Urban & Anti-Imperial Theology)입니다. 갈릴리 신학은 자본, 국가, 기술, 군사력으로 유지되는 도시 문명과 제국 질서로부터 거리를 두고 다른 질서를 창조합니다. 탈도시, 탈국가 시도를 <도시 신학>, <예루살렘 신학>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요 은둔주의로의 퇴행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갈릴리 신학은 도피와 은둔이 아니라 탈출(Exodus) 신학의 현대적 적용입니다. 큰 도시, 타락하고 부패한 바벨론으로부터의 탈출을 계시록은 긴박한 목소리로 촉구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4. 갈릴리 신학은 주변부의 신학 (Theology of the Margins)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중심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변방, 예루살렘 종교 권력의 주변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 속에서, 야훼 신앙이 떠돌이 하삐루 속에서 시작된 것처럼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주변부, 주변인들 속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갈릴리 신학에서 중요한 점은 주변부가 중심부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변부가 주변부로 남을 때 중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갈릴리 주변부 신학의 핵심입니다. 갈릴리 신학은 중심을 지향하지 않고 반대로 지양합니다. 갈릴리 신학은 그러므로 광야의 영성, 예언자 영성을 담지합니다.
5. 갈릴리 신학은 비폭력과 단순성의 신학 (Theology of Nonviolence & Simplicity)입니다.갈릴리는 힘이 아니라 생명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메시지의 핵심 중의 핵심은 “원수 사랑”입니다. 핍박하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처형으로 절명하는 순간에도 처형자들을 위해 기도하심으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셨습니다. 로마 당국의 국가 폭력과 예루살렘 종교 권력자들의 폭압에 비폭력으로 맞섰습니다. 제자들과 함께한 유랑 공동체의 일상을 통해 예수님은 자족의 삶, 먹고 마실 것이 있으매 감사한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6. 갈릴리 신학은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 신학 (Healing Community Theology)입니다. 갈릴리는 병든 사람이 치유되고 상처 입은 인간이 회복되는 공간입니다. 죄인들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배제와 소외를 벗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신학입니다. 죽었던 아들이 돌아오고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이야기가 실현되는 공간의 신학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형제와 자매’가 되어 하나님 나라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신학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갈릴리 하나님의 나라에는 바리새인, 제사장, 서기관과 같은 종교 권력자, 성직자들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의 평등의 공동체, 상처 입은 자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돌봄의 공동체,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내어주는 섬김과 공유의 공동체를 통해 드러납니다.
7. 갈릴리 신학은 종말론적 희망의 신학(Eschatological Hope Theology)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최종적 구원, 곧 하늘로부터 임할 새 예루살렘은 새 갈릴리의 완성입니다. 어린 양 그리스도가 이루실 최종적 구원, 최종에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공중에 들려 올라갈 하늘의 나라가 아니라 이 아름다운 지구에 하늘로부터 임하는 새 예루살렘 성이 될 터인데 거기는 성전 없는 도시요, 차별과 배제, 병듦과 아픔, 눈물이 없는 공동체요, 폭력 없는 질서가 이루어지는 곳이 될 것입니다. 죽음의 문화, 문명이 아니라 생명의 문화가 꽃피우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생명의 땅이 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살아내신 갈릴리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이 우주적으로 구현되는 새 시대 –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준비하고 실행하는 - 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