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3)
<도시 신학>은 도시와 도시인을 대상으로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도시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신학입니다. 이에 비해 <시골 신학>은 도시 문명 자체로부터 거리를 두고 시골에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대안문명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신학입니다. 도시 신학은 자본주의-속도-경쟁-효율성-소비-익명성-중독 문제 등으로 표현되는 도시의 구조를 바꾸거나 이러한 삶의 양식을 거스르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그리스도인의 Colony를 도시 안에 세우려는 신학입니다. 도시 신학은 그러므로 국가와 문명, 사회와 문화를 변혁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이에 비해 시골 신학은 국가와 문명, 사회와 문화를 변혁시키려 하기보다는 그것들과 거리를 두고 그것들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다른 삶의 공간, 다른 삶의 양식을 이루며 살겠다는 신학입니다. 자급 경제를 이루고, 단순 노동과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가족·공동체 중심으로 재산의 공유적 사용을 실천하며, 기술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느린 삶을 즐기며, 신앙 안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도시적 삶에 대한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대안적 삶을 살아내려는 신학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통해 확인된 갈릴리적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을 오늘 현재에 농촌과 시골에서 이루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살아 있는 실체를 아미쉬, 후터라이트,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발견합니다. 도시 신학이든 시골 신학이든 그리스도의 복음을 도시 혹은 시골 이라는 공간에 육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표를 갖습니다. 그 공간 안에서 복음이 육화된 삶을 그리스도인 개인의 차원과 교회의 차원에서 구현하려는 것입니다.
<도시 신학>과 <시골 신학>을 <예루살렘 신학>과 <갈랄리 신학>으로 정립한다는 것은 이 신학이 단순히 도시와 시골이라는 공간에 제한받는 신학이 아님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갖습니다. 단순히 도시 사람들과 시골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서 그리스도인의 근간을 이루는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의 차이를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시골 신학>의 원형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보여주신 신앙 양식과 생활 양식입니다. <도시 신학>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종교적, 행정적, 정치적 우위를 가지고 있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로마 당국자 등의 신앙 양식과 생활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신학>을 대표하는 상징과 특징이 ‘성전 / 제사 / 율법 / 제도 / 권력 / 전통과 정통 / 관리와 통제 / 소외와 배제 / 위계 / 정죄’ 와 같은 것이라면 <갈릴리 신학>은 ‘마을 / 들판 / 호숫가 / 식탁 / 노동 / 관계 / 이야기 / 치유 / 환대 / 회복 / 공동체 / 일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제국과 도시의 중심부 신학, 권력을 가진 자들의 신학이었고 후자는 농촌과 시골 중심의 주변부 신학, 가난한 자, 병든 자, 어부 농부와 같은 약한 자들의 신학이었습니다.
거대한 예루살렘 성안에 화려한 성전이 세워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근엄하고 화려한 제복을 입은 제사장들과 성전 일꾼들이 날마다 성전 제사, 곧 희생 제사를 거행합니다. 수많은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가 희생 제물로 바쳐지고 이것들을 태우는 냄새가 성전을 진동하고 연기가 성전의 하늘을 덮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제사장을 통해, 희생 제물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어떤 이는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 이 일을 행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므로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로마 당국자들은 성전을 감시합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성전에 모이고 희생 제사가 어김없이 드려지며, 제물을 태우는 냄새와 연기가 진동하는 것을 보며 예루살렘의 치안과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로마 정부에 대한 반란이 끊이지 않는 반골의 땅 이스라엘의 통치와 질서 유지를 위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적당한 자치권을 보장해 주는 것은 제국의 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성전 제사 의례가 성황리에 일상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로마 당국의 통치 질서가 잘 이루어지고 있고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같은 시간에 예루살렘에서 한참 떨어진 변방 갈릴리 호숫가나 마을, 들판에서는 나사렛 출신의 젊은이가 그 지역의 사람들, 병든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 장애인,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살리는 놀라운 기적을 행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광야의 기적’을 베풀어 먹고 배부르게 합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죄인으로 정죄하고 회당에서 축출한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들을 만나 식탁 교제를 나눕니다. 사람들은 이 젊은이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의 가르침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그들이 알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권위를 느꼈습니다. 그의 행동은 그들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그 누구도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았고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당을 세우거나 예배당을 건축하지도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종교적 제의(retual), 희생 제사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있으면서 환대의 기쁨을 온몸으로 느꼈고, 자유함을 누렸으며 평등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갈릴리의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예배였고, 삶의 현장이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제국과 도시, 예루살렘의 신앙 양식, 생활 양식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신앙 양식, 삶의 양식을 온전히 시현(示顯)하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