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2)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2)



 제가 시골 신학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계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한 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마 28:6-7, 막 16:7)는 말씀을 묵상할 때였습니다.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갈릴리가 어떤 의미였기에.’ 하는 물음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정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후 거기에서 승천하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후 거기에서 승천하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후 나중에 다시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후 승천한 것으로 기록합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오순절의 역사와 예루살렘 교회의 생성, 그리고 이방 선교의 기록을 중시한 누가에게 예수님과 제자들의 갈랄리에서의 만남은 크게 주목할 요소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를 제외하고 마태, 마가, 요한이 전하는 갈릴리에서의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갈릴리가 예수님의 사랑이 숨쉬던 곳이었기에, 제자들과 첫사랑을 맺었던 장소이기에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거기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만난 예수님은 특히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면서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베드로의 첫사랑을 다시 기억나게 해주십니다. 갈릴리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 승천 이후의 제자들의 시간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 출발은 예수님과의 사랑, 그에게서 받고 보고 배운 그 사랑을 기억하는 가운데 그것을 전하고 행하면서 기독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마음껏 사랑하셨고 기쁨과 즐거움 가득한 행복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행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을 이익을 탐하는 강도의 소굴로 만드신 것에 분노하셨으며,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의 허위와 위선을 통박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탁한 종교지도자들의 시기를 받으사 체포되어 고문받으시고, 결국에는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의 죄로, 로마인에게는 정치적 반역의 죄로 불법적으로 기소되어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십니다. 갈릴리 시골 땅이 생명의 땅이었다면 예루살렘 도시는 죽음의 땅이 되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시골 땅이 복음이 배태되고 생성된 땅이었다면 예루살렘 도시는 예수님과 복음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매단 소멸의 땅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도시는 끝없이 팽창하고 번성하지만 그 이면에서 복음은 계속해서 소외되고 위축당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은 크게 ‘갈릴리’에서의 행적과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으로 나누어지는 데 예수님은 생애의 대부분의 시간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나사렛이란 벽촌에서 30년을 목수겸 농부로 사셨고, 3년의 공생애 시간의 대부분을 갈릴리에서 보내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보낸 시간은 절기에 따라 예루살렘을 방문한 1-2회 시간과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으신 마지막 일주일간의 방문이 고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지 시골 청년이었고 시골적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이 몸에 밴 젊은이였습니다. 앞에서 저는 현대 국가, 문명, 도시적 삶의 핵심 가치가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화려하게, 더 편의적으로, 더 이익이 남게, 더 성공적으로”인 반면 농촌과 시골의 삶의 가치는 “느림, 기다림, 함께 함, 소박함, 아웅바둥대지 않음” 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치는 대립적이라서 양립하기가 어렵다고 말했고, 이 두 가치 중 어느 것이 하나님의 것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저는 두 번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적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소수의 성공자와 소외당하고 배제당하는 다수가 사회 구조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 소외당하고 배제당하는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능력과 쓸모”의 가치가 아니라 “느림, 기다림, 함께 함”의 가치가 실효적인 힘을 발휘할 때만 장애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복음서로 돌아가고, 예수님 시대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살펴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도시적 가치보다는 시골적 가치에 근거해 복음을 살아내시고 전파하셨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나사렛과 갈릴리의 ‘삶의 자리’에서 시골의 가치와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배제와 차별이 아닌 용서와 수용, 포용과 하나됨, 함께 누리는 축제로서의 일상으로 구현되었습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생성하고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콘스탄틴체제가 세워지기 이전까지 300년 동안 존속해온 초대교회는 이전 세상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 유대인 사회에서든, 로마 사회에서든 – 신앙 양식과 생활 양식을 선보였는데 그 원형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시고 보여주셨던 갈릴리적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나눔과 함께 함’의 삶의 모습은 전적으로 갈릴리적 신앙 양식과 삶의 양식을 도시 삶에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셨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수많은 가르침을 주시되 과거의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하셨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약한 자, 심지어는 죄인들의 편이 되어 주셨고, 그들과 공동 식탁을 차리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군중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시고, 그가 계신 곳에서는 차별 없는 평등과 자유,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에서는 종교 권력과 충돌하였고,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배신과 음모, 체포와 고문, 불법적인 재판과 판결, 그리고 십자가 처형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험하시고 펼치셨지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력자들은 그저 그들의 기득권의 나라를 지키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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