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9)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9)



 김승환은 「도시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 도시에 관한 신학적 성찰과 상상」(새물결플러스, 2021년)에서 ‘도시신학(urban theology)’은 20세기 말부터 영미권에서 하나의 신학분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도시선교’, ‘도시목회’, ‘지역신학’등의 개념을 ‘도시신학’으로 체계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1980년대 전후로 영국 교회는 공공신학을 바탕으로 학제간 연구에 참여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도시 문제를 비판하면서 신학적 해석과 교회의 실천에 관해 고민하면서 도시 재생과 변혁에 관심을 보여왔다고 말합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선교와 목회의 차원에서 도시의 다인종적·다문화적 상황에 맞는 복음 전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도시의 죄성을 지적하고 세속도시의 타락을 비판하며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회개와 변화를 주장하여 왔다고 도시신학의 현대적 기원을 설명합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이렇게 시작된 도시신학이 최근까지 어떻게 전개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개관하면서 기독교와 교회가 도시 속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제안합니다. 



 도시신학이 신학으로 체계화 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부터라고 하지만 이미 1960-70년대에 자끄 엘륄과 하비 콕스는 ‘도시’를 신학의 중심 주제로 끌어올렸습니다. 1965년 하비콕스는 「세속도시」(구덕관 외, 대한기독교서회, 1967, 1997년)를, 10년 후인 1975년 자끄 엘륄은 「대도시의 성서적 의미 – 머리둘 곳 없던 예수」(황종대역, 대장간, 2013년)를 상반되는 관점에서 발표합니다. 하비 콕스는 도시를 인간 해방과 자유의 성취 공간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자끄 엘륄은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도시’의 신학적 의미를 분석하는 가운데 도시를 가인의 성으로부터 유래되고 바벨탑, 소돔, 바벨론으로 이어지는 반하나님적 요소로 가득찬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세속화된 도시의 형성 과정을 하비 콕스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자끄 엘륄은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얼룩진 곳이 도시라고 인식하며 사탄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비 콕스가 국가와 도시의 일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독려하는 반면에 자끄 엘륄은 교회는 국가와 도시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엘륄은 하비 콕스에 대해 “콕스는 도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성서의 도시 비판 전통을 무시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기술문명에 대한 비판을 결여했고, 국가 권력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으며, 교회의 예언자적 거리두기를 포기했다”고 비판합니다. 콕스는 엘륄에 대해 “신학적 비관주의”에 휩싸여서 “인류 발전 역사를 불신”하고 있고, 종말론적 긴장만 강조함으로써 현실 정치 참여를 포기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콕스는 세속화를 신앙의 붕괴가 아니라, 신화로부터의 해방이요 성숙한 인간 사회의 탄생으로 이해하였고, 도시는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 다양성, 창조적 문화, 정치적 책임이 실현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되는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엘륄에게 도시는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반하나님적 불신앙의 결정체였습니다. 예수님은 도시에 정착하지 않으셨고 “머릴 둘곳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사셨다고 보았습니다. 



 김승환은 「도시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 도시에 관한 신학적 성찰과 상상」에서 도시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을 기술하면서 세속 도시의 한계를 지적하고 후기 세속사회에서 교회가 어떤 도시적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새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로 향하는 구원의 이야기를 간직한 교회는 순례의 공동체요, 성만찬의 공동체이기에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혼종성과 복합성, 관계성과 가치성, 개방성과 성스러움을 수용할 수 있도록 환대와 평등의 공동체, 정의와 평화의 공동체가 되고 공적 영역에서 공공선을 위해 참여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독교는 도시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고 하면서 바울도 “도시를 거점으로 복음 전파와 선교 사역을 이어갔고,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에도 도시를 중심으로 빠른 성장을 이어갔다”고 말합니다. 후기 세속사회로 들어서면서 종교가 사적 영역으로 물러난 듯 보이지만 여전히 교회는 사회를 통합하고 사회적 에토스를 제공하는 공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기에 “도시의 세속적 가치를 벗겨내고 일상 속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며 초월성과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 도시 교회의 사명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에 물든 도시의 땅은 서로의 욕망과 탐욕이 부딪치는 투기의 대상이 되었고, 현대의 도시는 철저히 기획된 공간이자 합리적 이성으로 포장된 욕망의 땅이 되었으며, 도시의 모든 인간관계는 돈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인격적인 공동체는 무너진 현실 속에서 교회는 탈자본화, 탈권력적인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교회는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사이 공간’으로 기능하여야 하고 피폐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환대하고 회복시키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하며, 성서가 말하는 ‘정의로운 도시’, ‘샬롬의 도시’, ‘하늘의 평화가 땅에 구현된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현대 기술 문명과 도시 문명이 만들어 낸 어두운 그늘을 극복하는 일에 교회가 ‘거룩한 성소’가 되고 도시 속의 ‘사이 공간’이 되어 생명이 살아 숨쉬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증거되는 곳이 되고,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의 대안 공동체로 굳건하게 세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소멸되어 가는 농촌과 시골에도 똑같은 하나님 나라의 대안 공동체가 굳건하게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농촌과 시골에 대해서도 「농촌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 농촌에 관한 신학적 성찰과 상상」이라는 <농촌신학>에 관한 책이 쓰여지고 정립되기를 소망합니다. ‘도시신학’과 ‘시골신학’을 ‘예루살렘 신학’과 ‘갈릴리 신학’이란 이름으로 정립하고 싶은 개인적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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