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5)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5) 



 제가 Colony라는 단어를 신앙의 세계 안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발견한 것은 아나뱁티스트를 공부하면서 였습니다. 북미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정착지를 Colony라고 불렀습니다. 이를테면 “랭커스트 지역에 사는 아미쉬 공동체(정착지)”를 “Lancaster Amish Colony”로 이름한 것입니다. 이 표현을 처음 보았을 때의 저의 반응은 지극히 부정적이고 거부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Colony라는 단어의 유일한 뜻은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참, 이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도 별나지만 쓰는 용어도 별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단어 중에 하필 Colony가 뭐야 Colony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사는 정착지를 “식민지”로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은 무지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아미쉬, 후터라이트는 Colony 라는 단어를 ‘식민지’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Colony는 자유와 희망의 땅이었고, 믿음 안에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식민지”로 번역한 것은 적절한 번역이 아닐 것입니다. “정착지”로 아니면 원어 그대로 “Colony”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당신의 “식민지”를 건설하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식민 백성” 삼으실 일도 없겠기 때문입니다.     



 하우워어스는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에게서도 영향을 받아 신학은 신자들의 언어습관을 훈련하는 일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특정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의 쓰임 안에 있다”고 말했는데 하우워어스는 이미 색이 바랜 ‘교회’라는 단어를 “Colony”라는 단어로 대체하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교회=Colony 라는 정식으로 그의 교회론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을 <Colony 신학>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Colony인데,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Colony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교회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교회(in the world, not of the world)”를 Colony 라는 단어를 사용해 진술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Neo Anabaptist는 다른 교단과 교파에 속하면서 아나뱁티즘을 자신의 삶과 신앙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뜻합니다. 하우워어스처럼 감리교인이거나 성공회 신자면서 아나뱁티즘을 자기 신앙의 중심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철저한 제자도, 공동체로서의 교회, 비폭력 평화사상 등이 그 요체로서 기독교가 로마 국교화가 된 이후의 기독교 세계, 이른바 국가와 교회가 결탁한 크리스텐돔의 세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합니다. Neo Anabaptist들의 특징은 하우워어스가 보여주듯이 다른 학문들, 이를테면 철학이나 인문학, 사회학 등과의 통섭을 통해 신학을 전개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로 인해 아나뱁티즘 신앙과 신학이 종교개혁기의 제4 개혁으로 정당하게 자리매김 되기에 이르렀고 현대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의미하고 필요로 되는 신앙이요 신학임이 설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Neo Anabaptist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의 특징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도시 신학>의 배경 하에서 신학을 전개하고 도시를 대상으로 아나뱁티즘을 적용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도시 신학>은 기본적으로 도시에 대한,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전개되는 신학입니다. 하우워어스는 도시 속에 하나님의 Colony가 세워지기를 꿈꿨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캐나다와 미국 땅에서 150년에서 300년 동안 이미 Colony를 이루고 살아온 아미쉬와 후터라이트를 배제했습니다. 그들은 아미쉬와 후터라이트에게서 Colony 라는 단어를 도시 교회의 혁신을 위해 차용하기만 했을 뿐 살아 있는 실체로서의 아미쉬와 후터라이트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도시와 도시 문명 가운데 있는 교회의 생존과 역할, 위상에 집중되었습니다. 따라서 도시와 도시 문명 바깥에 존재하는 듯한 아미쉬와 후터라이트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백년을 Colony로 살아온 그리스도인 집단이 아미쉬와 후터라이트 였는데 그들은 아미쉬, 후터라이트 모델이 도시 교회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북미 사회에서 이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현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인권, 교육)와 충돌하는 고립된 집단’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부정적 인식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아미쉬와 후터라이트의 존재 양식과 생활 양식이 도시적 그것과 현저히 대립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 역시 처음 아미쉬와 후터라이트의 삶의 모습을 보았을 때 ‘기괴한, 이해할 수 없는, 완고한’ 사람들 이라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삶의 모습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예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예수를 그렇게 별나게 믿어야 돼‘하는 반발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반발심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제가 옥천 시골로 공동체를 이전하고 시골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말입니다. 도시적 사고, 도시적 생활 방식은 오랫동안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도시적 인간의 ’아비투스‘를 뼛속 깊이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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