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4)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04)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배덕만 교수는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해설하면서 두 저자들은 현대의 교회에 대해 “교회와 국가의 기형적 통합을 성취한 콘스탄티누스주의, 이성과 신앙의 통전성을 해체한 계몽주의, 그리고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개인들의 사상누각으로 변질시킨 개인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진단하면서 “하늘 나라의 식민지”로서 교회의 자기정체성 회복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땅에 거하고 있지만 이 땅에 정착해 안주하지 않으며, 이 땅의 현실에 영향을 받고 있으나 이 현실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이 땅의 타락에 저항하지만 하늘의 진리로 혁명을 꿈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 교회”인데 이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모험 공동체요, 이야기 공동체이며, 종말론적 공동체이고 혁명적 공동체”라고 정리합니다. 



 책에서 두 저자는 “교회는 이 땅에 있는 ‘하늘 나라의 식민지’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사는 나그네 된 거류민 - 법률상 유효한 주거가 있는 외국인으로 주거는 가능하나 시민권은 없는 – 이라고 하면서 “이 식민지는 다른 문화 가운데 세워진 문화의 섬이자 교두보며, 전초기지로서, 모국의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반복해서 들려주고 전수하는 장소이며, 나그네 된 거류민의 고유한 언어와 생활 양식을 정성을 다해 꽃피우고 살찌우는 자리”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통해 두 저자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보여주는 산상설교를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과 그러한 백성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임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식민지는 우리를 그 목적지까지 실어다 주는 배인데,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진리와 함께 길을 가게 되는 일은 이 배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이 교회를 이 땅에 있는 “하늘 나라의 식민지”라고 하고 “나그네 된 거류민”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야곱의 가족이 머물던 이집트의 고센 땅이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살았던 바벨론 유배지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식민지로 표현된 된어가 “Colony”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식민지(Colony)는 현대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영토와 주권을 유린당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피압박 약소국가들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식민지배를 받아온 식민지 국민들에게는 억압과 수치를 상징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36년간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온 우리들에게도 이 단어는 부정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단어입니다. 저자들이 교회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는 글 전체의 맥락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단어가 쓰인 보편적 용례에 비추어 볼 때 교회를 Colony라고 한 표현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해온 그리스도인 집단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아미쉬와 후터라이트 였습니다. 아미쉬는 1,707년부터 1,860년에 이르는 시기에, 후터라이트는 1,870년대에 각각 유럽과 러시아를 떠나 캐나다와 미국으로의 이주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세우는 정착지를 Colony라고 이름 짓습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유럽 열강이 제국주의적 식민지배에 열을 올리기 시작할 때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로 건너온 아나뱁티스트들은 자기들이 정착하는 땅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땅, 신앙의 자유가 마음껏 보장되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Colony로 불렀던 것입니다. 18-9C 유럽 열강들이 해외에 식민지(Colony)를 건설하기 위해 쟁투하던 때, 이들과는 정반대로 아나뱁티스트들은 유럽을 떠나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위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로 건너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신앙의 정착지(Colony)를 개척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시기에, 똑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집단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20C 이후 제국주의-식민지 관계를 규정하는 의미 외에 colony는 사회학적, 종교적 용례로 “특정 가치, 규율, 생활 양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아미쉬, 후터라이트는 그 용례에 꼭 부합하는 집단이었습니다. 



 제임스 헌터가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평가하면서 스탠리 하우워어스에게 Neo Anabaptist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Neo라는 수식어의 반대편에는 오래된(old), 전통적인(traditional), 역사적인(historical)과 같은 단어가 있습니다. 이 Neo(New)는 오래된, 전통적인, 역사적인 것들과 차별을 지향하면서 생겨날 수도 있고, 이것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하우워어스는 자신에게 Neo Anabaptist, 신 재세례파라는 이름이 붙여젔을 때 이를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공공연히 그가 아나뱁티스트 신학자 였던 요더의 신학에 영향받았음을 밝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더나 하우워어스의 문제는 아나뱁티스트 신학과 전통을 그들이 전면적으로 계승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나뱁티스트 분파 중 아미쉬와 후터라이트의 신앙과 삶을 그들의 신학에 온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의 생각과 판단이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Colony 신학>과 <도시 신학>의 장을 열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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