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9)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9)



 아나뱁티스트들은 500년 동안을 공동체로 살아왔습니다. 아나뱁티스트 제자도에서 두드러진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순교자 신앙과 순례자 신앙입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주를 위해, 진리를 위해 순교할 각오로 신앙 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순례자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에서의 세속적 삶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진리와 평화에 관한 한 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지구적 차원에서의 순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 러시아를 거쳐 북미 캐나다와 미국으로, 남미로 이주해 정착하는 수백년에 걸친 시간들은 그들이 진리·평화·자유를 찾아 떠나는 나그네, 순례자들의 삶을 살았던 것을 증거합니다. 그들의 순례은 참된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로 이생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종말론적 내세 신앙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자유·평화를 누릴 땅을 찾아, 정착지를 찾아 온 세상을 떠돈 나그네요, 순례자된 자의 현세 신앙을 반영합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긴 순례의 길을 걸어간 것 처럼 저 또한 참된 신앙의 길을 찾아 먼 순례의 길을 걸어 왔고 그 끝에서 아나뱁티즘을 만났습니다. 순례 길의 화두는 진정한 신자는 누구인가? 참된 교회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였는데 그 답을 아나뱁티즘에서 찾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나뱁티즘만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 견지에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 성공회, 아나뱁티즘(재침례교) 등 다양한 기독교 교단과 교파가 있는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저는 아나뱁티즘을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자다운 신자, 교회 다운 교회의 답을 아나뱁티스들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신자란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리스도의 도를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련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도를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련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또한 신자란 이렇게 공부하고 수련한 것들을 삶 속에서, 세상 속에서 드러내고 증거하는 사람들인 것이며, 그런 활동의 총체인 교회는 세상에 대해 세상의 대안이 되고, 세상적인 삶의 원리와 대조되며, 때론 세상에 맞서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수호하는 대항적 역할을 감당하는 기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 곧 복음을 공부하고 수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공부하지 않고는 복음의 깊은 진리를 터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요, 수련하지 않고는 복음을 내면화, 성품화, 실천화 하는 일이 난망하기 때문입니다.   



 2023년 저희 교회의 표어 삼은 말씀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였습니다. 이 말씀을 화이트 보드에 적어놓고 뜻이 곡해될까 염려되어서 그 밑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부기하였습니다.



<2023년 교회의 말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0.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도 생각하라”

0. “위의 것 없이 아래 것 없고, 아래 것 없이 위의 것 없다”

0. “위의 것이 아래 것이고, 아래 것이 위의 것이다”



“위의 것”과 “땅의 것”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서구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이와 결합한 서구 신학의 오래된 기초요 뿌리였습니다. 위의 것이 하늘의 것, 신성한 것, 선한 것,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면 땅의 것은 마귀적인 것, 육체적인 것, 속되고 거짓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땅의 것을 무시하고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위의 것과 땅의 것이 대립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사용될 때도 있지만 상생적 관계로 이해되고 사용되는 경우도 있음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세상 천지만물, 사람도 땅도 자연도 우주도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로서 땅의 것들은 그 안에 회복되어야 할 하늘의 신성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위의 것과 땅의 것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고 일치하여서 하나님 창조 사역의 완성을 이루어야 하는 상생적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의 것을 배척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것에 깃든 신성의 발현과 회복을 위해, 위의 것과의 일치를 위해 늘 생각하고 품고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위의 것과 아래 것은 존재의 양면인 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래 땅의 것은 하늘의 것, 위의 것으로부터 나왔는데 땅의 것이 있으므로 위의 것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늘 없는 땅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땅 없는 하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하늘대로 존재하고 땅은 땅대로 창조의 형상을 이루며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이 존귀한 것처럼 땅도, 땅 위에 있는 것도 다 존귀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부분’은 언제나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말씀을 깊이 공부해야 하는 연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분”(요 3:16)이시지만 “너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1:15)고 말씀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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