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7)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97)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새로운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의 삶을 본떠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제자도는 그러므로 그저 단순한 그들 내면의 변화, 마음가짐의 변화와 결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관찰 가능한 삶의 변화로 나타나야 합니다. 아나뱁티스트 제자도는 정확히 그 지점을 겨냥합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이 믿는 믿음, 신앙이 일상의 삶을 통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그 삶 가운데 돈과 재물, 권력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들의 믿음, 신앙이 우리들의 지갑이나 재정 구조, 생활 방식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 따름’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윤리적 권면’ 수준에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실천적 계명과 명령’으로 이해했습니다. 사실 ‘계명’ 이란 말 자체가 강력한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개인의 덕목으로 내면화 하여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덕목과 삶의 방식으로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공동체적으로 실천해 왔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곧 제자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돈·섹스·권력( Money, Sex & Power)」에서 리처드 포스터는 이것들 각각을 긍정의 측면과 부정의 측면에서 조명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기술하지는 않습니다. ‘재물’을 예수님께서 맘몬(Mammon)으로 부르셨듯이 이들 세 요소에 ‘악마성’을 부여합니다. 앞에서 우리는 <육화 신학>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그 논지의 요체는 신성이 육체 안에 거하며 그로 인해 인간이 신성과 인격적으로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악마’의 신성, 곧 마성(魔性)도 인간과 인격적으로 교류하며 소통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하고 시험하였듯이 지금도 우리들을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그 강력한 도구가 바로 돈과 섹스와 권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 중에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있습니다. ‘세상 만사 오직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뜻인데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가히 ‘국민 경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이 구절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 만사가 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니 이 어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중독 치료의 현장에서도 이 말은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중독 치료의 초기 단계에서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이 말을 거의 신봉하듯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술을 끊겠다, 도박을 끊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반드시 술, 도박을 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제 아무리 마음을 먹고, 숱한 맹세를 하고 각서를 쓰고 혈서를 써 보아도 그들은 또 다시 재발하고 재발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사가 내 마음 먹은 대로 되려면 내 마음을 여간 다스리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평생을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 속은 영적 전쟁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신성과 사탄 마귀의 악한 마성이 대립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전장터에서 내 마음과 의지를 하나님 편에 맡기는 연단과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입니다. 바울이 고백했던 바,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도다”(롬 7:21-23) 가 우리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여러번 있지만 사탄과 마귀를 체험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과 마귀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인식에 비해 관념적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사탄과 마귀의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은 전적으로 성경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들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살아계실 때 유대인들에게 어이없게도 “귀신 들렸다”(요 8:48)고 비난받으시기도 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성경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요일 3:8)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알코울중독자들이 술을 마시러 갈 때, 도박중독자들이 도박장에 갈 때의 모습은 가히 ‘귀신에게 홀린 듯’한 모습입니다. 귀신에게 홀리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을까요. 돈·섹스·권력은 모두 강한 독성을 품고 있어서 그것을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돈 중독, 섹스 중독, 권력 중독을 유발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골룸의 반지”처럼 마성을 지니고 있어 거기에 빠진 사람과 그 사람이 맺고 있는 모든 인간 관계를 초토화 시키고 황폐화 시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돈·섹스(이성)·권력을 잘 다루지 못합니다. 제 안에 있는 탐심, 탐욕, 정욕, 야욕을 잘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이 평생 수련에 힘쓰는 것이었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것이었으며 공동체적 삶을 선택한 것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제어해야 했고, 그것을 지탱시켜주는 공동체적 울타리, 강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가 만일 김장하 선생과 같은 환경과 처지에 있었다면 저는 그분과 같은 행동과 처신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장하 선생은 제게 넘사벽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