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7)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7)
사무엘서에 기록된 국가론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⓵ 국가는 그 기원에 있어서 반하나님적 성격을 갖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보다는 왕과 국가를 믿고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하나님도 의지하고 왕과 국가도 의지하기로 합니다.)
⓶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마땅스러워 하시지는 않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왕정으로 나아가도록 허락합니다.
⓷ 국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군대(상비군)와 관료들을 편성합니다.
⓸ 군대와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조세권과 군사들을 징발하는 부역권을 갖습니다.
⓹ 이렇게 해서 국가는 통치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새롭게 재편되게 됩니다.
국가는 그 기원에 있어서 폭력의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외부로부터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통한 방어의 목적으로 국가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국가는 자체적으로 확보한 폭력을 공격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국가는 폭력을 외부의 적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력등의 폭력기구를 통해 내부 국민들을 통제하게 됩니다.
기독교적 관점을 배제한 국가론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국가의 발생과 기원, 국가론의 변천과 역사 등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 나라’ 신학을 이해하고 정립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합니다. “국가”와 “국민”의 개념의 변천사를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일괄한 「국가와 딜레마 – 국가는 정당한가」(홍일립, 2021년, 사무사책방)에서 저자는 “국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 동물’이라는 용어로 당연시한 ‘자연의 구성물’만은 아니며, 또한 국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의처럼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신국의 부속물도 아니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처럼 신의 나라가 지상에 구현된 믿음의 공동체로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인류 역사 속에 존재했던 국가들과 수많은 학자들의 국가론을 병행 서술하면서 국가가 지닌 긍정의 측면과 부정의 측면을 조명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여전히 진화 중에 있으며 그 완성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몫으로 오롯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 국가의 실체를 밝히면서 저자는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딜레마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후생을 발전시켜온 반면에 여전히 개별 국가 내에 비민주적 요소들을 잔존, 강화시키거나 국민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과 불평등을 조장하는 부정적 역할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성경적 진술에 의한 한 그 기원에 있어 반하나님적이며 폭력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로마 사회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 어거스틴에서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국가”에 대해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종교개혁 시기에 이르러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루터와 칼빈도 봉건 영주와 봉건국가와 결탁해서 루터교를 성장시켰고 칼빈도 취리히 시의회의 협력을 얻어 개혁교회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와 하나가 되어야 했고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에 찬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아나뱁티스트들만이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했고 전쟁과 폭력에 반대했습니다. 루터와 칼빈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보호를 필요로 했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의 신앙을 세상 국가에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종교 국가주의, 민족 국가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시민이었습니다.
국가를 신국의 부속물로 여긴 아우구스티누스나 국가를 신의 나라가 지상에 구현된 믿음의 공동체로 여긴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의해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서구의 국가관은 세속 국가와 하나님 나라를 등치, 병렬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와 종교는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국가 운영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합니다. 교황은 이제 더이상 황제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근현대 서구의 국가론은 여전히 신적 통치의 위임 대상으로 국가를 상정함으로써 국가 자체의 신성(神性)을 유지합니다. 국가 자체가 신성한 충성의 대상으로 의미가 강화됩니다. 국가를 ‘절대자’로 정의한 셀링(Friedrich Schelling)의 관념이나 ‘세계 정신, 곧 지상에 실현된 신의 이념’으로 절대화한 헤겔, ‘국가는 지상에 신의 영광을 구현하는 사명을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인간 공동체의 도덕적인 왕국, 더 깊게 고찰하면 신적인 제도”라고 찬양한 슈탈(Friedrich Stahl)에 이르기까지 근대 서구철학자들의 국가론은 신의 현현이거나 신의 권능의 분여라는 관점에서 수립되었습니다. 사회가 심하게 분열되어 있고 사회적 혼란이 사라지지 않을 때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군사력과 사회를 통합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본 흡스는 ‘구원자 국가’를 주조합니다. 평화의 보장책으로 고안된 <리바이어던>은 일인 군주의 절대주의 국가, ‘새로은 아담’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국가 자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국가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놓게 됩니다. 특히 국가가 ‘민족’ 단위와 결합하여 민족국가가 탄생하면서 국가는 신성시 되고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자민족 중심주의는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제관계의 역동을 초래하는 근본 동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