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2)
아나뱁티스트가 되는 길에서 제가 벗어버려야 했던 것 중의 하나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충성하는 것,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은 저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정체성의 근본이 뒤바뀌는, 곧 하나님 나라의 국민(시민)이 되는 놀랍고 경이로운 사건을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중국적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적과 대한민국 국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 더 본질적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나라의 국적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성경이라는 헌법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헌법인 성경과 대한민국의 헌법은 같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의 헌법이 자유, 평등, 정의, 복지,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성경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나 방법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그것들은 서로 상충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까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어떻습니까? 실제에 있어서는 세상의 법을 우선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국가가 하는 일과 관련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기 보다 세상 나라의 법을 따르는 근저에는 자민족 중심주의, 자국 이익 중심주의가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로 살아온 36년간의 시간 동안 일본의 그리스도인들과 한국의 기독교인들과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몇 년째 계속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지금 어떠할까요? 이들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국민답게 생활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자민족, 자국 이익을 우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일제 시대 일본인 우찌무라 간조에게서 신앙을 배운 김교신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 속에서(「김교신 평전」, 전인수, 서로북스, 2024) 우리는 조선인이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애썼던 그의 노력과 분투를 보게 됩니다. 김교신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힘썼던 영역은 조선과 조선인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인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면 하나님께서 조선의 독립을 이루어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반대했지만 일본인을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 땅과 조선 민족을 사랑했지만 조선 민족의 죄와 허물에 눈감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삶과 신앙 생활에 대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김교신이 조선 국민이면서도 하나님 나라 국민(시민)이라는 신앙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라는 영토, 한민족이라는 혈통에 근거한 국민과 헌법에 의한 국내외 통치의 주권을 가진 주권 국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지구 전체입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국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지구 위 모든 나라,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미치고 적용됩니다. 민족주의에 근거해 성립한 현대 국가들은 나라 사이에 경계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국경 없는 의사회’처럼 경계선(국경선)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구 나라에 사는 지구 국민이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눈 하나님 혈통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이라는 통치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므로 사해동포주의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피흘리심으로써 그 피가 온 땅에 흘러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 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선(국경선)이 없어야 하며 민족과 민족 사이의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평화사역 공동체 <개척자들> 창립자인 송강호는 그의 책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 – 평화를 위한 순종」(대장간, 2021년)에서 “생애를 걸고 싸울 삼적(三敵)”이 있는데 그것은 “전쟁, 국경, 억압”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전쟁 없고, 국경 없고, 억압이 없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