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0)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0)



 국제분쟁갈등 조정자이며 이스턴 메노나이트대학교의 <정의와 평화 구축센터> 설립자인 존 폴 레더락은 그의 저서 「화해 - 진실, 자비, 정의, 평화가 어우러지는 참된 회복」(김복기, 허윤정 역, 생각비행, 2024년)에서 그가 메노나이트 대학에서 강의하던 때 일어난 일을 들려줍니다. 어떤 기독교인이 강의를 듣던 중 “메노나이트 교회와 교육 기관들은 언제쯤 평화 문제에 호들갑을 그만 떨고 복음을 전할 건가요?”라고 못마땅하게 말했을 때, 레더락은 “평화(화해)가 복음이거든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레더럭은 “기독교계에서 평화(화해)를 개인의 신앙, 고백, 회심의 근원에서 나오는 부수적인 부산물” 정도로 바라보는 기성 교계의 인식에 반대하면서 “평화(화해)를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보고 이해하는데 중심이 되는 체계적인 목적이자 사명”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우리의 사명 역시 “만물의 화합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모든 피조물, 특히 관계가 깨지고 멀어진 인류를 화해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평화를 깊이 알기 전 복음과 평화에 관한 저의 인식도 평화를 복음의 부수물 정도로 치부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레더락이 말하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개개인의 죄로부터의 자유, 해방을 위한 대속의 희생으로만 지나치게 편중되게 해석하고 적용해온 측면이 있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통해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은혜를 입었음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세계 전반을 화해케 하려는 하나님 구속사역의 출발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시고 구속된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화해케 하는 화해사역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구속 사역의 최종 목적이고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아나뱁티스트 신앙 전통에서 원죄, 속죄, 대속의 교리는 그렇게 강조되지 않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속죄 받은 우리들이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둡니다.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내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수양에 힘써야 합니다. 아울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세상 속에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라고 여기고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진리, 정의를 삶 속에서 구현해야 합니다. 레더락은 위의 책에서 자신이 분쟁지역 갈등을 조정하던 시절 시편 85:10절을 어떻게 활용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인애(자비)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정의)와 화평(평화)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개역개정)



 그는 종종 분쟁 당사자들과 이 구절을 중심으로 역할극을 행함으로써 분쟁 해결의 계기로 삼고는 했는데 평화를 이루기 위한 여정에서 자비와 진리, 정의가 장벽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용서 없는 자비를 누군가가 주장할 때, 자기만이 진리라고 어느 편이 주장할 때, 진정한 정의는 우리 편에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할 때 분쟁당사자 사이에서 평화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화에 이르는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는 때때로 현실에 있어 배타성과 당파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누군가가 내가, 우리 편이 더 옳고 진실하다 라고 말하는 순간 다른 편에 있는 사람과 쟁투가 시작되게 됩니다. 더 옳고, 더 바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쟁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도(자비)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와 용서 없는 사랑을 누군가가 주장하게 되면 분쟁의 불씨는 다시 가열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인애와 진리와 정의는 평화로 수렴되어야 합니다. 평화로 수렴되지 않는 인애, 진리, 정의는 분쟁의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심지어 평화 조차도 -기독교의 평화는 폭력이 없거나 수반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 폭력을 통해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 인류가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진정한 평화는 오직 십자가의 평화 뿐입니다. 자기 생명을 버려 남을 살리는 비폭력, 무저항의 평화 만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평화가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평화와 평화에 관한 일은 여전히 우리 눈에 가리워져 있기에 평화를 기독교 신앙의 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우리의 가일층의 분발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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