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2)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72)



 한국 기독교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 ’자생적‘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사용되곤 합니다. 한국 천주교의 시작도 그러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출발은 1779년 경기도 광주의 작은 암자인 천진암에서 일단의 실학자들 - 권철신, 이벽, 정약전, 정약종, 이승훈 등 - 이 모여 『천주실의』, 『칠극』 등의 서학서를 연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임은 선교사 없이 카톨릭 신앙을 연구, 고백하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공동체가 되었고,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 모임에 세례를 베풀면서 신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개신교의 출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천주교 천진암 모임이 시작된 지 100년 후 평안도 의주 출신 상인으로 만주와 중국을 오가며 무역 활동을 하던 서상륜(徐相崙, 1848~1926)이 1879년 중국 심양(瀋陽)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와 존 매킨타이어(John McIntyre)를 만나 세례를 받고 성경 번역·인쇄를 도왔습니다. 그는 귀국 후 성경을 지고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등지로 돌아다니며 전도하였는데 그는 “성경을 들고 다니는 장사꾼”으로 불렸습니다. 서상륜은 1883년 황해도 장연군 소래(지금의 송천)에 정착해 성경과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소래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소래교회는 1885년 언더우드·아펜젤러가 입국할 때 이미 예배를 드리고 있던 공동체였고, 선교사들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닌 ‘자생적’ 교회였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아나뱁티즘 교회, 공동체도 이들과 같이 해외 선교사와의 직접적 연결 없이 ‘자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자생적’이라는 표현을 역사적 실재에 적용할 때 그 의미는 ‘해외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 직접 전도하고 선교하기 이전에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한국 기독교 시작의 특징이기도 한데 아나뱁티즘의 출현도 그와 맥을 같이 합니다. ‘자생적’이라는 말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해외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 곧 사람들 간의 인적 연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성령님께서 주님 오실 길을 미리 예비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20C 남반구에 요원의 들불처럼 번지는 기독교의 발흥은, 성령주의적 오순절 교단의 발흥이라는 특징을 갖는데 이 역시 성령의 역사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우리가 성령행전이라 부르듯이 사실 기독교의 성장과 확장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아나뱁티즘의 자생적 출현도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세계 오순절 운동의 중추를 담당했던 한국 순복음 교단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게 되고 전도하고 선교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오순절 교단인 순복음 교단이 흥왕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를 갖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순복음 교단도 2,000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교세 하락을 경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멈춘 것일까요? 아니면 ‘성령의 역사’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걸까요? 



 1779년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서 정기적으로 학습모임을 가졌던 실학자들이 주교재로 사용했던 것은 『천주실의』와 『칠극』이었습니다.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하늘’(天) 개념을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天主)와 연결시키고, 서양의 유일신 신앙과 도덕·철학을 중국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설명한 책입니다. 『천주실의』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유교적 가치와 연결지어 설명하는데 유교적 도덕인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기독교 덕목(신앙, 희망, 사랑)을 연결하여 천주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도덕의 완성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유교적 가치를 신봉하며 살았던 조선의 실학자들에게도 『천주실의』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칠극』을 제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천주교 순교 성지인 충북 제천의 ‘배론 성지’를 방문했을 때, 배론 성지 중간을 가로 지르는 돌다리 난 간에 새겨진 겸극오(謙克傲), 인극투(仁克妬), 인극노(忍克怒), 정극음(貞克淫), 사극린(捨克吝), 담극도(淡克饕), 근극태(勤克怠)의 일곱 구절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교만과 오만을 겸손으로 극복한다. 시기와 질투를 사랑으로 극복한다. 분노를 인내로 극복한다. 음란함을 정결함으로 극복한다. 인색함을 나눔으로 극복한다. 탐욕을 맑은 생활(절제)로 극복한다. 태만(게으름)을 근면함으로 극복한다. 초대 교회로부터 전해진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악 – 교만, 시기, 분노, 음욕, 인색, 탐욕, 게으름 - 과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한 것임을 금새 알아챘지만 그것이 예수회 신부 줄리오 알레니가 『칠극』이란 이름으로 저술한 책이 중국에 전해졌고 그것이 조선 실학자들에게 전해져 천진암 강학의 교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천주실의는 일종의 교리서로, 칠극은 윤리, 도덕적 지침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천진암의 실학자들은 처음부터 기독교 교리와 기독교인의 행동 윤리를 균형 있게 이해하고 그들의 삶과 신앙 생활에 적용하려 애썼던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들은 방언을 말하고 전도하고 선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령이 임하시면 그 사람의 성품이 변하여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맺히는 성품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성품을 보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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