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8)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8)



한국의 기독교가 자정능력을 잃었다는 것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내부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내부적 역량의 결여는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고유 언어와 사상, 개념들이 왜곡되어 인식되고 실행되는 사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앞에서 저는 제게 새로운 각성과 통찰을 가져다 준 <장애신학>과 <생태신학>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이러한 <신학>들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고 믿어왔던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신앙, 성경 해석이 한계가 있고 부족함이 있음을 드러내 줍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과 신학을 ‘공공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공공 신학>의 대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출판한 「신학과 사회적 상상력」 (2024년, 도서출판 느헤미야)의 핵심 주제는 교회, 사회, 상상력입니다. 이 책의 부제, “본질을 회복하고 사명을 수행하는 몸짓”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기독교, 교회가 본질을 회복하고 본연의 사명을 잘 수행하려면 뭔가 몸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 앞에 우리는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 몸짓을 교회는 사회에 대해 무엇이며, 사회는 교회에 대해 무엇인가를 묻는 가운데, 그 양자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맺어지고 풀어져야 하는 지를 상상하며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풀어보자(λύω, luō)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기독교 문제의 핵심은 이 시대의 세속적 시대정신과 사조(στοιχεῖα, stoicheia)가 그대로 신앙과 교회, 기독교 내부에 뿌리 깊게, 뼛속까지, 무의식의 깊은 영역에까지 침투하여 장악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겉은 교회인데 속은 세속이라는 것입니다. 몸은 교회인데 머리는 세속이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저는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과학 서적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 저는 기독교의 시각에만 의지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성경은 자기충족적이어서 그 누구의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기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믿음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의 언어로, 기독교 내부의 시각으로 기독교의 문제들,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답을 찾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처음 잡은 책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박성수 역, 1988, 2010, 2021년, 문예출판사) 이었습니다. 영국을 필두로 유럽에서 산업자본주의가 정점에 달한 1867년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을 발표합니다. 이때로부터 40여년의 시간이 지난 1904-5년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발표합니다. 프로이트도 이 시기에 활동하는데 그의 정신분석학의 출발점이 된 「꿈의 분석」이 발표된 것은 1899년입니다. 1917년 「정신분석 입문 강의」가, 1927년 「하나의 환상으로서의 종교」가 발표됩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는 유대적 혈통과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종교인이 아니었고, 반기독교적 사상과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면 베버는 독일 중산 지식인으로 루터교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앙은 없었습니다. 마르크스는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프로이트는 중립적이었지만 무신론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베버 역시 기독교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종교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당시 발흥하고 있던 산업자본주의가 기독교도들, 특히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도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음을 광범한 동서양 자료를 분석하면서 논증합니다. 동서양 종교문화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해박함은 대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잘 드러내줍니다. 



 그의 연구의 출발점은 명확합니다. 왜 서구에서(만)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는가? 입니다. 그리고 그는 답을 개신교의 윤리의식에서 찾은 것입니다. 물론 베버는 서구에서, 19C에 자본주의가 발흥하게 된 여러 요인 – 도시화, 전문 관료의 등장, 복식부기의 출현, 자유로운 임노동자의 출현, 통합되고 발달된 법률체계 등 - 을 언급하면서 주요 요인의 하나로 개신교의 윤리 – 특히 칼빈주의의 소명으로서의 직업관과 기독교인의 청빈의식 – 이 ‘자본’의 축적을 용이하게 해주는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논증합니다. 베버의 주장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당시 유럽 사회를 강타했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유물사관에 의해 역사를 해석하고 전망했던 것과 달리 종교문화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탄생과 성장을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하부구조(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물질 구조)에 의해 상부구조(정신, 사상, 법체계)가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과는 정반대로 베버는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결정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논증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두 사람의 주장에는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점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에는 적절하고 타당할 것입니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상호 역동성을 가지고 서로를 견인하기도 하고 변형을 추동하기도 한다’ 수준에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종교를 착취적 사회질서를 정당화하고, 인간의 고통을 초월적 존재로 전가시키는 이데올로기로 간주했던 마르크스와 달리 베버는 종교를 무시하거나 경멸한 것이 아니라, 종교가 인간 행위의 동기와 사회 질서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종교를 개인의 구원에 대한 갈망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형태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종교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윤리적 실천과 내면화된 규율로서 자본주의 정신의 토대를 이루었다고 본 것입니다. 베버의 주장에 여러 반박과 반론이 있지만 개신교, 그 중에서도 칼빈주의적 소명으로서의 직업관과 청빈의식으로 요약되는 개신교도의 윤리의식이 신흥 중산 부르조아 계층을 형성했고 이들이 시민사회의 중추로 자리 잡으면서 국가 권력의 중심이 되고 근면의 정신으로 모으고 청빈의 윤리로 축적한 자본으로 산업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베버에 의하면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정신은 기독교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기독교는 자본주의에, 자본주의 정신에 함입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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