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3)
최근 몇 년간 제게 통렬한 각성을 안겨준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애신학」(김홍덕, 2010, 2022, 대장간)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신학 관련 도서로 「주님 주신 아름다운 세상」(스티븐 보우머 프레디거, 김기철 역, 2011, 복 있는 사람)입니다.
<장애신학>의 중심을 이루는 성경 말씀은 요한복음 9장 1–3절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장애신학은 장애를 단순한 의료적 문제나 불완전함으로 보지 않고, 신학적 관점에서 존재론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흐름입니다. 장애신학에서 장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다양성, 관계적 인간성, 약함 안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로 이해됩니다. 장애인을 신학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인식함으로써 비장애인 중심 시각에서 탈피를 시도합니다. 인간 의 가치를 능력, 생산성, 자기결정력으로 평가하는 근대적 인간상에 대해 도전하며, 장애를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된 것이 아니라 그 다양성과 신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는 신학적 원리가 인간 삶의 실재임을 장애인의 존재로 설명하려 하며,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접근이 아니라, 공동의 구성원으로 함께 예배하고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책을 통해 저의 장애우에 대한 잘못된 인식, 편견이 깨어졌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아담」(김명희 역, 1998, 2022년, IVP) 에서 말하고자 하던 바를 비로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을 신앙의 주체로 보았던 헨리 나우웬의 통찰이 저의 통찰이 되었습니다. 심한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송명희 자매가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은혜 안에 머물게 되었듯이 모든 장애인은 신앙의 주체로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그를 통해 나타내려 하시는” 참으로 존엄한 자들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1-3절의 이 말씀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장애인들은 제게 그저 긍휼과 연민의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결핍과 부족이 있어서 도와주어야만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을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결핍되어 있고, 생산성과 자기결정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세상적 기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 그들의 장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고,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을 마음의 짐과 부담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시는, 하나님의 존귀하고 존엄한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장애신학」을 통해 저는 장애우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장애인들의 핍박의 역사가 기술되어 있는데 유럽 중세 시기에 농아로 태어난 아기는 버려지고 죽임당했다 했습니다. 그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이 로마서 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였다 했습니다. 농아들은 입으로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시인할 수 없으므로 죽어 마땅한 존재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끔찍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안의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10년 유럽 기독교 공동체를 탐방했을 때, 영국 부르더호프 공동체, 독일 베첼공동체, 바시스 공동체 등에서는 의도적으로 장애인들을 공동체에 받아들여 함께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한 바가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신앙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함께 함으로 인해 비장애인들은 온전함으로 인도합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자기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함에 이릅니다. 부르더호프 공동체의 소녀들이 장애우 소녀를 향해 활짝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러주며 달려나가던 모습이 눈에 생생합니다. 거기에 살아 있는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중독 선교의 자리로 불러주시지 않았다면, 또 중독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들과 삶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중독자들에 대한 저의 인식은 장애인들에 대한 이전 인식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무책임하고, 방탕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쾌락을 추구하는 상종못 할 나쁜 사람들, 그래서 도움을 줄 필요조차 없는, 자기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한 길을 걸어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의 도상에서 의도치 않게 중독자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중독자가 ‘되어 버린’ 그들도 주님은 사랑하시고, 그들을 치유하며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드러내려 하십니다. 회복자들의 입술을 통해 “중독이 내게 은혜였습니다”라는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차별 없는 하나님이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통해 영광받으실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