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62)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오늘의 기독교 문제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무의식’ 이론에 근거한 종교에 대한 프로이트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에 대한 투사(projection)로 생긴 환상이다.
종교적 신념은 무의식적인 아버지상(father figure)에 기반하며, 과학적 세계관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신은 인간의 심리적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으며, 인간이 성숙해지면 종교를 버리고 과학과 이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주장을 배경으로 프로이트는 인간이 무의식을 이해하게 되면 더 이상 신의 개념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는 취지의 논리를 펼칩니다. 프로이트의 주장을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신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이 자신들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가공물이다. 인간은 좋은 아버지상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데 가공의 하나님 아버지를 만들고, 마치 그가 실재하고 있는 양 믿으면서, 그 신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러한 인간 내면의 진실을 알아채고 깨닫는다면 더 이상 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고, 종교도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런 주장에는 맞는 면도 있고 틀린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에게 프로이트의 주장은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신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분이고 그의 존재를 체험한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들을 믿는 자들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계명)’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며 실천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쩌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 자기가 만든 신 을 섬기는 사람들 - 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팀 켈러가 「내가 만든 신」(윤종석 역, 2023년, 두란노서원)에서 풍부한 사례를 통해 잘 논증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팀 켈러는 주로 중독자들을 예시함으로써 그것을 논증하고 있지만 비단 중독자들만이 아니라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가 아닌가를 판가름 하는 시금석은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삽니다. 자기 뜻을 이루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삽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을 궁극적으로 일치시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성이 없는 신자들,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신자들은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욕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신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자기 내면의 무의식적 욕구와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그것을 자기가 만든 신에게 투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여기서 투사의 개념과 작동 원리가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신은 더 이상 그들의 주님이 아니고 종이 됩니다. 말로는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그가 주님이 되고 신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신은 나의 필요를 채워 주는 요술 램프의 지니가 되어 주종관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신자입니까?
그리스도가 진정 당신의 주님이십니까?
이런 질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 라고 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진정한 의미가 사상된 채,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라고 학습되고 주입된 정답을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주님이 하실 역할은 나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기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나를 살리신 분이시기 때문에 나를 돕지 않으실 리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라 하셨고 찾으라 하셨으며 문을 두드리라 하셨으므로 우리는 마음껏 구하고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하는 것과 간구하는 것이 내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펼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당신의 뜻을 이해하고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무의식적 결핍과 불안으로부터 오는 채워지지 않은 욕구와 욕망을 채워주시고 이루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십니다. 사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신성한 충만을 이미 공급받은 자들이므로 이 세상에 대한 욕구와 욕망의 성취를 위해 안달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육체를 가지고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갈 2:20), 자신의 정욕과 욕구를 이미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갈 5:24)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