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57)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57)



 지난 주는 200년 만에 한 번 내릴까 하는 집중호우로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 되는 참변을 겪었습니다. 특히 오두막 공동체와 민들레 공동체가 있는 합천과 산청에 700mm가 넘는 비가 내리고 산청군에서는 전 군민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리는 들어본 적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5,000년 한반도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 미증유의 사태를 매년 경험하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측이 우리 모두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피해를 입은 민들레 공동체 사진을 보면서 그 참상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노도처럼 밀려오는 흙탕물은 수마(水魔), 그 자체였습니다. 인간의 힘과 의지와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불가항력의 침범이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서도 몇 년 전 집중호우 때 공동체 중심을 가로지르는 작은 계류의 둑이 유실되어 밀려오는 물살을 보고 공포를 느낀 적이 있었는데 민들레 공동체를 집어삼키는 수마의 사진을 보고 그때의 공포가 또다시 느껴졌습니다.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진들이었습니다. 



 기후 위기로 촉발된 자연재해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뉴노멀이 된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실천이 가능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여, 도시를 떠나십시오. 농촌으로 오십시오. 시골로 오십시오. 이곳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내십시다. 생태적 삶을 살아내십시다!” 라고 담대히 주장하던 민들레 공동체 김인수 형제님의 강연이 생각납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강연하면서 “아이들 대학 보내지 마세요!”라고 일갈하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처음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대체 그게 가능하기나 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주장은 좋지만 현실성이나 가능성 여부를 따져야 되는 거 아닌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어디 나가서 설교하거나 강연할 때 똑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기후 위기가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생들만해도 그 원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답도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탐욕을 버리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낸다면 기후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상은 돈과 과학으로 맞서려 합니다. 예를 들면 돈과 과학을 이용해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를 시행하려면 첨단 과학과 기술, 그리고 엄청 많은 돈이 들겠지요? 그러나 이에 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행할 수 있는 대처방안 - 소박하고 단순한 삶, 탐욕과 탐심을 내려놓고 소비를 줄이는 삶 - 은 한결 단순하고 더 영향력이 있으며, 기후 위기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통해 소비를 줄이고 그렇게 해서 남은 잉여를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게 된다면, 곧 공동체성을 회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지구적 차원에서의 인간 생태계와 자연 생태계는 창조의 아름다움을 다시 복원하게 될 것입니다. 



 작년 한꿈 교회와 함께 하는 두 명의 탈북자 자매들을 초청해 간증도 듣고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들이 탈북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과 궁핍의 이야기들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대형 마트에서 발견하는 풍요로움이라고 했습니다. 어찌 그렇게 남한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던지,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눈에 밟혀 마음껏 먹는 것도 죄스럽다 했습니다. 군에 간 아들 면회를 갔을 때 강냉이죽 조차도 변변히 먹지 못하는 북한 군인들을 보며 눈물이 났다 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닭장 구경을 하다가 닭장 앞에 모이가 가득 담긴 모이통을 보면서 두 자매가 말했습니다. “남한에서는 닭들도 부럽습네다. 저렇게 마음껏 먹지 않습네까.” 그 말을 들으며 제 마음이 얼마나 먹먹하던지......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제는 답을 알면서도 답을 실천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도시를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도시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상과 풍조에 깊이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중독자나 도박 중독자가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든 것처럼, 도시에 중독되고 현대 사상과 풍조에 중독된 이들이 그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술과 도박을 끊으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독자들이 그것을 끊지 못하듯이 거의 대부분의 도시인들도 도시를 떠나 농촌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깨어난 자들을 부르고 모으십니다. 저는 한국에도 아미쉬가 모여 사는 미국의 펜실베니아와 같은 곳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모여 만든 동네, 마을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 생태적 삶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고 대안이 되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증거하면 좋겠습니다.    



 격양가(擊壤歌), 일명 태평성대가는 고대 중국 요임금 또는 순임금 시절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땅을 치며 불렀다고 전해지는 노동요로 군주의 덕치(德治) 아래에서 백성들이 근심 없이 살아가는 태평한 시절을 노래한 것입니다.



日出而作,日入而息,

鑿井而飲,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네.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끼니를 때우니.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인류가 탐욕과 탐심을 내려놓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인류의 문제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만이라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태평한 하나님 나라의 삶이 선물로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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