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54)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54)
아나뱁티즘에 대한 저의 개인적 추구는 근원적으로는 산상수훈의 말씀과 사도행전적 교회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재 신앙의 첫 순간부터 산상수훈의 말씀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은 단번에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산상수훈은 주님의 가르침의 정수였고, 사도행전 2장, 4장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교회 뿐 아니라 인간 사회가 닮고 따라야 할 모범이었고 모델이었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고 싶고 초대 교회의 모습을 현실에서 실현하며 살아가는 삶은 제 마음의 열망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열망이 단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초기 신앙생활 5년 동안 모교회 교회 생활을 통해 보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중독 치유사역을 위해 모교회를 떠나와 독립적인 신앙 생활을 하면서 만나고 경험한 여타 교인들과 교회의 모습은 모교회 교인과 교회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의 차원이 아니라 그릇된 것, 틀린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양성의 원천이므로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수용하면 되고 공존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틀린 것이라면 교정되든, 개혁되든, 혁신되든 뭔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변화와 혁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변화와 혁신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혁신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답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산상수훈과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 모습에 답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실천하고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재현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교회를 떠나 독립적 신앙 생활과 중독치유선교 사역을 감당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은 말들은 “그게 안돼.” 였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계명이라 말씀하셨고 많은 가르침을 명령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이어 신약성경을 쓴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들이 쓴 글에서 명령법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해라, 하지 말아라의 명령어가 성경의 대다수 가르침의 기본 어법인 것입니다. 성경은 근본에 있어 계명과 율법의 책입니다. 그것은 구약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도 절대적으로 해당됩니다. 신약의 산상수훈도 모조리 계명과 율법조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에게 다시 말하노니”로 시작되는 산상수훈의 말씀들은 새로운 계명과 율법의 제정을 시사하는 표현입니다. 현대 교회의 문제는 바로 이 주님의 계명과 율법을, 그에 따른 주님의 명령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저 막연히 지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주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 부류의 그리스도인들, 곧 아나뱁티스트들만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꼭 지켜야 할 계명과 율법으로 알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여 왔습니다. 그들만이 초대 교회의 모습을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실현해야할 교회의 모델로 여기고 그 이상을 현실에 재현하려는 데에 열심이고 진심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 중 산상수훈의 말씀과 초대 교회의 모습을 현실에 재현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나 단체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교단적 수준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산상수훈의 말씀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실천하고자 한 마음 한 뜻으로 500년을 살아온 그리스도인들을 저는 아나뱁티스트 외에 거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교회의 거룩성을 상실함으로써 세상과 구별되지 않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고 명령된 계명과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아 들어라”(쉐마) 라고 말씀하시고 주님께서도 “내가 이제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원수 사랑으로 우리가 듣고 행하여야 할 계명을 요약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 계명의 이면에는 그리스도인 각 개인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를 존중하며 사랑하라는 자기 사랑의 명령이 포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계명과 명령을 그리스도인들이 잘 지키고 행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일거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아름답고 복된 세상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와 요한이 꿈꿨던 새 하늘 새 땅이 지금, 여기에 새롭게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메노 시몬즈가 말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단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으면 그분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교회는 삶의 방식(way of life)이다”
존 하워드 요더가 말합니다.
“예수의 제자됨은 교회당에서만이 아니라 공적 삶 전체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앨런 크라이더(Alan Kreider),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가 말합니다.
“신앙은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제자도는 예배가 끝난 후에 시작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일 오전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에 시험된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의 말미에 말씀하십니다.
“날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런데 도대체, 왜 오늘날의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명령을, 명령으로 귀담아 듣고 행하지 않게 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