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9)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9) 



15. 교회당을 증축하거나 신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크기는 아이들과 노인을 포함해 250명 규모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 이상으로 교회가 커지면 교회의 “가족성”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전 교인이 서로의 이름을 알고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교인 규모를 늘리는데 관심이 없었고, 교회당을 증축하거나 신축하는 대신 지교회로의 분립을 실천했습니다. 

16.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신문”을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정회원이 모이는 셀그룹 모임 외에 교회 출석하는 교인들을 “구역 모임”으로 편제하였는데 한두 달에 한 번씩 열렸습니다. 이 모임에는 정회원 외에 아직 믿음이 분명하지 않은 비신자들도 참가하였습니다. 구역 모임은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삶으로 전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때 그때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문제들을 주제로, 그 이슈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대응과 태도 등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토론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일에 깨어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17. 당시 초등학생을 부모로 둔 교인들을 중심으로 촌지 안주기 운동을 벌였는데, 모교회 교인들은 촌지 안주는 교인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고 세상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실천했습니다. 촌지 안주기 운동이 상징하듯이 모든 교인들은 자기들이 선 자리, 특히 직장에서나 마을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적, 도덕적 탁월성을 증거하는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18. 예배당 안에 강대상도 없었고 십자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안에 침례탕이 있었습니다. 침례를 중시했습니다. 침례라는 형식이 세례의 방식보다 성경 원형에 가깝다고 여겼고 침례 자체가 갖는 의미를 중시했습니다. 교회는 침례 받은 신자들로 구성된 무리요 모임이었고, 침례 받는 개인의 신앙고백과 그의 삶에 대한 교회의 증참을 중시했습니다. 침례 받는 이의 삶은 교회 회중들에 의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결격이 없음이 확증되어야 했습니다.  

19. 성가대가 없었고 찬양사역자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부르는 ‘회중 찬양’으로 찬양이 불렸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을 세우고, 특신도라는 인식을 가질 만한 조직구성을 배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찬양의 본질이 노래 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른 삶이 주님께 올려 드릴 찬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여주기 찬양(showing)을 지양하고 모두가 함께 한 마음으로 부르는 회중 찬양을 중시했습니다.

20. 중요한 회무를 두세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교인 총회(사무처리회)를 열어 처리했습니다. 교회의 회무를 전 교인이 모인 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직접민주주의)은 침례교의 특징이었는데, 그것이 의미 있으려면 교회의 규모가 250명을 넘지 않아야 했고, 그 중 유아, 청소년을 뺀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회원 숫자는 150명을 넘지 않는 수준이었기에 총회가 가능했습니다. 

21. 교회 행정은 다양한 위원회를 통해 실행되었고 위원회의 장은 세상에서의 직업과 지위와 전혀 상관 없는 인물로 채워졌습니다. 세상에서의 신분과 지위는 달란트일 뿐 은사는 다르다고 여겨졌고 은사에 따라 봉사의 직분이 결정되었습니다. 세상적 영향력이 교회에 침투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2. 육화된 선교를 지향하고 실천했습니다. 기독교 생활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육화에 있음을 강조하였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관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선교도 누구 한 사람의 파송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교비를 지원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몸된 교회도 함께 파송되는 것임을 실천하려 했습니다.  

23. 매달 ‘한 권의 책’을 소개받고 읽었습니다. 적어도 1년에 열두 권의 신앙서적을 온 교회가 열심히 읽고 다양한 단위의 코이노니아 시간을 통해 나누었습니다. 신앙의 길이 우리가 믿는 믿음에 대한 끝없는 지적 탐구의 길임을 교회가 잘 알고 이에 진지하게, 즐겁게 임했습니다.  

24. 교회 안에는 전직 목사, 전도사 였다가 일반 신자의 자리로 돌아온 여러 명의 형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교회에 출석하면서 새로운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침례신학교 내에서도 멀쩡한(?) 목사, 전도사를 평신도 만드는 교회로도 유명했습니다. 날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는 이른바 모태 신자들 중 진정한 회심의 경험 없이 신앙 생활하고 나아가서는 신학교를 나와 전도사, 목사가 된 사람들에게 진정한 회심의 환경을 제공하는 교회였고, 특히 예수님의 주되심(Lordship)을 내면화 하지 못한 채 목회자 생활하던 분들에게는 거듭남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드리는 예배는 참으로 거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성이 흘러넘쳤습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의 심령이 충만해지고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였습니다. 예배시간을 통해 틈틈이 들려지던 회심자들의 간증을 들으며 교인들은 함께 울고 함께 웃었습니다. 신자들의 살아 있는 예배가 매주 펼쳐졌습니다. 주일 예배가 손꼽아 기다려졌습니다. 참으로 예배는 믿는 자들의 거룩한 축제요 풍성한 성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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