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6)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6)
코이노니아는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의 백미,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우리말 성경에서 통상적으로 교제, 교통으로 번역되는데 대표적으로 성도의 교제(행 2:42), 그리스도와의 교제(고전 1:9), 성령과의 교통(고후 13:13)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로마사회에서 사용되던 코이노니아의 개념을 신자의 삶에 그대로 적용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영적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코이노니아를 가난한 자를 위해 헌금을 걷는 일에도 사용하고 성도들이 거룩한 성찬에 참가하는 일에도 사용합니다. 곧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성도가 하나되어 서로 교제하는 가운데 삶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기독교의 문제는 ”교회론“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교회가 신자들의 모임이므로 당연히 ”교회론“의 문제는 ”신자론“의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음도 자명합니다. 초대 교회는 “온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행 2:47)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하고,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에서 멀어져도 너무 멀리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저의 30년에 걸친 신앙 생활의 중심에도 늘 신자론과 교회론이 있습니다. 신자 다운 신자, 교회 다운 교회를 추구하고 탐구하며 세워나가는 것이 제 신앙 생활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장에 그려진 초대 교회의 모습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내면화한 신자들이 교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실제였습니다. 저의 신앙 생활 초기 5년, 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 저를 길러주고 훈련시킨 모교회에 제가 늘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은 초대 교회의 그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실제가 될 수 있음을 능히 보여주었고 그런 삶의 방식을 배우고 익히도록 저를 가르치고 훈련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신앙 생활 5년 동안 제가 모교회에서 배우고 훈련하고 익힌 것의 핵심은 바로 코이노니아 였습니다. 물론 그때는 그러한 삶을 코이노니아적인 삶으로 개념화하거나 명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모교회는 셀교회로의 전환을 힘있게 추동하고 있었는데 “셀”의 개념 속에 코이노니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교회 생활 초기 제가 받은 충격은 신선하고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출석한 첫날부터 주어졌는데, 교회 예배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나니 성경공부 모임이 있으니 참석하지않겠냐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 여섯이었는데 35세에서 40세까지의 장년들이 교회 근처의 누군가의 집에서 성경공부 모임으로 모인 것입니다. 모여서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성경 공부 모임을 가졌는데 모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진지하게 성경에 대해서 공부하는 모습이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모릅니다. 아니, 이 바쁜 세상에 일요일 날 집에서 쉬고 잠자기도 부족할 판에 아침부터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황금 같은 시간에 성경 공부한다고 다 큰 어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수험생들도 아니고 고딩들도 아닌데 다 큰 어른들이 뭘 배우겠다고 저렇게 열심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회사에서 승진하려고, 직무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공부할 수는 있다지만 성경이 거기서 거기지 뭘 그렇게 공부하겠다고 열심을 내는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성경 공부가 끝나서 이제 집에 가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개네 집에서 부부단위로 교제 모임을 갖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는 권유가 있어서 아내를 기다려 함께 참석 했습니다. 누군가의 집에 부부 동반으로 20명은 족히 넘는 인원이 모였습니다. 준비된 차와 다과가 나오고 모인 사람들이 자기의 신앙 생활, 사회 생활, 가정 생활, 교회 생활 등에 대해 격의 없이 나누고, 때론 고백하며, 함께 찬양하기도 하며 이른바 교제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2-3시간이 후다닥 지났습니다. 다 큰 어른들이, 술 한잔 없이, 인생을 얘기하고 자기의 고민을 털어 놓고, 신앙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은 정말 충격의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교회를 본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입니다! 천국을 본 것입니다! 때 묻지 않은 어른들의 순수를 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인간 모임이었던 것입니다. 각인(Imprinting)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리는 태어나자 마자 처음 본 움직이는 것을 부모인양 따르는 경향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교회를 처음 출석한 날 제가 경험한 새로운 유형의 인간 모임은 제 뇌리에 지워지지 않을 충격으로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서른 여섯 해를 살아오는 동안 저는 그런 유형의 인간 모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요컨대 저는 살아 있는 교회를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