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4)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4)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사람들입니다. 성경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지향을 찾습니다. 성서의 세계는 넓고 깊고 광대무변하여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 교단이 그 사상과 정신을 온전히 다 담고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보편적, 공리적 원리나 교리 안에서 전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 몸 안에 무수하고 다양한 지체가 존재하듯이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단체, 교단은 통일성 속에서 다양성을 드러냅니다. 저의 신앙의 첫걸음은 침례교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침례교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침례 교단의 특징에 대해서 배웠고 다른 교단과 침례 교단과의 차이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첫 순간부터 성경의 사상과 정신 중 제 마음속에 뚜렷히 각인된 신앙적 지향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사도행전 2장, 4장에 진술된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저는 신자들을 향한 계명이자 새 언약의 말씀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마땅한 삶의 양식(樣式)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산상수훈을 신자들에게 제시된 삶의 이상적 목표일 뿐 아니라 현실에서 실천하고 실현하여야 할 구체적 지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신앙생활의 초기 5년 동안 산상수훈의 말씀은 저를 압도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대라는 말씀은 지키기 어려울 듯 했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하는 자라 하셨고 친구에게 바보라 하는 자는 살인한 자라 하셨는데 너무한 말씀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참 좋은 말씀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니 이는 하잖은 인간들을 시험에 들게 하셔도 보통 들게 하시는 것이 아닌 듯 싶었습니다. 주님, 진정 산상수훈의 말씀들을 우리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수많은 날들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말 그대로 실천해야 할 덕목이나 윤리적 지침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에 대해 참 좋은 말씀이기는 하지만 우리같이 연약한 인간들이 어찌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느냐는 인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습니다. 나아가서는 그것은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이지 평범한 무리들에게 주신 계명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높은 이상을 제시해 주신 것이지 현실에서 꼭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액면 그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으며 그저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했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귀중한 말씀으로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귀한 말씀으로 마음에 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실생활에서, 일상에서, 삶의 현실에서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더더욱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산상수훈의 말씀을 이룰 수 없는 이상으로만 알고 지내던 제게 16C 네덜란드 아나뱁티스트 더크 빌렘스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아나뱁티스트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그의 순교의 이야기 – 자기를 추적하던 추적자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그를 살려주고, 그 추적자에게 다시 체포되어 결국 화형당한 이야기 – 가 제 마음을 격동시켰습니다. 있다! 여기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믿음의 선배가 있다!
2006년 펜실베니아 니켈 마인즈 아미쉬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동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미쉬 아나뱁티스트들이 보여준 용서화 화해의 행동과 잔혹한 살해 현장에서 어린 아미쉬 여학생들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 이야기 역시 제 마음을 요동치게 했습니다. 그 공포와 두려움의 순간에도 자기를 먼저 쏴달라고 간청하며,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희생을 자처한 어린 그리스도인 소녀들(당시 마리안은 13세, 바바라는 11세 였습니다.)의 순교의 이야기는 산상수훈의 말씀이, 원수 사랑의 말씀이 우리 삶의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소녀들도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순교하였는데 어른인 제가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85년작 <위트니스>도 산상수훈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아미쉬의 실체를 드러내어 알게 해 준 고마운 영화였습니다.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각본상과 편집상을 수상하였고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였는데 무엇보다도 아미쉬를 전세계에 홍보한, 아마도 아나뱁티스트들에게는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固所願)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미쉬에 대해 진지하게,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아니었지만 아나뱁티스트들에 대해, 아미쉬에 대해 알기 원했던 저에게는 살아있는 생생한 증거였습니다. 여기, 우리 시대에 산상수훈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앞서가는 선배들, 형제 자매들이 있으매 산상수훈은 이제 더이상 도달하기를 열망하는 이상(理想)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실천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주님의 뜻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산상수훈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으로 삼고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저는 아나뱁티스트 외 다른 이들에게서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나뱁티스트들을 따르며 살기로한 근원적 이유의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