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5)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5)



# 1995년 7월 13일. 교회에 출석한 지 4일째 되는 날. 담임목사님 부부가 저희집으로 심방을 오셨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목사 부부가 이렇게 가정방문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 제가 깨달은 성경 이야기, 최근의 체험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즐거움이 가득한 만남이었습니다. 즐거운 교제를 나누던 중 담임목사님이 “영접기도”를 제안하셨습니다. 그게 뭐하는거냐고 물었더니 예수를 내 인생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셔들이는 기도라 했습니다. 그런 뜻이라면 저는 이미 예수님을 제 인생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셔들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믿음을 “공적 기도”를 통해 표현하는게 좋겠다고 담임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적 기도행위를 할 수 없다고 완강히 맞섰습니다. 아니, 본인이 죄인임을 인정하였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이미 받아들이셨다면서 굳이 공적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저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날 인간이 만든 하찮은 이데올르기를 믿으며 목숨을 걸었던 인생인데 그런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공적 기도를 행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언제 어떻게 예수님을 배반할지 알 수 없는 존재가 저 자신임을 알고 있기에 제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할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럴 때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 담임목사님이 고린도전서 12:3절을 펼치시면서 읽어보라 했습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 그대로 지금 윤성모 형제님이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입니다 라고 공적 고백을 하는 것은 형제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님 안에 계신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거듭 영접 기도를 하자고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계속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로마서 10:10절의 말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를 펼쳐 보여주시며 마음속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구원을 이루기에 좋다고 하시면서 영접 기도를 함께 행하기를 거듭 요청하셨습니다. 만일 제가 지금 제 입술로 고백하는 이 고백이 윤성모 저 자신이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것이 맞냐고 세 번을 물었습니다. 만일 훗날 제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것은 제가 책임질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면 그 말씀에 의지해 영접 기도를 하겠노라고 겨우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고 하시면서 저의 영접 기도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긴 시간의 협상 아닌 협상이 끝나고 저는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셔들이는 영접기도를 통해 저의 신앙을 공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서, 담임목사님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이제 나의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일에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신다니 어떻게 이보다 더 좋은 인생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날 저는 저의 집에 있던 수백권의 책들을 다 끌어 모아 헌책방에 갔다 팔았습니다. 제가 본 수백 권의 책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안중에 두지 않고 써진 책들이었고 대부분은 사회과학 서적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책들을 헌책방에 갖다 팔면서 헛헛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참으로 인생이란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 날이었습니다. 부디 지금 믿는 이 믿음이 꿈이 아니기를, 지속적인 믿음이 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헌책방 문을 나서려는데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책은 「기독교와 주체사상」(북미주기독교학자외, 신앙과 지성사, 1993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으로 처음 사서 읽은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북미주 기독교인들이 북한과 교류해 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일단의 기독교인들-신학자들과 목사들 - 이 평양 김일성 대학에서 강의하며 학문적 교류를 하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 주체사상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인본주의적으로 해석, 적용한 것이다 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저도 그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참으로 독특하게도, 이런 용어의 조합이 가능할는지 모르겠는데, “인본주의적 신정국가”를 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유교를 제사제도를 통해 종교화 했듯이 인간의 사상을 종교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주체 종교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주제들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책을 통해 기독교와 주체사상, 북한 사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유익이 있었지만 그 책이 당시 제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북한 선교”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것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북한 선교사로 부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북녁 동포들에 대한 특심한 긍휼이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세례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저에게 여전히 그 사상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은 성령 세례를 받기 이전의 저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제 신앙생활의 처음 2-3년간, 제가 북아프리카 튀니지 단기선교(98년)에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받아 중독자들에 대한 치유 선교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 선교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며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97년, 중국 백두산 근처 산중 마을에서 탈북자들을 만나기도 했었고, 두만강 건너 손에 닿을 듯 보이던 북녘 땅을 애끓는 연민으로 바라보던 때도 그때였습니다. 예수님을 제 인생의 주님으로 모셔들이면서 선교 열망이 저를 이끌었고, 바울 사도는 제 인생의 평생 사표가 되었습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