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0)

라파공동체2026.03.28 15:2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30)



 개인적으로 제가 사회주의 사상을 섭렵하게 되고 그에 따라 행동했던 경험이 이후의 저의 인생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인류애적 세계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제 내면에서 통합되었고 이데올르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악마화 하는 일이 제 내면에서 사라졌습니다. 미국인, 영국인, 소련인,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북한 사람 등 어떤 나라, 어떤 국민을 만나도 이데올르기에 근거한 옳고 그름의 눈으로, 편견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냉전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대한민국이 이들 국가들과 수교를 맺게 된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요. 혁명의 깃발을 내리고 누군가와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제게 유익이 되었지만 목숨을 걸고 쟁취하려 했던 것이 한낱 허망한 꿈, 신기루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찾아온 상실감과 허탈감은 상상 이상으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은 채 제 영혼은 표류하였습니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불교 계통의 방하(放下)라는 기공 참선수련 단체를 소개받습니다. 그리고 그때 거기에서 두 번째 개안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공 참선 수련을 통해 제가 경험한 새로운 세상은 몸과 마음의 세상이었습니다. 이념의 세계에 함몰되어 있던 제가 몸과 육신의 신비를 알게 되었고, 인간의 마음이 신묘하기 짝이 없는 우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수련은 불경에 대한 강의를 틈틈이 듣는 가운데 보통은 가부좌를 틀고 눈은 한 곳에 고정한 채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진언을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반복해서 되뇌이는 아주 단순한 방식이었습니다. 마음이 곤고하고 힘든 상태가 아니었다면 뭐 이런 수련방식이 다 있어 하며 뛰쳐나왔을 법하였지만 수련원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했습니다. 곤고한 마음을 달랠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 단순한 수련이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운 효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진언을 반복해 되뇌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무슨 인생의 회한이 그렇게 많은지 가부좌를 틀고 않은 순간부터 잡생각들이 화살처럼 날라왔다 쏜살같이 도망가곤 해서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했는데 정신일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잡생각이 들면 드는대로 그냥 흘려보내라는 가르침을 따라 수행을 계속해 나가다 보니 잡생각을 떨쳐버리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1시간 내내 잡생각만 하다가 수련을 마치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진언을 외우며 정신을 집중하는 시간이 5분이면 충분한 정도가 되었습니다. 잡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가부좌를 튼 자세가 좌우로 흔들리곤 했지만 정신이 진언에 집중해 통일되는 순간이 되면 몸도 흔들림을 멈추고 몸과 마음이 완전한 고요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요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주 SF영화를 볼 때 영화의 주인공이 비행선을 나와 광활하고 무한한 무(無)의 공간에서 유영할 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고요와 평안함은 평생 어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이런 단순한 수련을 통해 내 몸과 마음 안에 이런 고요와 평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른바 무념무상의 상태를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투쟁, 투쟁 하며 투쟁 일변도로 살던 삶 가운데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인간 존재의 신비로운 영역이 경이 가운데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기공 수련을 통해 기(氣)의 존재와 쓰임을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혈이며 혈맥이며 혈도며 타통이며 운기조식이며 우주의 기며 하는 말이 그저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말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우주의 기를 내 몸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 몸에서 원하는 대로 운용한다는 것이 사실임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몸 안에서 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가부좌 상태에서 넓은 수련장을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닐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통한 정신 집중 상태가 아닌 보통의 정신상태라면 가부좌를 틀고 앉은 상태에서 펄쩍펄쩍 뛰어 다닌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텐데 그런 일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다간 공중부양도 가능할 것만 같았습니다. 몸의 어느 한 곳에 기를 모으고 내 몸에 있는 기를 다른 사람의 몸에 흘려 보내며, 그의 기를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들도 수련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묘한 경험이었습니다. 몸은 생물학적, 유물론적 실체 그 이상의, 그저 단순한 몸뚱이 이상의 신비로운 그 무엇이었습니다. 적어도 몸은 정신과 육체가 그 안에 있고 이 양자는 서로 유기적 통일 관계를 맺고 있는 참으로 신비로운 실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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