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9)

라파공동체2026.03.28 15:2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9)



 인류 공영, 평화 공존을 진정으로 믿고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세상 순리 깨닫는 다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한참 지난 지금, 아나뱁티즘을 제 개인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말들은 비로소 제게 실질적 의미를 갖는 단어들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그 말들은 그저 하나의 의례적 수사에 불과했습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식의 체중이 전혀 실리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그 말들은 어디까지나 힘을 통한 공영과 공존을 전제로 한 개념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선제 공격은 하지 않겠지만 – 필요하다면 그것을 배제하지 않지만 - 상대가 나를 공격하면 능히 대응하고 응징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을 때만 공영과 공존이 가능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믿음을 전제로 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 공영과 평화 공존은 베트남과 남한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공영, 공존하는 것처럼 반드시 힘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소련과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공영, 공존하는 것도 같은 예가 되겠지요.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소련,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을 보면서 인류 공영과 평화 공존의 꿈은 아직 멀리 있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평화는 종말론적 푯대이자 소망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비록 살아생전 평화, 그 아름다운 열매를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평생에 걸쳐 추구해야 할 주님의 종말론적 꿈이요 비전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평화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 공영, 평화 공존의 세상은 주님의 오심과 함께 “이미” 인류에게 왔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 완성의 가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1989-91년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연합이 붕괴되면서 남한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권에서 혁명의 기치는 급속히 내려지고 혁명을 주창하던 세력들은 민주화된 정치권을 포함해 다양한 현실 제도영역으로 흡수됩니다. 정치, 교육, 노동, 언론, 사법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주의적 사상을 “진보”의 이름으로 구현하기 시작합니다. 반공주의적 가치관이 오랜시간 지배해온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는 표현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남한 사회에서 “진보”의 스펙트럼은 넓은 폭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의 가장 오른쪽에 민주당이 있다면 가장 왼쪽에는 진보당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왼쪽 바깥으로는 제도권 밖의 시민사회운동세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보”의 반대편에는 “보수”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에서 보수의 분화 현상이 뚜렷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극우” 세력의 등장이 그것입니다. 공교롭게도 극우를 대변하는 것이 김진홍, 전광훈, 손현보 목사 등이 주도하는 기독교 세력이라는 점이 많은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있습니다. 극우파시스트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정치세력의 등장에 가장 당황하는 이들은 아마도 한국의 사회학자들인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 등장한 뉴라이트 운동이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하향세로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되던 시점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근자에는 12.3 계엄 선포 이후 극렬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였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안에도 다양한 정치이념을 가진 이들이 있고 그 이념에 따라서 세상과 똑같은 구조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지향이 기독교 진보와 기독교 극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도 그렇고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도 우리들 각자는 그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복음에 충실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우에서 좌에 이르는 정치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역시 정치적입니다. 나아가서는 혁명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순간 그것은 정치적, 혁명적 사상이나 행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로 국한한다면 한반도에는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과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이 있고, 그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 나라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20살 때까지 저는 자본주의 반공 이데올르기로 길러진 애국심 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광주 5.18 민주항쟁과 이들에 대한 군부독재 정권의 무도한 살상을 경험하면서 저는 반독재 학생운동가가 되었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자가 되었으며,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자로 변해 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동구 사회주의권과 소련의 몰락으로 혁명의 기치를 내리게 되었으니 제 개인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제 개인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그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무장봉기에 의한 혁명을 주장하던 이들이 일거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제 개인적 경험에 의한 한 남한 사회에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 주사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때 주체사상이 남한 사회 운동권의 주류적 흐름이 된 적은 있지만 동구 사회주의권의 총제적 붕괴를 경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국가사회의 제 영역에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이 펼쳐지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꾀하거나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북한을 포함해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외교적 차원에서 한미일 동맹을 중시하느냐 한미중소 다자 외교를 중시하느냐의 차이로 나타날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체제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기독교 극우 세력의 대응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2,000년 기독교 신학의 문제이기도 하며, 140년 한국 개신교 역사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며, 남과 북의 분열과 대립의 현대 역사와 관련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경 해석과 적용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며. 신학과 타 학문 사이의 통섭과 관련된 몹시 복잡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훗날 주님을 만난 후에 제가 주님에게서 느끼고 발견한 것은 “혁명가 예수”였습니다. 그 혁명은 제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던 “사랑의 혁명”이었고 “평화의 혁명” 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며, 내세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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