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7)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7)
불교의 가르침에 젖어, 참선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아 맛보기 전까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알기 전까지, 서른 다섯까지의 저의 젊은 날의 삶은 정의를 위한 투쟁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의와 불의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아야 했습니다. 제 평생의 삶 속에서 저는 세 번 개안(開眼)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개안된다는 것은 진리를 안다는 것을 말하는데 제게 있어 그것은 과정이지 단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 번의 개안 과정은 모두 세계관의 변화를 수반하는 격렬하고 전격적인 것들이었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태도, 곧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전면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변화들은 내가 살기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전혀 다른 차원의 체험을 동반하였습니다. 내가 경험한 세 차원의 나라는 첫 번째는 자본주의 국가인가, 사회주의 국가인가와 같은 현실 체체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의 나라는 내 내면에 살아 숨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나라에 대한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개안은 민주화의 봄과 함께 시작된 대학생활을 통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 하기 전 저는 군부독재에 맞서 야당 정치활동을 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는 야당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대학 입학 당시의 꿈은 그저 고시에 패스하거나 해서 입신양명을 꾀하려는 평범한 젊은이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사회주의 혁명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기 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급속한 변화를 가져다 준 가장 큰 이유는 20살 그때까지 내가 알고 믿어왔던 중요한 가치가 왜곡되고 조작되었으며 편향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습니다. 국가가 혹은 유한한 일개 정권이 국가 보위와 체제 안위, 정권 유지를 위해 사상과 학문, 언론을 통제하고 역사와 진실을 거짓으로 도배하고 왜곡할 수 있음을 알았을 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2025년 4월 15일자 한겨레 신문보도입니다.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이사장 황석영)은 오는 17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을 연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보도자료에서 2025년 4월 17일은 일본제국주의의 압박에서 조선의 절대해방을 이루려고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숨막히는 감시망을 뚫고 조선공산당을 결성한 날이라고 전한 뒤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은 ‘죽은 역사’로 남아있기를 강요받았다. 이번 기념식이 ‘죽은 역사’가 부활하는 역사적 복권의 출발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기념식에는 김재봉, 권오설, 이관술 등 조선공산당 주요 간부 후손들이 참석해 인사하며 내년및 2029년 100주년인 6.10 독립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사업 소개도 이루어진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의 기본 논조는 ”아니, 21C 대한민국에서, 대명천지에 어찌 공산당, 빨갱이들이 설쳐대는 나라가 되었는지” 개탄하는 내용들입니다. 남과 북이 평화를 이루어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해 보입니다. 정치성향에 따라 사람들이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진다는 점이야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자본주의체제냐 사회주의 체제냐에 따라 역사적 사실과 현실 자체를 체제편향적으로 왜곡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학교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가져다준 충격이 뇌리에 생생합니다. 베트남이 공산당에 의해 적화된 것이 본질이 아나라 베트남 전쟁의 본질은 제국주의 외세, 곧 프랑스와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북베트남 공산당이 베트남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루어낸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새로운 시각은 개안의 출발점이되었습니다. 적어도 베트남 민중에게 호치민과 공산당은 제국주의 외세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고 구원해준 존중받고 높임받아 마땅한 영웅들이었습니다. 베트남이 적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해방된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적화되었으므로 베트남 국가가 망한 것이 아니라 해방된 자유독립국가로 다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제국주의 외세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싸우는 나라에 제국주의 미국의 편이 되어서 군대를 파견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의구심이 증폭되었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적이고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경종이 울렸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민족의 일제로부터의 민족해방투쟁사에서 공산당과 좌파 혁명가들이 벌인 여러 행적들을 알게 되면서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한 투쟁에서 좌파와 우파의 투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베트남의 민족해방투쟁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의 민족해방투쟁의 역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좌파의 항일투쟁의 역사는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했고 그들의 역사가 우리 역사의 정당한 일부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일제 강점기 “조선공산당”이 존재했으며, 그들이 항일투쟁의 선봉에서 끈질기게 일제에 항거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 암태도 소작쟁의, 원산총파업, 6.10만세 운동, 광주학생의거 등등 –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남한에 있나 북한에 있나를 의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