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6)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6)



 평화처럼 좋고 아름다운 말이 없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걸어야 하는 “평화의 길”은 고뇌의 길이고 고난의 길이며 핍박의 길이고 심지어는 죽음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도를 실천함에 있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죽음의 길, 순교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의 길일 것입니다. 평시에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전시가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집니다. 남과 북이 정전 상태를 유지하는 한 평화를 말하는 것이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한 누구나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시 상황이 오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가장 먼저 재갈 채워질 사람들은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투옥과 죽음의 위협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나를 위하여,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의 말씀을 함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평화를 말하는 이들의 천국은 핍박과 함께 오게 되어 있습니다. 슈버틀러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 자란 세대로서 전쟁 세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습니다. 또한 분단체제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랐습니다. 전쟁에 대한 위협과 불안은 내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에 깊은 뿌리를 내렸고 적(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애국심의 핵심으로 여기며 자랐습니다.



# 1970년이나 71년 봄, 초등학교 5-6학년때의 어느 봄날 나는 전쟁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켜 남한에서 환갑을 치르려 한다는 소문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학교에 퍼졌습니다. 악마 같은 공산당이, 이미 한 차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공산당이 자유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유린하는 참상을 떠올리며 어린 영혼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1972년 가을 박정희 대통령은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10월 유신을 선포하였습니다. 강력한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국민교육현장을 암송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마다 애국자가 되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하곤 했습니다.



# 1979년 10.26 사건이 발생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합니다. 이어서 전두환 군부독재가 등장하고 민주화의 봄은 압살 당합니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불붙기 시작한 민주화운동은 1987년 민주대항쟁으로 완성됩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민주헌법이 마련되고 민주공화국의 초석이 마련됩니다. 이 시기 저는 학생운동가로, 노동운동가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청년혁명가로 변해 있었습니다. 1983년 2월 25일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였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전쟁 실제 상황이라는 방송이 전국을 강타하던 그날, 남과 북 사이에 전쟁이 나면 어느 편에 서야 할지를 목숨을 걸고 고민하던 그 순간, 나는 사회주의 나라 북한 편에 서기로 결심합니다. 총부리를 남한 파쇼정권에 들이대겠다고 결심합니다. 곧 전쟁 실제 상황이 아니라 이웅평 대위의 귀순 사건으로 판명되었지만 그 순간 나의 조국은 내가 신봉하던 사회주의 신념에 따라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었습니다.



#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집니다. 이어서 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붕괴됩니다. 사회주의 이상을 추구했던 저의 멘탈도 완전히 붕괴됩니다. 푯대 잃은 영혼은 갈 길을 잃고 30대 늦은 방황이 시작됩니다. 방하(放下)라는 기공 수련 단체를 소개받고 매일 두 시간씩 참선 수련을 하며 방황의 순간을 견뎌 나갑니다. 그때 성철 스님의 놀라운 가르침이 저를 압도합니다. 성철 스님의 평생의 깨달음은 첫째는 “자기를 바로 보세요” 였고 둘째는 “남을 위해 삽시다”였는데 이 가르침이 10년을 넘게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사회주의 신념에 가득차 있던 제 영혼을 쇄신합니다. 세상에, 이토록 간결하게 인생의 진수를 요약할 수 있다니! 이 분은 정년 성자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념의 세계를 능히 뛰어넘는 종교의 세계로 입문합니다. 그리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가득찬 나의 자아상을 관(觀)합니다. 그때 나는 출가할 뻔 했습니다! 그 도가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 1995년 6월의 마지막 주, 저보다 3개월 먼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아내의 권유로 마태복음을 읽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제 마음을 만지십니다. 참으로 신비롭게도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이 믿어졌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고 매주 성경공부 시간과 채플 시간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들었고 알았음에도 나와 아무 관계가 없던 예수가, 그의 이야기가(History)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바야흐로 제 인생의 2막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저의 영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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