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5)

라파공동체2026.03.28 15:2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5)



 모든 종교, 모든 교단이 평화를 말하고 있지만 아나뱁티스트가 말하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아나뱁티스트가 말하는 평화란, 

1. 국가 간, 개인 간에 있어서 일체의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어라.)

2.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람을 살상하지 않는 것

(살인하지 말라)

3. 일체의 전쟁을 반대하고 군대징집을 거부하는 것

(원수를 사랑하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

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부수적 원칙을 수반합니다.

4. 참된 진리는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니다. 죽이는 것은 참 진리라 할 수 없다. 

5. 내가 아무리 옳고 남이 틀렸다고 해도 죽여서는 안된다.

6. 정의를 폭력으로 이룰 수는 없다. 정의의 전쟁이란 없다.

7.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8.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보복하거나 맞서서는 안된다.

9. 정당한 전쟁이란 없다. 

10. 아무리 좋은 이상도 폭력으로 이루어서는 안된다. 등이 그것입니다.



 현대 아나뱁티스트들은 정의의 전쟁도, 정당한 전쟁도, 정당방어로서의 폭력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의 전쟁 반대, 군대 징집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처음부터 이런 입장을 주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평화 사상과 신념을 절대적 가치로 갖게 된 것은 “슈버틀러의 강”을 건넌 후였습니다. 초창기 아나뱁티스트로 분류되는 토마스 뮌처나 얀 마티스 등은 검을 사용해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이들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초창기 아나뱁티즘의 대표적 신학자였던 발타자르 휘브마이어 역시 검의 사용에 동의했습니다. 그가 사역하고 있던 모라비아 니콜스버그 지역은 투르크족의 침략 위협 아래 있었는데 이때 발타자르 휘브마이어는 투르크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거두어도 좋고 검을 사용해도 좋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한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전자는 검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의 “슈버틀러(Schbertler)”로 불렸고, 후자의 무리는 지팡이를 가진 자들이라는 뜻의 “스태블러(Stäbler)”로 불렸습니다. 슈버틀러들은 오래지 않아 아나뱁티스트의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고 오직 스태블러만이 살아 남아 현대 아나뱁티스트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현대 역사에서 아나뱁티스트가 되려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슈버틀러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 강을 건너면서 품속의 칼을 강물에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손에 평화의 지팡이를 들고 평화의 순례길, 나그네길을 걸어야 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바, 믿음의 도약을 이루어 내고 평화의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3년의 시간을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품속에 칼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순간 베드로는 품고 있던 칼을 뽑아 저항하면서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떨어져 나간 말고의 귀를 붙여주시면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칼을 가진 자 칼로 망한다.” 슈버틀러가 검을 잡은 것은 방어적 목적에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오직 평화의 지팡이를 쥔 자들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이 아나뱁티스트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나라에서는 여전히 슈버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고 세속 국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도 슈버틀러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 카톨릭 교단이 개신교 교단에 비해 평화에 대해 더 많은 메시지를 내고 있습니다.(며칠 전 선종에 든 프란체스코 교황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칼을 품고 다녔던 베드로처럼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칼을 품에 품고 다닙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품에 칼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채 다닙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감추어져 있던 칼을 꺼냅니다. 두려움과 위협에 맞서 본능적으로 감추어둔 칼을 꺼내듭니다. 그런 연후에 기도합니다. “주님, 이 칼 위에 함께 하사 우리를 보우하소서.”라고 말입니다. 칼이 먼저고 주님은 그 다음입니다. 오랜 시간을 저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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