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4)

라파공동체2026.03.28 15:2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4)



 16-7C 근대의 여명기에서 인류 문명과 기독교 문명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시대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보다 풍부히 알기 위해 탐구의 범주를 약간 넓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저는 뮌처와 루터, 그리고 아나뱁티스트와의 상관관계를 살펴 보았는데, 이 탐구의 범주에 영국 청교도혁명의 주역 올리버 크롬웰을 포함시켜 보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와 종교, 폭력과 기독교, 기독교적 이상의 현실적 적용 및 실천 등등에 대한 제 그룹의 입장을 비교해 보려 합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개신교단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에 실존하는 수많은 개신교단들이 모두 루터에게 빚을 지고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가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대변할 수는 없었습니다. 루터와는 다른 교의로, 다른 태도와 관점으로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대변하는 수많은 교단과 종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개인 신앙의 자유를 주창한 루터의 공로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다른 수많은 개신교 교단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평화사상”입니다. 아나뱁티스트 “평화사상”의 핵심은 “평화로서 평화에 이른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인류 문명과 주류 기독교 문명이 추구해 온 것은 칼로써 평화를 이룬다는 “칼의 평화”였습니다. 과거의 팍스 로마나, 현대의 팍스 아메리카나 모두 칼로 이룬 평화였습니다.  



 뮌처가 칼을 사용해 농민들을 억압하는 봉건영주국가를 변혁하려 했다면 루터는 칼을 사용해

농민봉기를 무력화 하고 봉건영주체제를 존속시켰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 1534년 영국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헨리8세가 수장령을 발표함으로써 카톨릭 교황체제와 결별하여 영국 성공회를 만들고 이후 루터와 칼뱅의 영향을 받아 개신교로 전환합니다. 그러나 성공회의 느슨한 개혁에 반발해 청교도가 탄생하고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에 1642년 성공회 왕당파와 청교도 의회파 간에 내전이 발생합니다. 이때 청교도 의회군의 지도자가 올리버 크롬웰이었습니다. 크롬웰은 그 자신이 탁월한 군사전략가였기에 “신형군(New Model Army)”을 이끌고 내전에서 승리합니다. 1649년 크롬웰은 왕권신수설을 주창했던 찰스1세를 공개 참수함으로써 절대 왕권의 종말을 선언하고 잉글랜드 공화국을 수립합니다. 여기서 더 나가 크롬웰은 1653년부터 1658년까지 자신을 호국경(Lord Protector)이라 칭하고 연극, 음주, 도박 등의 금지 등 엄격한 윤리가 지배하는 청교도 국가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아나뱁티즘의 결정적 토대를 제공한 메노 시몬즈를 더하여 이들 네 사람은 모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세우기를 원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루터는 교회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세상 나라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루터는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 대해 간섭하고 통제해서는 안된다며 신앙의 자유를 옹호했지만 교회는 기성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루터의 개혁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차원에 국한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뮌처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의 개혁은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개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실천했습니다. 그는 기성의 국가 사회 체제, 기득권적 질서의 혁파를 추구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은 무력으로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정을 세움으로 정치사회적 개혁을 이루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왕과 귀족 중심의 성공회 국가종교 체제를 청교도 국가종교 체제로 바꾸었을 뿐, 중세적 신정국가의 구체제적 질서를 답습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칼”에 의해 하나님 나라의 보존을 꾀하거나 당시 국가사회 체제를 변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평화에 의한 평화”와 “평화로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지구상에는 2024년 현재 30억명의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17억의 개신교인과 13억의 카톨릭, 정교회 교인이 있습니다. 이들 중 아나뱁티스트 200만명을 뺀 29억 9,800만명의 교인이 “칼에 의한 평화”를 믿습니다. 전세계 인구인 70억명 중에서는 69억 9,800만명이 “칼에 의한 평화”를 믿습니다. (“평화에 의한 평화”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형제교회, 퀘이커, 여호와의 증인 교인들이 있으니 이들을 다 합치면 1,000만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세상에 평화를 싫어하고 마다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평화에 의한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 또한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에 의한 평화”는 어디까지나 꿈과 이상의 차원에서만 머물뿐 평화가 현실의 문제가 될 때 사람들은 즉각 감추었던 칼을 빼어 들고 “칼의 평화”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칼의 평화”는 수천, 수만년을 살아온 인류에게 거의 DNA적으로 유전되어온 정신적 유전형질에 가까워서 좀처럼 변형되기가 어려운 정신 영역입니다. 원시 시대로부터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칼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무한경쟁의 현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칼로 상징되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말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것과 같아서 반발력의 세기가 엄청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의 절대 다수가 “칼의 평화”를 믿고 그것을 삶의 실제로 알고 행동하는 현실 속에서 “평화에 의한 평화”를 말하고 행동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핍박을 감수하고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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