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0)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20)
한국의 장로교가 아나뱁티스트들에게 보내는 상징적인 화해의 메시지는 두란노출판사에서 2011년 출간한 「성령주의와 아나뱁티스트 종교개혁자들」 (2011, 두란노, 홍지훈, 남병두 역, 두란노 고전총서 20번째)을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두란노 출판사가 기획 발간한 두란노 고전총서 20권은 기독교 문서선교 사역의 귀중한 열매 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원전 그대로 보기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들은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초대 교부들의 글로부터 시작해 중세를 거쳐 종교개혁기의 신학자들의 글을 망라해 원전 그대로 번역 출간한 이 기획의 마지막 책이 「성령주의와 아나뱁티스트 종교개혁자들」이었습니다. 장로교 출판사에서 아나뱁티스트들에 관한 책을 출간한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참으로 반갑지 않습니까? 더 고마운 것은 이 책의 역자들이 서문을 통해 아나뱁티스트의 신학과 사상, 존재에 대해 공정한 평가와 판단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책은 1957년 발행된 하버드대 교회사 교수였던 조지 윌리엄스의 저서 「Spiritual and Anabapist Writers」를 번역한 것인데 그는 대작 「The Radical Reformation」을 1962년에 발표함으로써 아나뱁티즘을 역사 속에 다시 복원시킨 아나뱁티즘 역사 연구의 대가였습니다. 오늘날 아나뱁티즘에 대한 연구 작업과 결실은 모두 그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윌리엄스의 저서 「The Radical Reformation」이 아나뱁티즘을 현대 교회사 속에 바르게 복원시켰다면 「성령주의와 아나뱁티스트 종교개혁자들」은 아나뱁티즘을 한국 교회사 속에 올바로 위치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역자들은 통상적으로 “급진적”으로 번역하였던 “radical”이라는 단어를 “근원적”으로 번역하고 표현함으로써 아나뱁티스트들의 사상과 신학, 존재에 대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롤란드 H. 베인톤은 아나뱁티스들에 대해 “은닉된 교회”라고 불렀고, K 아란트는 “종교개혁의 좌익”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나뱁티스트의 신학과 사상, 그리고 실천에 대해 윌리엄스는 “radical” 하다고 평가했는데 그것을 한국 기독교에서는 “급진적”으로 번역함으로써 아나뱁티즘을 “종교개혁기의 급진적 좌파 신학”, “급진적 좌파 종교개혁”으로 인식케 되는 상황을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radical”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뿌리(root)”에서 출발하고 있음에 착안하여 아나뱁티즘을 “근원적 종교개혁”이라 명명함으로써 한국 기독교계에서 오랜 시간 아나뱁티스트들에게 가해젔던 오해와 편견을 물리치고 공정한 평가의 장을 마련하는 전기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6.25 전쟁을 경험하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이데올르기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급진적”이라는 표현은 곧 “빨갱이”를 연상시키기 십상입니다. 한국의 이러한 역사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역자들이 “급진적”이라는 표현을 “근원적”으로 변경함으로써 아나뱁티즘에 대한 긍정적 이해의 지평을 새롭게 열게 된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어 하나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책의 제목 「성령주의와 아나뱁티스트 종교개혁자들」을 「아나뱁티스트 종교개혁자들과 영성」 정도로 번역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정작 “성령주의”란 표현이 아나뱁티스트들에게는 화인 맞은 상처가 들춰지는 아픔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나뱁티즘의 초기 지도자였던 토마스 뮌처와 얀 마티스, 얀 판 레이덴은 각각 1525년 독일 뮐하우젠에서, 1535년 뮌스터에서 천년왕국 사상을 바탕으로 무력에 의지해 농민봉기(농민혁명)를 일으키지만 결국 봉건영주와 귀족세력, 그리고 카톨릭 세력에 의해 처참하고 잔인하게 진압당하는데 이들은 성령의 직접 계시를 믿고 따랐던 이른바 “성령주의자들” 이었습니다. 윌리엄스는 16C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을 성령주의자와 이성주의자, 성서주의자로 분류하는데 토마스 뮌처와 얀 마티스, 얀 판 레이덴은 대표적 아나뱁티스트 성령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천년왕국을 건설하고 신정 왕국을 이루었던 기간은 아나뱁티즘이 탄생되던 초창기 1525년에서 1535년 사이의 10년여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행적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나뱁티스트들을 급진주의자로, 종교개혁기의 이단으로 취급받게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뮌스터의 천년왕국이 괴멸된 이후 지난 490여년 동안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에 대한 반동으로 더 철저한 평화주의자로 살아왔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초창기 아나뱁티즘의 세 부류 중 폭력에 의지해 신정 국가를 세우려 했던 부류는 오직 “성령주의자들” 뿐, 이성주의적, 성서주의적 아나뱁티스트들은 처음부터 평화사상을 신학과 신앙생활의 핵심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성령주의”란 표현은 여전히 핍박을 예기하는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한강은 4.3의 아픔과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나뱁티스트들은 초창기 아나뱁티스들이었던 토마스 뮌처와 얀 마티스, 얀 판 레이덴의 폭력을 불사한 신정 국가의 건설이라는 사상과는 확실하게 결별하였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일구어 가는 참된 평화의 하나님 나라 비전과는 작별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