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6)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6)



 기독교는 용서와 화해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경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만큼 용서와 화해에 미숙한 종교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서방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서로의 앙금을 씻고 용서와 화해의 만남을 가진 것은 그들이 서로를 파문하면서 갈라진 1054년 이후 근 1,00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중 교황 바오로 6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는 상호 파문을 철회하는 공동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서방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 사이에 용서와 화해의 새 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카톨릭 교단과 아나뱁티스트 사이에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진 것도 박해가 이루어진지 480

년이 지난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희년(Jubilee Year)을 선포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과거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아나뱁티스트를 포함한 종교개혁 시기 박해받은 개신교인들에 대해 언급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메노나이트 세계

총회(Mennonite World Conference, MWC)와 바티칸 간의 오랜 대화 끝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역사적으로 아나뱁티스트를 박해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독일에서는 카톨릭 주교회의가 공식적으로 메노나이트에게 사과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개신교단 내부에서는 2010년 세계루터교연맹(Lutheran World Federation, LWF)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총회에서 16세기 루터교 지도자들이 아나뱁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박해한 역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였고 메노나이트 세계총회(Mennonite World Conference, MWC)는 이를 받아들여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던 2017년 루터교와 메노나이트 지도자들은 독일에서 함께 기념 예배를 드리며, 화해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루터교 측은 "우리가 형제자매로 인정하지 못했던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에게 우리의 죄를 고백한다"며 다시 한번 사과했고 아나뱁티스트 측도 루터교와 함께 연합을 이루며 평화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개혁교회(장로교)측에서는 2006년 스위스 개혁교회가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과거 박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 흐름들이 한국에서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한국 장로교 내에서도 이러한 고백이 공식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한국의 아나뱁티즘의 연륜이 짧고 그 수가 미미하다 할지라도 한국의 가장 큰 교단인 장로교단이 카톨릭과 루터교와 개혁교회가 행한 것 같이 과거 선조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을 한국의 아나뱁티스트들에게 구하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것이 아나뱁티스에게 덧씌어진 주홍글씨를 지워내는 가장 좋은 길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나뱁티스트에게 부당하게 가해지고 있는 오래된 오해와 편견을 해결하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사실 장로교는 16C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직접적 박해자는 아닙니다. 츠빙글리와 칼뱅의 영향으로 스위스, 네덜란드에서 개혁주의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때 칼뱅의 영향을 받은 존 녹스가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1560년 세운 교단이 장로교이기 때문에 그들은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직접적 박해자는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아나뱁티스트를 박해한 칼뱅의 후예들이라는 점에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고백하는 일, 그들이 믿고 따르는 칼뱅의 잘못을 고백하고 드러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기독교의 발전과 갱신된 미래를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장로교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은 진실을 호도하며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례교는 태생적으로 아나뱁티즘과 연관되어 있기에 아나뱁티즘에 대한 반감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장 우호적인 교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감리교와의 관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웨슬레가 깊은 회심을 경험하고 감리교를 창립하였을 때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들은 아나뱁티스트들과 연관을 맺고 있었던 모라비안 교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나뱁티스트들을 박해한 개혁교회의 일원인 장로교의 아나뱁티스트들에 대한 태도는 특히 한국 교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의 장로교가 그들이 깊은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는 해외의 개혁교회, 특히 2006년 스위스 개혁교회가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과거의 박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던 것과 같은 일들이 한국 장로교 안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한국 아나뱁티스트들에게 더할 수 없는 축복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