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
라파공동체2026.03.28 15:24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8)
제가 오랜 시간 탐구하고 공부하고 만나 경험하여 맛본 아나뱁티스들은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신자의 침례, 신자의 교회를 강조하는 사람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공유적 삶을 사는 사람들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철저한 제자도를 실천하는 사람들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들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계급적 성직제도를 거부하는 사람들
신앙을 위해 목숨마저 내놓은 사람들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구원 이후의 성화를 강조하는 사람들
신앙(복음)을 성품화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참 좋은 사람들이 아닐까요? 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 그들이 그렇게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고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그들이 국가와의 관계를 설정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16C 아나뱁티스트들이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며 “신자의 교회”를 탄생시키는 순간, 그들이 국가의 탄압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종교 국가, 국가 종교의 근본질서를 위협하고 어지럽히는 불온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가진 위협성에 비하면 로마정부에 대한 예수님의 반란죄와 소요죄 죄목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국부, 곧 국가의 국력의 크기는 그 나라의 인구수와 그들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세금(대체로 인두세에 해당하는 것인데)의 크기, 그리고 그들을 전시에 발탁해 활용하는 군사력의 크기에 달려 있었습니다. 어린 아기는 태어나면서 바로 유아침례를 받았고 그것과 그 동시에 그 나라의 신민으로 등록되었으며 이 아이들은 자라나 국가의 세금원이 되고, 군인으로 발탁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아 침례는 오늘날로 치면 그 나라의 국민임을 확증해 주는, 시민권을 부여해 주는, 그것을 통해 유아침례를 받은 그 사람 스스로가 속지주의적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게 하는, 무려 1,200년을 유지해온 중세 유럽국가의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따라서 아나뱁티스트들이 유아침례를 반대하고 성인 신자만의 침례를 주장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신앙적, 신학적 이유에서였다 할지라도 다른 한편에서는 중세 종교 국가 존립의 근본 질서를 근저로부터 해체하는 심각한 위협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고조되기 시작했던, 중세의 몰락을 가져온 농민전쟁의 내부적 발발 분위기와 카톨릭 국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외부적 압력에 둘러싸인 루터와 츠빙글리 진영이 느끼는 적전 분열의 두려움과 공포,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아나뱁티스트들과 루터, 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신자의 침례 논쟁에서 중요한 성서적 논거 중의 하나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고넬료 권속의 침례 사건 해석 여부였습니다. 츠빙글리 등의 주장은 이것 봐라. 성경에도 이렇게 유아침례의 사례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지요. 모든 권속에 유아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쯤 되면 말장난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회적 사건을 두고 유아침례가 일반적이었다고 과잉일반화 하는 것은 견강부회의 궤변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천재적 신학자들이었던 칼빈과 츠빙글리의 논거적 일천함을 엿볼 뿐입니다. 그들 뿐만 아니라 당시 그 누구도 유아침례의 성서적 근거를 밝히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신약성경 전체가 신자(믿는 자)들의 침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명백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해 시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침례” 주장은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습니다. 그러므로 옳은 것을 주장한 사람들이 도리어 죽임을 당한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고 부당한 것입니다. 이들 신실한 아나뱁티스들의 죽음은 오늘을 사는 신자들의 이름으로 신원되어야 마땅 합니다. 아나뱁티스트 신앙의 수호자로서 살아 생전 6,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고 츠빙글리에 맞서 싸운 아나뱁티스트 신학자 발타자르 휘브마이어가 늘 되뇌이던 말은 “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