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
라파공동체2026.03.28 15:2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4)
제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모교회의 입장이 그와 같았습니다. 침례교단에 속한 침례교회였지만 아나뱁티즘의 지향을 상당히 반영하던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평신도성을 무척 강조하였고, 평신도 신앙교육과 훈련에 철저했습니다. 모교회에 5년 출석하는 동안 제가 수료한 신앙프로그램과 훈련과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5년 동안 제가 수료한 프로그램과 훈련은 기초과목인 <신앙생활입문>,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등에서부터 시작해 고급 프로그램인 <부부의 삶> <기도의 삶>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20과목은 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셀그룹 교회를 표방하고 교회를 전면적으로 재편하였는데 셀그룹 활동을 통한 성도의 교제의 긴밀성과 조밀성, 친밀성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5년의 신앙생활을 경험한 후 6년째에 저는 침례신학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헬라어, 히브리어, 원전석의 같은 과목을 제외한 여타 과목들에 대해서는 신학교 학부교육 경험이 없는 제게도 새로울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교회생활을 통해 신앙생활에 필요한 신앙적, 신학적 기초를 충분히 습득하였기 때문입니다. 모교회는 나아가서 교회를 분립 개척할 때에 과감한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평신도를 분립 개척교회의 담임목사로 선출하였던 것입니다. 훗날 시간이 흘러 정규 신학대학교를 나온 목회자로 담임 목회자가 교체되기는 했지만 침례교단 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시도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침례교단이 가지고 있는 느슨한 연합속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장로교나 감리교 등 다른 교단과 비교해 침례교단은 개교회주의를 표방하고 있기에 개별 교회를 향한 교단의 구속력이 다른 교단에 비해 현저히 약합니다. 그래서 저희 모교회의 과감한 실험 –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평신도를 담임목회자로 세우는 일 – 이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침례교단의 종교의 자유에 대한 강한 지지와 개교회 중심주의에 따른 느슨한 교회연합의 속성은 아마도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철저히 추구한 아나뱁티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침례교회와 재침례교회와는 공식적으로나 직접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지금의 침례교회는 영국의 성공회를 반대하는 개신교 청교도 운동과 영국 내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나뱁티즘이 시작된 1525년보다 훨씬 후인 1609년 영국의 존 스미스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도망와서 침례교회를 세웠고, 그가 죽은 후 그의 동료였던 토마스 헬위스가 영국으로 돌아가 1612년 영국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네덜란드에는 이미 메노나이트 아나뱁티스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들이 아나뱁티즘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론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침례교회의 특성으로 설명되는 신자의 침례 / 종교의 자유 / 개교회주의 / 성경의 우선성(Sola Scriptura)은 모두가 아나뱁티즘이 지향하는 표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느슨한 연합을 지향합니다. 그들은 교단을 추구하거나 세우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단체제가 지니고 있는 강제성과 구속성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각 교단이 표방하는 “신조”를 통해 진리의 독점적 배타성이 드러나고 다른 사람들을 배격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좋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16C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은 루터가 세운 루터교단으로부터, 칼뱅이 세운 장로교단으로부터, 그리고 카톨릭 교단으로부터 배척당하고 핍박당하였으며, 자기의 땅에서 쫓겨나고 죽임당했습니다. 그래서 아나뱁티스트들은 “신조”보다는 “고백”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 합니다. 1527년 아나뱁티스트들이 독일 쉴라이타임에 모여 아나뱁티즘을 정리하였을 때 그것을 “쉴라이타임 신조”라 하지 않고 “쉴라이타임 고백”이라고 부른 것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였습니다. “고백”은 신앙의 교리적 측면을 반영하기보다는 신앙을 대하는 신자들의 태도와 자세와 관련된 삶의 모습, 신앙의 실천적 모습에 더 관심이 있고 방점이 찍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자 합니다 라는 자기 고백일 뿐 당신들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에 찬 주장이 아닙니다. 나의 주장이 타인에 대한 강제가 되는 것을 아나뱁티스트들은 좋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교단을 만들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무슨 문제일 수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