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30)

관리자2026.04.02 22:584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30)

아나뱁티즘이 추구하는 신앙을 ‘도시화된 신학’ 혹은 ‘도시신학’과 대비해 ‘시골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경 언어를 사용해서는 <예루살렘 신학과 갈릴리 신학>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저의 개인적 바램도 지면을 할애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성경이 시대에 따라 끝없이 재해석되고 변화, 발전하여야 하듯이 아나뱁티즘 신앙과 신학도 그러해야 함을 반영하는 시도일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신학이 변하듯이 개인의 신앙과 신학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합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던 첫 5년간 극동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당시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렸던 이동원, 옥한흠, 하용조, 홍정길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도 저의 영혼은 풍요로움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차원에서 중독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치유선교 사역을 시작하고, 세상 속 기독교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제 신앙의 지향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복음주의 4인방의 설교가 마치 ‘당의정’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에 비해 예수원 대천덕 신부의 삶과 저작들이 제 영혼의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내 인생과 신앙의 안내자가 되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아나뱁티즘에 대해 알아가면서 동시에 제가 찾은 신앙의 선배들은 유영모, 함석헌, 김교신, 문익환, 마더 테레사, 슈바이처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제 서재에 전기 혹은 평전의 이름으로 꽂혀 있는 책들의 주인공입니다. 이분들이 제가 따를 신앙의 모델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소개한 바 있듯이 지난 해 주일 예배 시간에 영상을 통해 우리가 탐구했던 참 그리스도인의 표상이 되었던 분들은 기독 청년 전태일,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리고 어른 김장하 였습니다. 이들 중 가장 압권인 이는 기독 청년 전태일이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가 했던 일을 차마 저는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22살 어린 청년 전태일이 자기 몸을 정의와 민주의 제단에 바쳤을 때 함석헌은 70살이었습니다.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던 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씨알의 각성을 촉구하며 노구를 불태울 때였습니다. 어린 청년 전태일의 의로운 죽음은 함석헌, 안병무를 위시해 수많은 어른들에게 충격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함석헌은 전태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반드시 ‘전태일 선생’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전태일 군은 나이로 보면 손자뻘이 됩니다. 그러나 22살 짧은 삶을 살았어도 그는 제 할 일을 다 하고 간 사람이 아니겠소.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을 다 못했기 때문에 그는 나한테 선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 할 일을 다 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의 전기에 따르면 유약하고 연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던 함석헌이 불꽃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꺾이지 않는 올곧음의 인생을 살면서도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함석헌의 가장 많이 알려진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제목 그대로 ‘그런’ 함석헌을 신앙과 삶의 모델로 갖게 된 것이 제게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제 마음에 남아 있던 우려는 ‘내가 정말 아나뱁티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설명하고 있나?’ 북미의 진짜(?) 아나뱁티스트들이 이 글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권위 있는 메노나이트 기관이나 신학교에서 공부하지도 않은 자생적 아나뱁티스트가 갖는 염려였을 것입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설혹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나뱁티즘의 큰 틀에서 수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한국 아나뱁티즘 30주년 기념 모임의 감동에 자극받아서 였습니다. 국내 여러 곳에 아나뱁티즘을 지향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진정한 교회를 고민하고 이를 삶 속에 실천하려는 이들이 전국 여러 곳에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습니다. 한국 아나뱁티즘 30년의 역사는 땅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뿌리를 내리는 또 다른 30년의 역사가 쓰여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 아나뱁티스트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전국 각처에서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신앙의 모델을 찾고자 할 때 우리들 아나뱁티스트들 안에서 그 모델을 찾고,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을 찾는 이들에게 우리들의 삶이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기독교(개신교)는 조선말기의 국운쇠퇴기 – 일제강점기 – 국가건설기 – 산업화시기 – 민주화시기 – 정보화 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140년 동안 역사 발전의 동인이 되었고 민족과 국가 앞에 선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지나면서 기독교세는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사회적 영향력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그 끝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AI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500년 아나뱁티즘의 역사는 중세에서 근대, 현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요동치는 세계 역사와 문명사 속에서도 의연하고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믿음이 살아계신 하나님,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성육하신 예수님, 그리고 진리와 능력의 보혜사 성령님께 온전히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나 죽으나 그들의 삶에서 온전히 그리스도만이 드러나기를 추구해왔기 때문입니다. 힘과 풍요를 추구하는 바알과 맘몬의 우상에게 무릎 꿇거나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 예수 따름의 길은 ‘길’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바알과 맘몬과 싸우며 나아가는 영적 전투의 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 세상도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영적 전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메노 시몬즈가 그의 글 말미에 늘 사용하던 말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토대이시니, 그분의 말을 듣고, 그분을 따르며 그분께 순종하자.”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아나뱁티스트 선배들이 걸어간 500년 고난의 길, 순교의 길, 순례의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그 길, 곧 평화의 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바쳐진 그들 삶의 고귀한 영예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6년 고난주간 성금요일 아침에 이 글을 마칩니다. 부디 이 글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온전히 증거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분을 올곧게 따르기 원하는 극동 대한민국의 한 신자의 진실한 고백이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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