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농장 수기 공모전 금상 라파마을 이야기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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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날이 밀려나듯 떠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습니다. 제가 있는 라파마을은 사회적 농장 소속입니다. 사회적 농장은 배려계층을 농장을 통해 몸과 정신 건강 증진, 역할 수행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농촌에 이런 의미를 부여한 공동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올 해 사회적 농장을 이루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공모로 선정하겠다는 포스터를 보고 저희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라파마을도 중독 재활을 위해 농장을 접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농촌에서 땅을 밟고 흙을 만지며 땀으로 일구는 노동의 회복은 우리 몸과 마음, 영을 건강하게 하는 이야기를 지금 전해드립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회적 농장 수기



- 라파마을 이야기 -



 



33, 박초림





(올 해 봄, 라파 마을의 전경.)



청년 귀농인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두 분은 어떻게 여기 오게 되셨어요?”


 며칠 전 옥천 신문에서 만난 이 기자님의 질문 앞에 우리 부부는 침묵으로 미소를 띄웠다. 그녀의 동그란 눈을 보며 어디서부터 말할까 망설이다 대답했다. “저희는 알코올 중독 치유로 왔어요. 라파마을 통해 회복 중인 삶을 살고 있어요.” 젊은 사람이 중독이라고 말하니 기자님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 “예전과 달리 중독자 나이가 어려졌어요. 저희 농장이 앞으로 더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덧붙인 말에 그녀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청소년 도박 문제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봤다고 말했다. 얼마 전 첫 째가 다니는 학교에서 보낸 공문이 떠올랐다. ‘청소년 도박이 급증하는 추세니 학부모님들께서는 자녀 핸드폰에 더욱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있는 생태자연농장 라파마을은 중독자 재활 농장이다. 알코올, 도박, 쇼핑, 성으로 몸이 망가지고 가정이 깨지며 빚을 진 이들이 찾아온다. 평균 나이는 30대였는데 몇 달 전에는 23살에 5억을 빚진 도박 중독 청년이 찾아왔다. 나의 가정에도 예외 없이 젊은 중독자가 있다.



모든 이들이 집을 찾아 떠나는 명절에 우리는 갈 곳이 없었다. 추위도 모른 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술병과 함께 벤치에 앉아 병째 들고 마시던 남편의 뒷모습을 3, 5살 아이와 함께 본 것이 22년 설날의 기억이다. 30, 아직 젊으나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까지 다녀온 남편과 어린아이들이 갈 곳을 잃은 명절을 보내는 것이 참담했다. 남편을 두고 나라도 친정 가족을 만나러 가야지 싶어 옮긴 발걸음이 어찌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가족들의 걱정 어린 눈총을 받으며 짧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려던 때, 엄마는 나를 붙잡으며 충청북도 옥천에 있는 라파 마을에 가면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명절이 끝나던 날, 짐을 싸들고 이혼하고 싶지 않으면 여기에 꼭 가야 한다고 말하자 남편은 그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옥천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남편 몰래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인천에서부터 3시간을 달렸을 때, 창밖은 웅장하게 서 있는 고층 건물이 아닌 울창한 숲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마트가 아닌 슈퍼와 방앗간이 있는 완전한 시골이었다. 논과 밭은 눈에 뒤덮여 온 세상이 하얗고, 지나가는 경운기에는 털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의 입김이 날리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모산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었고, 그 건너편으로 생태자연농장 라파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농장이라는 이름이 친근한 듯 낯설게 느껴져 어떤 곳일지 의문이 깊어갔다. 환대의 정원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닭들의 당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옮기니 계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을 구경하듯 삼삼오오 모인 닭들이 신기했다. 닭장을 지나 카페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엉거주춤 섰을 때 대표님을 뵐 수 있었다.





(라파마을 1계사 앞, 우리를 맞이했던 닭들이 사는 곳.)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병원에 다녀올 정도였으면 심각성은 알겠어요. 요즘엔 중독자들도 나이가 어려져서, 30대 알코올 중독자들도 많아요. 현재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30대고. 1년 동안 이곳에서 나를 알고, 자연을 알아가며 치유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아내분은 상담하러 주기적으로 오세요. 중독은 병이예요. 치유가 가능한 병이고, 가족 병입니다. 일파만파 가족에게 끼치는 영향이 컸을 테니까 함께 상담했으면 좋겠고, 정신분석을 통해 자세히 원인을 알면 앞으로 좋아질 거예요. 여기서는 약은 안 먹고, 자연에서 나는 밥상을 통해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겁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대로 몸을 움직여 농장일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술 마시면 뇌와 몸의 기능이 떨어지니까 차차 회복해야 아버지로, 아들로, 남편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살지 않겠어요?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그렇게 우리는 라파 마을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연 속에서 회복되어갔다. 6개월이 지날 즈음 닭들을 돌보고, 복숭아와 꾸지뽕 나무를 다듬으며 느낀 것을 나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라파마을은 유기농을 고수하는 농장답게 과실수와 텃밭 작물들을 약 없이 길러냈다. 닭들도 닭장을 자유로이 누비고, 사료를 직접 배합하여 만들었다. 봄이 되니 날이 따뜻하여 방사를 시키는데 유독 한 마리가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닭장 입구를 통해 점프하듯 날아갔고, 그 모습이 마치 자신과 같았다고 남편은 말했다. 지난 날 아버지의 누명으로 오랜 시간 가족 모두가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 여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불안과 슬픔 속에서 살던 날, 중독에 찌들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과거 속에서 헤매던 남편은 저 닭처럼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했다. 무더워지는 여름에 햇볕을 받아 붉어진 복숭아를 수확할 때는 농장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중독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간의 삶에 위축되어 채 익지 않은 과일을 포장만 해서 내놓듯 풋내나던 관계가 정직하게 실토하고 진실되게 다가감으로 점점 무르익은 관계로 변해갔다. , 선선한 가을 산 위에 있는 꾸지뽕 밭에서 나무를 칭칭 감은 칡을 제거할 때는 자신에게 엉겨붙은 칡같은 상처와 중독을 다 제거하고 싶다고 했다. 땅에서부터 나무 위까지 길게 뻗은 칡은 곱게 올라가질 못하고 나뭇가지마다 몸을 베베 꼬듯 달라붙어 꾸지뽕 열매를 위협했다. 낫으로 베어낼 때마다 축 늘어졌던 가지가 하늘을 향해 제 자리를 찾을 때 남편 또한 과거의 지난한 일들을 하나씩 떼어내며 달라지고 있었다.





(올 해 여름, 나와 남편과 대표님. 인터뷰를 하게 되어 기쁘다는 대화를 하며.)



 남편의 변화만이 라파마을에서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듯 내게 찾아온 짝이 술로 힘든 세월을 보내는 동안 나와 아이들 또한 마음이 많이 무너져 시골에 주인 없이 낡아가는 집과 같이 손 볼 곳이 많은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온 신경을 남편에게 쏟느라 내가 어떤 아내이고 엄마인지 돌아볼 틈 없던 삶이 라파마을에서 힐링되고 있었다. 유정란을 매일 모아 세척기로 옮길 때 알들을 만지다 보면 방금까지 어미가 품었던 알에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그저 꼬꼬 거리는 닭 같지만 저 닭도 본능적으로 지닌 모성이 있다는 것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알을 가져가지 말라고 부리로 쪼고, 알을 품기 위해 앉아있는 동안 먹이도 마다하고 어두운 곳에서 가만히 지내는 저 닭도 엄마였다. 우리 가정에 술이 문제가 되기 전부터 나는 아이에게 그다지 따뜻한 엄마는 되지 못했다. 여자로서의 내가 우선이어서 항상 나를 챙기고 가꾸기 바쁜 엄마였다. 밤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느라 일찍 일어나지도 못해 아침이 늘 분주해서 차가운 우유에 시리얼을 담아 주거나, 전자레인지를 통해 데운 레토르트 식품을 주며 보내온 날들이 많았다. 라파마을에 온 후에는 밤이 되면 눈이 절로 감긴다. 핸드폰이 소지되지 않는 공간이기에 인위적인 불빛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는 은은한 달빛과 온전한 흑빛만이 나를 감싸게 된다. 그렇게 흑색의 밤이 지나고 하늘이 밝아지는 새벽에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창 밖에서 우는 닭 소리, 새 소리가 나를 깨운다. 카랑카랑한 알람소리가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매일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 시골에서 화장할 일도, 고운 옷을 차려입고 백을 맬 일도 없기에 수수하게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시간이 많아졌다. 나를 꾸미던 시간에 주방에 서서 아이들과 남편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는데 더 정성을 들일 수 있었다. 시골에서 자연의 소리에 눈을 뜨고, 집 옆의 텃밭에서 가져온 재료들을 통해 따뜻한 아침 밥상을 차릴 때면 내게도 저 닭처럼 온기가 있는 엄마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닭을 통해 내게도 심겨진 본능적인 모성을 깨닫는다. 문명이 발달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릇되게 사용한 오용의 대가를 청산하고 이 시골 산 속에서 자연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농업 이야기에 지원해보고자 회의를 하며, 지난 날에 대해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또, 무더운 여름 복숭아로 잼을 만드는 동안 라파마을에 찾아온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내게도 지난 날 부끄러운 과거를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도심을 걸어다니는 멋들어지는 친구들에게는 차마 수치스러워 남편이 술 마신다고 말하지 못했기에 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그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부던히 애쓰다 많은 것들을 놓쳤다. 정작 소중히 다뤄야할 나의 감정, 나의 아이들, 내 손으로 해낼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되 찾아간다. 저 나무 위에 욕심 없이 달려있다 떨어지는 복숭아는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다른 것과 합류하여 새로운 식품이 되어간다. 나 또한 이곳에서 온전한 나로 욕심 없이 살고 있다. 누군가처럼 살기위해 애쓰는 것의 방향이 틀렸었다고 생각한다. 정작 닮고 싶은 사람, 정작 따라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유행과 시대의 흐름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서 있는 길, 나의 모습, 나의 가정을 인정하며 이대로 살다 다른 무언가를 만나 더욱 하나되는 날들을 경험한다. 알코올 중독자 아내들과의 만남이, 중독자로 살아가는 이들과의 하루가 무더위에 달궈지면 잼보다 달고 단 회복의 날이 되는 것이다.





(나의 아이들, 눈 오던 날의 라파마을에서)



 우리 아이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 때로 감격스러울 정도로 좋지만, 때로 절벽으로 내 아이를 몰아 세운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도 된다. 우리 첫 째는 남편의 술과 나의 지지부진한 모습들을 통해 둘째보다 더 상처를 받은 아이다. 라파마을에 처음 왔을 때 정원에 심겨진 아이의 키 만한 태양광 전등을 발로 차면서 놀다가 망가뜨린 적이 있다. 보통은 깨뜨리고 달려와 말하기 일쑤인데 첫 째는 그러지를 않고 옆에 개울가에 던지고 모르는 척 했다. 일부러 숨긴 것이다. 고작 6, 상담을 통해 사소해 보이는 이 사건이 중독이 아이에게 미친 폐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이는 술을 마신 후 거짓말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가리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말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따라한 것이다. 그 후로도 종종 잘못을 가리기 위해 숨기고 모르는 척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고, 우리는 이 책임을 함께 지기로 했다. 집 앞에 태양광 심을 자리의 잔디를 손으로 뽑으며 아이의 눈을 마주하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거짓말하는 모습 보여줘서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줄게. 너도 그래줄 수 있니?” 아이는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우리 함께 바꿔보자는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그 후, 8살이 된 현재까지 비슷한 상황 앞에서 전과 달리 솔직하게 말하는 아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 장난감을 사서 금새 질리고 틈만나면 핸드폰을 보던 습관 또한 달라지고 있다. 자연에서 나뭇가지를 통해 만들기를 하고,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내며, 곤충들을 관찰하는 시간을 보낸다. 맑은 하늘 아래서 물 놀이도 하고, 텃밭에서 난 음식을 먹으면서 둘째는 몸의 아토피도 사라졌다. 달걀과 우유섭취가 어려웠는데 농장에서 난 유정란을 먹으며 피부가 달라져 간다. 어린 나의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농장에서 함께하는 청년들에게도 영향이 간다. 자신들의 어린 모습을 생각하고, 갈등이 있던 가족 구성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최근에는 쇼핑중독으로 온 한 청년이 첫 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신에게 원수같던 남동생과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면서, 이렇게 작은 아이였는데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리고 몇 달에 걸쳐 화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씨앗의 싹을 틔워 정원에 심기 위해 애썼고 그렇게 틔운 싹은 농장 안 카페 앞에 자리 잡아 예쁘게 피어나는 중이다. 여린 새싹처럼 우리 마음에도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 싹 틔워간다.



(집에서 키운 첫 병아리, 코코. 성계가 되어 닭장에 합류했다.)



 한 청년은 잦은 자살시도와 성중독, 공황으로 이곳을 찾아왔다.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데 툭하면 아프다고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하고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그동안 사회생활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무언가를 해결하는 방법이 잠 외에는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 동생을 잃었다. 나 혼자 살아 남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동생을 잊지 못하던 35년의 시간이었다. 그는 11개월을 이곳에서 지내며 우리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동생을 회상한다. 나도 저렇게 놀았다고. 동생을 잃었던 바닷가에 가서 동생을 떠올리고 잘 가라고 보내고, 아이들과 놀면서 그 때 참 행복했다고 떠올리며 죄책감이 아닌 좋은 추억으로 다시 새겨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때 죄책감에 눌려 누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다시 누리고 있다. 소극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그는 밝게 사람을 부르고, 정말 맛있게 먹고, 농장에서 다른 이들과 재미있게 논다.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갔던 날 함께 가서 물 장구를 신나게 치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 농장의 나무들을 가꾸며 나무의 생리를 알아간다. 자연에서 지나치는 배경의 나무가 아니라 내 손으로 나무를 바르게 다듬고, 이 나무와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는 일들을 배워간다. 우리는 이 곳에서 어린 병아리들을 성계로 키우고, 심은 꽃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자라지 못한 나도 함께 키워가며 자연과의 조화를 배움으로 회복되어가고 있다.



(라파 마을 청년들과 물놀이. 오른쪽 청년의 물장구가 무척 신나보였다.)



 9년째 농장에 함께하고 있는 한 청년은 도박 중독이었다. 큰 누나가 결혼하고 그 남편이 진 빚을 갚기위해 집 안이 휘청였던 때,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는 누나를 무척이나 원망했다. 그리고 그 돈을 되돌리기 위해 뛰어든 곳이 도박판이었다. 그 빚을 갚아오던 아버지를 항상 내게 무언가 해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어느 날 연로한 아버지께서 무더위 아래 긴 시골길을 걸어 아들을 보러 다녀가시는 뒷 모습을 보며 두 번 다시는 상처를 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는 9년간 농장의 건물들을 세우는 일에 함께했고 여러 동의 계사를 지었다. 매 달 닭들이 먹일 사료 배합물들을 가지러 다녀오면서 시골길의 구석구석을 다닌다. 지난 날 외제차를 타고 좋은 시계를 찼던 때보다 트럭을 끌고 한적한 이 시골에서 땀흘려 일하는 날이 훨씬 아름답다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최근에 누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내려놓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누나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저 한적한 시골 속에서 살지만, 더 이상 과거의 많은 일들과 얽힌 관계들의 파도에 무너지지 않고 딛고 일어나서 살아가기에 고요하고 잠잠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라파마을 연못 앞에 앉아있기를 좋아한다. 연못의 잔잔한 물살처럼 그의 내면이 고요해지기까지 9년의 농장생활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곳을 찾는 청년들에게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살지 말고 다시 처음부터 배워가는 삶을 살자고 매번 말한다. 시골 공동체가 그의 삶에 희망이 되고, 새로 자리잡을 터전이 되었듯 여전히 젊다는 이유로 힘들게 중독과 버티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이곳이 안전한 터전이 되기를 그는 바란다.




(라파 마을 청년들과 꾸지뽕 밭에서. 가운데 모자쓴 분은 9년차 도박 회복자다.)



 라파 마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중독에서 회복되어가는 이들을 위해 단주파티를 연다. 음료수와 과자를 앞에두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 달의 삶을 나눈다. 그 때마다 저마다의 터전에서 살다 온 이들은 말한다. 이번 한 달도 라파가 참 그리웠다고. 우리는 회복된 사람으로서 살아가지만 정말 공감되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곳은 이 곳 뿐이라고. 여전히 우리는 바깥에서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인 중독자이기에 사는 날들이 고단하다며 몸의 고향이 아닌 마음의 고향 라파로 들어오는 날이면 참 설레고 좋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다음 한 달 또한 여러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다시 힘내어 살아가라고 우리는 서로 응원을 해준다.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힘내라는 말 한마디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이곳에 잠시 들어오는 것 뿐이지만 익숙한 공간이기에 저마다 계사, 텃밭, 주방으로 가서 일을 돕는다. 마음의 고향이 될 수 있는 농장이 있어서 좋다는 그들을 보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라파마을 청년 하우스 앞에서.)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언젠가 직접 담근 토마토와 복숭아 청을 마시며 함께 이야기 나눌 날이 오면 좋겠다. 그리고 인터뷰 마지막에도 말했지만 이 세상이 소외된 이들을 기억하고 참사로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듯 옥천 시골 한 농장에서는 중독이라는 이름 아래 고통받았던 이들을 기억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중독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이번 공모 주제처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회적 농장이 중독자 치유라는 타이틀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리고 싶다. 247월의 마지막 날, 라파 농장에서 누군가는 중독에서 해방되고, 가족이 치유되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받고, 거친 지난 날들에 맞서 오늘의 잠잠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전한다. 청년들이 중독에 무너져가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중독과 맞서 이겨낸 이야기들을 전한다. 농장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 당신들을 일으켜 세울 희망이 되기를. 땀흘려 일궈가는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손과 마음에 멋진 굳은살을 만들어내는 청년들이 이곳에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라파 농장으로 언제든지 오시기를 바란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고 당신을 기억해줄 우리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주기를. 그리고 여러분의 하루가 라파의 하루와 같기를!






(무더운 여름, 연못과 작은 폭포가 흐르는 라파 마을 전경. 이곳에서 만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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