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구름, 바다 이기윤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 꽃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여름입니다. 길가의 풀꽃도 지면 다른 종류의 꽃이 피어나고, 밭에 심었던 작물의 꽃도 피었다 지며 열매를 내어 시든 꽃이 아쉽지 않습니다. 햇볕 아래 녹색 풀들이 제 빛을 잃지 않고 쟁쟁한 모습을 보여주듯 시든 꽃 한 송이보다 주변에 가득한 풀들을 보며 지나가는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초림 자매, 여기에 다 진 꽃들 씨앗을 받아줄래?” 



 한 여름이 되면 모자를 눌러 쓰고 장화를 신은채 호미를 들고 땅을 다듬고, 다음 계절에 필 꽃들을 어디에 심을까 고민하시는 목사님은 라파의 정원가입니다. 최근에는 아둘람 하우스 앞이 근사하게 완성되어 밤마다 사모님과 정원에서 차를 드시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사모님께서는 자주 “예쁜 정원이 생겨 너무 좋아요. 저녁마다 근사한 곳에서 시간 보내니 너무 행복해요.” 하며 웃으시는데 지나가다 두 분께서 나란히 앉아 계시는 모습만 보아도 덩달아 제 마음도 포근하고 참 행복해집니다. 젊은 날들을 한 여름처럼 땀흘려 일궈오신 두 분께 선선한 날이 온 것 같습니다. 올 해 여름의 정원이 근사하듯 가을, 겨울, 내년까지 어떻게 가꿔갈까 고민하시던 목사님께서는 지나가는 저를 불러 곧 질 듯한 꽃들의 씨앗을 받아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살아있는 꽃이 되어 한 번 심겨진 적 있던 저는 자리잡아 잘 자라는 선배의 마음으로 알겠다고 대답했고, 공동체에 있는 자매님과 바구니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목사님 댁 뒤 편은 커다란 나무가 많은 숲입니다. 그 곳에는 돌아가신 분들이 나무에 뿌려져 숲과 하나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잘 안 다니던 곳인데 모처럼 가보니 돌 계단이 예쁘게 놓여있고 꽃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 금계국이 시들며 말라 씨앗을 품고있기에 한 움큼을 바구니에 담아 내려왔습니다. 오후가 되어 정리하다보니 양이 부족한 듯 해서 혼자 한 번 더 가게되었습니다. 



 자매님과 왔을 때는 주변에 형제님들도 왔다갔다 하고, 함께 대화하며 꽃에만 집중해 못 보았던 것들이 혼자 있으니 보였습니다. 아둘람 하우스 뒷 편에 자리잡은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다보니 끄트머리에 작은 돌 비석이 보였습니다. ‘꽃,구름,바다 이기윤’. 기윤이는 학생 때 치명적 병으로 하늘나라로 간 라파의 영원한 막내입니다. 저는 그를 본 적 없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먼저 가버린 자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어서 종종 그를 생각하곤 합니다. 너무 일찍 져버린 꽃 같아 마음이 숭숭하여 기윤이에게 가보니 비석 주변으로 잡초들이 무성했습니다.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으며 정리하다보니 기윤이 나무 주변으로 꽃들이 심겨진 것이 보였습니다. 한 눈에도 잡초가 아닌 가져다 심어놓은 꽃임을 보고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기윤이는 이 세상에서 일찍 져버린 꽃이지만, 그의 부모님 마음에는 영원히 피어있기에 해마다 와서 건강한 식물들을 심어 기윤이 대신 피어있게 해놓은 것을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병에 아들을 빼았겨야만 했을 때, 아들의 꺼진 숨을 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 병과 대신 싸워줄 수 없는 내 몸의 건강함에 이질감을 느꼈을 부모의 마음을 머리로나마 헤아려도 이렇게 무기력하고 슬픈데 무언가에 소중한 사람을 내어줄 수 밖에 없던 부모님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그저 미약하게나마 아픔을 느끼기에 한 번 만난 적 없지만 그가 머물렀던 공동체를 가꾸고, 그가 남겨진 나무를 가꾸며 기억하는 수 밖에요. 



 그렇게 풀을 뽑으며 기윤이를 생각할 때 누군가를 속절없이 빼앗기던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통은 저와 남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자 라파에 있는 모두가 겪은 것입니다. 남편은 여동생이 사고로 떠나던 날 병원 응급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제발 살려만 달라고, 내가 무엇이든 하겠다고. 그럼에도 하릴없이 수술도 못한 채 누워만 있는 여동생과 그 주변을 바삐 오가는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서 무력하게 기다릴 수 밖에 없던 그 순간은 남편이 가장 좌절했던 때였습니다. 동생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장례를 치른 후 공허함을 달랠길 없던 남편은 그 좌절을 이기지 못해 술을 마시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빼앗긴 여동생을 생각하며 술과 중독에게 처참히 자신을 맡기고 내어주었습니다. 결혼하고서도 반복된 술은 남편을 앗아가고 우리 둘 사이에서 흔히 했던 약속, 술 마시면 나랑 끝이라는 말은 늘 술이 이긴채 끝나곤 했습니다. 초록색 병이 야속했던 모든 날은 중독에게 남편을 빼앗긴 무기력의 나날이었습니다. 이 마음의 비통함을 남편도, 나도 위로받지 못한 채 다른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잠시라도 깨어있는 순간에는 친정을 우선하고 타인을 중시하는 저를 보며 공허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라파에서도 제가 다른 사람들을 남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친밀감을 누리는 모습에서 외로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어긋나기만을 반복하며 무언가에게 소중한 사람을 빼앗기는 것에 익숙해질 즈음 상담을 통해 그것이 나의 의존에서부터 오는 비극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는 연약하기에 다른 이에게 빌붙어 힘을 착취하고 갉아먹게되는 의존. 그렇게 살던 우리는 라파에서 문제를 직면함으로 술과 사람에게 서로를 빼앗기는 삶을 그만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중독과 의존이 시들고 난 자리는 황폐할 줄만 알았는데 새로 피어나는 가정, 화목, 단란함이 은혜가 되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중독은 너무 독해서 도무지 다른 것들이 자랄 수 없다고 말하지만 라파에서는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깊다는 말이 희망되어 우리에게도 시들 것은 시들고 다시 피어날 것은 피어나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라파에서 각자의 문제를 뒤로하고 그 순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매일 노젓는 삶을 사는 지금, 글로 표현되는 저 문장들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큰 좌절과 괴로움의 시간이었는지 알기에 다시는 돌아가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느라 정작 위로받고 사과해야할 순간들을 놓쳤는데 기윤이 곁에 있는 동안 두 가지 마음이 제 안에 심겼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빼앗긴 것에 대한 위로와 속절없이 끌려다닌 나를 기다려준 가족에 대한 미안함입니다. 가을 정원을 준비하며 꽃의 씨앗을 받으러 왔는데 정작 다른 소중한 것들을 받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기윤이는 우리와 달리 자신을 스스로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끝이 이곳에서 제게 다른 모양으로, 다른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없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서 기윤이를 떠나 보낸 부모님의 마음에 그리움과 사랑으로 피어나고,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무언가에 빼앗겨야만 했던 마음을 위로하고, 제 발로 중독에게 속절없이 자신을 내어주던 우리에게 가족들의 슬픔과 애통함을 들여다보게합니다. 오늘 제게 기윤이를 통해 받은 은혜가 중독과 의존에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심겨지기를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그래서 회복하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위로를 통한 용서와 사과,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기윤아, 25년 2월에도 근용형제님은 찬양 말미에 너를 부르며 담배피면 일찍 죽는다고 말했던 한 마디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했어. 친근하게 와준 너의 목소리 덕분에 이 곳에 있을 수 있었다고 말야. 또 어느 날엔가 자녀와 이별한 어머니는 자녀가 좋은 곳에 깄다는 말보다 오래 기억해주는 것이 더 기쁘다고 하시더라. 나는 전해듣는 것 만으로 감히 내가 살기를 택한 것에 너의 지분이 있다고 말하고싶어. 다른 시간에 네가 머물던 공간을 걸으며 삶의 의미에 너를 심음으로 기억해본다. 이 마음이 엄마 아빠를 남겨둔 네게 위로가 되고 부모님께 위로가 된다면 더욱 좋겠다. 늘 아름답게 지지않는 꽃으로 피어 살기를 소망해. 라파에서 너를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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