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동체 '삼다' 졸업문집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 글쓰기 공동체 '삼다'에서 글을 써온지 1년이 되어갑니다. 매 주 줌으로 강의를 듣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던 1년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졸업 문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썼던 글 중에서 두 편을 이곳에도 올려봅니다. 글 주제 중 아무개 예수, 부치지 못할 편지가 있었습니다. 수 많은 단어 중 남편의 재발을 경험하며 수 놓는 예수를 선택했던 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기 전 주에 친 어머니를 만나게 되어 오랫동안 묵었던 그리움을 표현할 수 있었던 때에 작성된 글입니다. 부치지 못할 편지는 어린 어머니를 향해 어른이 된 내가 친구처럼 부르며 적어본 글입니다. 부모님의 이름 세 자를 이곳에서나마 친근하게 불러봅니다. 우리의 아픔과 기쁨이, 묵혀둔 감정이 글로 표현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 순간들을 마주하며 걸어온 회복의 길을 날마다 돌아보고 다시 나아가는 지점에서 여러분께 조심스레 나눠봅니다. 



 



수 놓는 예수 



 



 중독을 치유하는 라파공동체 2층 계단 벽면에는 최후의 만찬 그림이 걸려있다. 많이 보아 온 그림이지만, 유달리 눈길이 갔다. 2022년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먼저 공동체에 입소하고 무사히 1년 회복 기간을 마친 남편은 이곳에 더 있고 싶어 했다. 남편의 말에 나는 직장과 살던 곳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 왔다. 여러 사람이 사는 공동체에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처음엔 많이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평소 즐겨하던 청소를 통해 이 공동체를 알아가기로 했다. 눈이 머물렀던 액자로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테두리 위에 소복히 쌓인 먼지가 걸레에 묻어나올 때면 어둡던 우리 결혼생활도 깨끗하고 윤나게 닦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솟았다. 액자 속 떠들썩해 보이는 제자들과 대비된 예수님의 잔잔하고 옅은 미소가 주는 긴장감과 묘한 불안감은 들뜬 나와 정 반대의 그림이었다. 그렇게 미소띈 예수님을 뒤로하고 들뜬 마음으로 다시 청소를 했다. 문만 열면 펼쳐진 잔디밭과 텃밭의 잡초가 무성해도 내 손길, 걸음 한 발자욱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잡초를 뽑으면서도 웃음이 났다. “당신이 잘 하고 있으니 내가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네라며 철없이 좋아했다.



 그러나 239월 게임을 켜둔 남편의 핸드폰을 마주하게 되었다. 남편이 핸드폰 반입이 안 되는 이곳에서 몰래 핸드폰을 숨겨 게임을 해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의 게임 중독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공동체 규칙을 어긴 남편은 여러 조치와 시도 끝에 결국 홀로 퇴소해야만 했다. 중독자 회복 공동체에, 중독자들만 있는 환경에 남편 없이 내가 있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남편에게로 가야할 원망이 고스란히 주변 사람들을 향했다. 복도는 너무 길었고 내 옆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은 크게 느껴져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먼지마저 돌이 되어 떨어지는 듯 했다. 복도 한 번 쓸고 닦는 일이 왜 이렇게 무겁고 어려운지 쓸어도 돌아서면 지저분한 바닥만 보였다. 쓰레기통이 작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매번 바닥으로 넘쳐 흐르는 쓰레기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지친 마음을 끌고 걸어 나간 문 밖은 생그러운 초록빛에서 어느새 낙엽이 떨어지는 주황색 계절로 바뀌어있었다. 가을을 참 좋아했었는데 초록빛이 사라진 자리가 허전했는지 주황색 풍광은 다 죽어 시들어간 풀의 무덤처럼만 보였다.



 하루가 의미가 없었다. 오가며 마주하는 이들의 웃음을 볼 자신이 없었다. 어색하게 장단 맞춰 입 꼬리를 올려보고 목소리를 크게 내어보아도 마음이 굳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엄마!”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이 놀자고 말하는 소리도 듣기 싫어 귀를 틀어 막고 자리를 피했다. 일상이 녹슬어갔다. 누군가는 말한다. 성령 받으면 다 낫는다고, 중독은 파괴적이니까 당장 떠나라고, 예수님이라면 한 방에 고쳐주실 수 있다고. 그러나 틀렸다. 예수님은 액자 속 그림처럼 죽음의 하루 전 날에도 옅은 미소 외에 아무것도 안 하신다. 죽음을 결단한 당신을 향해 나는 아니라고, 자신의 의로움만 주장하는 제자들을 보며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이토록 고통만 주는 중독자들 앞에서 나는 미소 지을 수 없다. 내가 저들과 함께 웃을 때는 언제였을까? 왜 웃었는지 모르겠다.



 그 무렵 공동체 목사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중독은 치유되는 병이에요. 병에 걸렸다고 모두 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살려놓고 나서 정말 안 맞으면 그 때 이혼해도 늦지 않아요. 이 공동체는 중독자들을 위한 곳이고 정말 나아서 잘 살아가는 가정이 주일마다 예배에 오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중독은 가족 병이에요. 원가족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새롭게 이룬 가정에서 치유될 수 있어요." 그 때 내가 이 곳에 왜 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의 회복, 아이들의 회복을 위해 왔는데 남편이 없다고 나와 아이들의 회복을 이어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중독에 대해서 알아가고자 왔는데 중독과 중독자를 구분하여 보지 못했다. 나도 알코올 중독인 남편에게 중독되어 있는데 세상에서 모진 고통을 받고 이 곳으로 온 중독자들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2층 계단에 걸린 그림 속 예수님은 어쩌면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나 보다. 당신의 죽음이 나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혹은 나만을 위한 죽음으로 여기는 나를 보는 듯 하다. 유다에게 입 맞추며 네 할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던 그 예수님의 말씀은 유다를 원망하게 만든다. 중독자와 남편이 유다인 줄 알았는데, 그들을 팔아 정상인이 되려하고, 사랑받으려 한 내가 유다였다. 그런 내게 당신은 왜 미소를 지었을까.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얼굴을 다시 마주했다. “, 이런 일을 겪게 하셨나요?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나요?” 라고 물었던 자리에서 다시 물었다. “왜 이런 일까지 함께 겪으시나요? 그 오래 전 이 땅에서 중독자는 치유해보지 않으셔서 구태여나 저랑 함께 이 길을 가시나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예수님의 미소를 보는데 그림이 입체적이었다. 물감 그림이 아니라 한 자락씩 수로 놓인 그림이었다. 기계가 놓은 수가 아닌, 손으로 새긴 수였다. 그 때 알았다. 내 신앙은 왜곡되어 있었음을. 나는 지금까지 어벤져스에 나오는 타노스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 닮은 나는 인성이 아니라 신성만 닮았노라 착각하고 살았다. 내가 착한 일을 하면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겨줘서 잘 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망상에 빠져 살았다. 아주 깊은 속 마음은 내가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교만이 가득했다. 이런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은, 기계처럼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매 순간, 매 일을 한 자락 수처럼 새기며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내가 맞다고 으름장 놓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그름을 탓하지 않고 미소지으시는 분이다. 이 예수님을 닮아 살아간다면, 나와 중독자가 다르다고 불편해 할 수 없다. 내 결혼이 실패가 되지 않게 하라며 남편에게 으름장 놓을 수 없다. 끝을 아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루의 수를 놓으며 사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공동체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꼴도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버리라고 말했는데, 다시 마주하기까지 당신이 부디 포기하지 않고 치료받겠다고 돌아와주면 좋겠다. 예수님은 남편과 중독자들을 매몰차게 대한 나를 포기하지 않고 손 내밀어 함께 수를 놓는 삶을 살자 해주셨다. 나도 다시 손 내밀며 우리의 끝이 어디까지이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큼 회복을 향해 수 놓는 삶을 살자고 말하고 싶다. 늘 내 인생의 변수였던 당신은 이제 내 삶에 놓인 한 자락 수가되어 그림이 되어간다고 알려주고 싶다.



 



부치지 못할 편지



 



초림아 잠깐 이리 와봐.”



 선자야. 네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표정이 아직도 생각 나. 한껏 굴곡진 눈썹과 앙 다문 입술 아래로 턱이 파르르 떨렸지.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려 해서였을까? 할 말을 꿀꺽 삼키느라 그랬을까? 눈물로 젖은 볼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여러 차례 늘어났다 줄어들었어. 세상을 처음 만난 갓 태어난 송아지마냥 티없이 맑은 네 눈망울이 모든 감정을 전했어. 네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리기보다 말을 이을 용기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너를 보았지. 너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너랑 멀리 떨어져야할 것 같아서 너무 불안해.’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없는 사이 너는 무얼 하며 보낼까?’ 나를 보는 그 눈빛이 애잔했어. 너 없어도 내가 잘 지낸다는 소식이 들리도록 그저 매일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것,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너는 아직 입도 떼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렇게 살아주겠노라 다짐하고 마음을 굳혔어. 그제야 안심했는지 너는 마음에 담았던 말을 조심스레 내려놓았어.



 “나 위암이래. 그래서 병원에 다녀..언제 널 만나러 또 올 수 있을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한다는 말. 지난 날, 너의 입에서 자주 나왔던 말이었어. 처음에는 울어도 보고, 매달려도 보았지만 변하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울먹일듯 일렁이는 마음을 애써 굳히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어. 그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 겨우 마음의 아픔을 달래는 법을 배웠지만, 아픈 몸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어. 내가 아는 것은 아픈 몸을 고쳐줄 수 있는 건 의사라는 것 하나였지. 물론 이루지 못했지만 그 때 나는 너를 위해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어. 너와 헤어지기 전 우리가 살던 집은 방이 두 개, 화장실 한 개, 거실 한 칸에 주방이 연결된 집이었어.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리 큰 집도 아닌데 그땐 그 집이 참 크고 썰렁했다고 생각했어. 아마 집안에 온기가 없어서 그랬나봐. 그곳에서는 너와 밥 한 끼 못 먹었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웃은 기억도 없어. 다만 고개를 삐딱하게 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너머 허공을 응시하던 너의 모습만이 기억 나. 내가 너를 다 알지 못했던 그 때, 너를 힘들게 한 건 위암만은 아니었겠지?



 그 후 우리는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냈어. 오랜만에 만난 너는 얼굴이 좋아보였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치료가 끝나도 너는 여전히 내게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을 고하더라. 택시를 태워 보내며 미안하다고, 잘 가라고 인사하는 너의 모습이 생각 나. 그렇게 차의 속도처럼 우리 이별이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나는 크고 있었어. 너 없이도 나는 나름대로 잘 지냈어. 학교에도 잘 다니고, 친구들과 잘 놀았고, 느긋하게 한 공부였지만 대학도 갔어. 늘 네게 괜찮다고 말하던 나의 사랑이 그 즈음 고갈되었는지, 너와 함께하기를 기다리고 바라던 시간의 서운함을 한 번에 토해내기라도 하듯, 너에게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고 9년이라는 시간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어. 아마도 이번에야 말로 내 손으로 끊어보리라 다짐했던 복수였던 것 같아. 참 철 없지?



 그 9년 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어. 아이를 보는 모든 순간, 아이를 만지는 모든 순간마다 네가 참 보고 싶더라. 굴곡진 눈썹과 앙 다문 입술로 내게 하는 말이 듣고 싶어졌어. 작은 몸집과 야무진 손으로 내 잔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네가 그리웠고, 어디에서나 나를 좇으며 바라보던 네 맑은 눈망울이 자꾸 생각났어. 그러다 결심하고 너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가 연락처 하나를 발견했어. 오랜만에 연락을 했을 때 혹여라도 암이 재발하지는 않았을지, 잘 살고는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어. 떨리는 마음으로 내 번호를 꾹꾹 눌러 여기로 연락달라고 메시지를 전송했어. 일주일만에 네게서 연락이 왔어. 너는 한 마디 원망 없이 초림아! 보고싶었어! 혹시라도 내 이름에서 오는 팔자가 좋지 않아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이름을 바꿨어. 그랬더니 글쎄 너한테 연락이 온 거야.” 라고 말하더라. 네가 바꾼 이름은 손서은. 얼굴이 보고싶다며 바로 내가 있는 곳 까지 4시간을 달려 온 너는 변한게 하나도 없더라.



 이름을 바꾸니까 네게서 연락이 왔다며 꼭 선물같다 말하는 너는 마치 어제 보고 헤어진 사람 같았어.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네가 타고난 운이 좋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헤어졌던 순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고 땅을 쳐다보며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지. 그러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던 것 기억나? 그동안 못한 것들 이제는 다 해주겠다고 했잖아. 바보같이 그 때 알겠더라. 정말 그 지난날들이 우리에게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나에게 헤어짐을 고하던 모든 순간, 너는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 때 네 나이가 고작 지금의 나와 같은 서른 셋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알았어. 남편과 헤어지고 딸을 보내며 꼭 데려와 같이 살겠다고 말하던 때, 월급 50만원 꼬박 모아 나를 만나면 미역국을 사주고 옷을 사주던 때, 직장 눈치 보며 반차를 내고, 강원도에서 고속버스가 오래 걸려 인천까지 택시를 타며 받은 월급의 반을 지불해서라도 내 얼굴 한 번 보려고 왔던 때, 졸업식이나 입학식날 아들이 이혼한 것이 다 며느리 탓이라고만 하는 시댁눈치가 보여서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 와놓고도 천덕꾸러기처럼 구석에서 지켜만 보다 눈물흘리면서 돌아가던 그 모든 순간. 너는 고작 서른 세살이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점점 괜찮다 말하는 나의 사랑이 고갈되어가며 예전같은 미소를 잃어도 늘 나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하며 뛰어오던 너는 무척 어른같았지만 철이 들었다고도, 안 들었다고도 하기 애매한 서른 세살이었던거야.



 너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어. 네가 얼마나 쉽지 않았을지. 네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외롭게 보냈을지.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들이 항상 너의 최선이었음을 이제야 알겠어. 종종걸음으로 바삐 다니며 여자로도 엄마로도 불리기 애매했던 그 모습들이 고작 서른 세살이라는게 믿기지가 않아. 그 후 시간이 또 많이 흘러버렸지만, 선자야 네게 꼭 해주고싶은 말이 있어. 선자야 나는 네 이름에서 오는 팔자가 어떻든 늘 최선을 다한 그 작은 발, 야무진 손, 맑은 눈을 한 너를 미워하지 않았어.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어. 그리고 한 순간도 네가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너와 같은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진심을 담아 말해보네. 내가 참 좋아하는 선자야. 이제는 내가 남편을 향해 서운함을 말하고, 아이들을 향해 잔소리를하고, 네가 해줬던 소세지 전, 애호박 전을 해줘. 예전에 네가 그랬던 것처럼. 선자야, 네가 그랬지? 우리가 헤어진 것이 정말 후회된다고. 정말 행복만 주고싶다고. 그 마음까지 담아 내 아이들에게 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클 때까지 함께 살고, 행복만 주는 엄마가 될게. 이제는 부르지 못하는 이름, 선자야. 나는 선자 네가 참 좋아. 어쩌면 서은이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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