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뜻 광성교회를 통해 받은 은혜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 2주간 뜻깊은 자리에 참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의 아웃리치가 라파에서 진행되었고, 다음으로는 한국 공동체 협회에서 주최한 위기의 시대 공동체의 대안을 주제로한 수련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두 군데서 받은 은혜를 차분히 나누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사이사이 상담을 통해 발견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위해서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 삶에서 이번 두 군데를 통해, 중간의 상담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한 은혜가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라파 공동체에 귀농에 관심이 있어 올해 2월 입소한 자매님을 통해 받은 만남의 축복을 전하려 합니다. 제가 바라본 자매님은 부지런하고 살뜰하여 마치 숲 속에서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압박감과 눌림속에서 나를 잃는 느낌이 들었고, 사회에 불편하게 적응하는 삶을 택하는 대신 다른 대안을 찾기로하고 시골에 관심을 두며 환경에 관심을 두었다는 자매님은 라파에서 생활하는 동안 시골생활에 무척 만족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친환경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천하는 삶, 자립하고 자족하는 삶,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를 찾고 돌보는 삶에 집중하면서 6개월이 지나가는 현재까지 많은 변화를 경험하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제게 들려줍니다. 



 잠재되어있던 부분이 자극에 의해 깨어나듯 제가 바라본 자매님은 여러 면에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홀로 간직하지 않고 마치 힘들고 지친 내게 보자기 속에 고이 감싸둔 단 과자를 건네어주듯 본인의 이야기들을 제게도, 주변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부지런히 건네줍니다. 다람쥐는 숲에서 모은 도토리를 보금자리에 가져다 두고 곳곳에 숨기기도하는데 자매님도 다람쥐와 같이 늘 갈색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며 바지런히 느낀 점들을 적어서 나를 찾고 돌보며 그것들을 곳곳에 있는 우리들의 내면에 들려줌으로 숨겨놓습니다. 다람쥐가 숨긴 도토리가 시간이 지나면 싹이나고 나무가 되듯이 자매님이 내게 숨긴 이야기들도 싹이 나고 자랍니다. 그리고 다람쥐는 잊어버리고 찾아오지 않지만 자매님은 내게다시 찾아와 본인의 이야기를 돌보고 갑니다.



 자매님이 최근 제게 심어준 소중한 도토리는 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였습니다. 그곳에서 본인이 만난 하나님이 소중했고, 그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나고 싶었던 마음을 라파에서 충족하는 동안 제게는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전해주었고, 교회에는 라파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주며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다가 올 여름 아웃리치를 라파에서 하면 어떻느냐는 제안을 시작으로 라파 창립이레 처음 청년부가 아웃리치를 오게 된 것입니다. 30명의 청년부가 방문한다는 소식에 한 달전부터 2박 3일간의 시간을 어떻게 꾸릴지, 어떤 물품들을 준비할지, 식사는 어떻게 할지 등을 소소히 나누며 지내는 찰나가 지나가고 청년부가 오는 당일. 여러모로 긴장이 되어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라파의 포근함을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중독 사역에 귀를 기울여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아마 제게는 청년부가 이곳을 포근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공간 나눔과, 시골 생활에 대한 이로움과 중독을 전하고 싶은 소통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자매님은 어떠한가 돌아보니 교회 청년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하랴, 일정을 의논하고 준비하랴, 라파식구들에게 전달하랴 무척이나 바쁘고 정신없는 듯 했습니다. 저는 한 걸음 뒤에서 그저 우리 공동체에 찾아온 신선한 사역에 내가 받을 것은 기대하지 않고 줄 것만 생각하며 이 순간들이 잘 지나가기를 소망하던 얕은 마음이었으나 이런 제 마음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제게도 집중하고 계심을 알게되었습니다. 



 아침 식사는 제 담당이었는데 식사를 마치며 내게 따뜻한 눈으로 ‘아침을 이렇게 귀하게 먹어서 너무 행복해요.’ ‘라파 밥은 정말 맛있네요.’ 등의 인삿말을 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제 마음에 살랑이며 들어와 작은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나는 엄마니까, 자매니까 이 곳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당위로만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찾아오는 이를 환대하는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당위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서비스가 보편화 되어있는 세상에서 나의 손길도 그저 한낱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는데 얕은 나의 시각을 더 깊이 끌어내리셔서 아웃리치에 온 청년들은 줄 것을 기대하고 왔는데 도리어 받을 때 그 영혼이 본인의 소중함을 깨닫고, 받는 사랑을 누리고 가는 것을 보게하셨습니다. 밥을 한 이에게 응당 건네는 인삿말에 내가 너무 설레었다 생각할 때, 나의 작은 손길이 지친 엘리사를 깨워 따뜻하게 먹이신 하나님의 손길이 되도록 사용해주셨음을 청년들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3번의 아침식사 동안 청년들은 저마다 다른 인사를 제게 들려주었고, 이 순간이 저에게는 당위로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들을 맞이하기를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노동을 할 때에는 배추, 무 심을 밭을 정리하고자 낫을 들고 풀을 베러 올라갔는데 아직 서먹하여 땀을 뚝뚝 흘린 얼굴로 어색하게 ‘조금 쉬었다 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도 서로의 모습이 귀감되었는지 이후에 서로의 일이라고 맡기지 않고 함께 동참하고자 ‘도와드릴까요? 어떤 것을 할까요?’ 물으며 시골에서 풀을 베는 일은 사소한 일이지만 더운 날 함께 하니까 깨끗하게 정리되어 기분이 좋았다며 웃는 모습에서 청년들이 비로소 하나님 주신 자연 속에서 가꾸고 돌보는 원 주인의 삶을 되찾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다람쥐 자매님이 그간 노동을 통해 받은 은혜들을 부지런히 심어주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저 도토리들이 마음에서 싹이 돋아나 노동의 기쁨을 자연에서 되찾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함께 소망하는 마음으로 도시에서 일하는 동안 잊고있었을 그들에게 저 또한 눈맞추며 ‘저도 예전에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가 여기와서 흙도 밟고 풀도 베고 닭장도 들어가는데 지금이 더 살맛나요. 여기에서는 보는 곳마다 하나님 생각이 많이 나요.’ 라며 이야기하니 함께 노동을 해봐서인지 공감이 되는 듯 했습니다. 건물 속에서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앉아 일하는 이들은 이 시간조차 더없는 휴식이라고 좋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둔채 사회 구성원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잠시의 휴식도 우리는 코로나와 점점 더워지는 날씨탓에 자연이 아닌 도심 속 어딘가로 떠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읽었던 모모라는 책에서 도시를 회색으로 표현하며 그저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 힘이된다고 했는데 듣는 것 너머로 자연 속에서 함께할 수 있으니 얼마나 깊은 유대가 생겼는지 모릅니다. 



 이 후에는 라파공동체의 스케줄에 맞추어 노동, 식사, 예배를 하고 오후에는 중독 강의를 들으며 윤성모 목사님께서 이 시대가 얼마나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중독을 가지고 있는지, 중독을 치료하는 라파는 어떤 곳인지를 두 어번의 강의를 통해 전달해주셨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말씀은 ‘도시에서 하나님을 만나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골로 내려오라 간곡히 요청하는 것도 아니예요. 도시에서 하나님을 만나세요. 다만 시골에서 내가 이런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시골에도 하나님께서 계심을 인정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시골이 아예 외면당하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예수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셨는데 시골 신학을 새롭게 우리는 바라봐야해요. 현 시대에서 시골에 대안이 있음을 저는 봅니다. 중독자들을 무성히 만들어내는 사회에서 여러분은 적응하고 살아남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중독이 되는데 그들이 갈 곳이 어디겠어요. 저는 집 없고 갈 곳 없는 그들이 땅 끝에 있을 때 라파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고 생각해요. 라파가 땅 끝이예요. 땅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어요.’ 무려 4시간의 강의였기에 감히 이곳에 짤막히 담기가 어려우나 제 마음에 깊이 울린 메시지는 이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하시는, 중독 사역에 젊음을 보내시고 60대가 되신 목사님께서 젊은 청년들에게 전하는 땅 끝에서 만난 하나님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를 전하시고, 중독 사역을 시작하게 된 모든 시간을 말씀하시고, 그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전하시는 60대 목사님의 목소리와 손 끝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제 막 피어나는 젊은 이들에게 부와 명예와 성공을주시는 하나님이 아닌, 처절하게 중독의 죄로 가득한 이들을 함께 살고, 먹고, 자고, 노동하고, 예배하고, 상담하는 동안 느꼈던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전하셨습니다. 우리처럼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하시며 치유하셨던 분이심을 목사님의 삶을 통해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메시지가 듣는 청년들로 하여금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켰을까, 무척 궁금했으나 제게는 몇 번을 들어도 깊이있고 무게있는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에 쓰여있던 메시지가 음성으로 들릴 때, 저자의 삶을 공유하여 그 삶을 통해 들을 때의 깊이는 이 곳에서 지낸 자만 누릴 수 있는, 함께 산 이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권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느꼈듯 하나님의 성경메시지가 제게도 음성으로, 또 주님의 삶을 공유하고 나의 삶을 공유함으로 깊이 있게 느끼게 해주시는 듯한 신앙 재경험의 첫 단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있던 자리들에서 나의 얄팍한 신념으로 들어서 얄팍하게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새 집 홍보하여 좋은 말로 포장하고 꾀는 듯하게 들었던 말이 아니었습니다. 손수 땅을 갈고 기반을 다지고 집을 지어 오랜 시간의 흔적과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오두막과 같은 공간에 나와 남편과 아이들을 초대하셔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치유를 진행해오신 하나님이 느껴지는, 깊이있고 무게감있는 말로 다가온 그 순간은 제 인생에서 들었던 가장 울림있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목사님을 통해 주신다면 아마 청년들에게도 각자의 상처에 따라 서로 다른 깊이와 무게로 울렸을 것입니다. 이후에 전해듣기로 그 강의를 통해 청년들은 저마다 중독의 아픔이 있는지, 혹은 다른 고민이 있는지 라파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현 시대에서는 개인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여 서로의 삶을 깊이 있게 나누고 삶을 공유하고 함께하는 소속감을 느끼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다 보여줄 이유도, 나눌 필요도 없기에 적당한 선에서의 교제가 최선임을 저 또한 교회에서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광성교회 청년들이 이곳에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함께 때마다 식사하고, 노동하고, 교제하고 나눌 때 더 깊이가 생기는 모습을 보니 제가 공동체에서 누린 깊은 나눔은 공동체에 오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번째 날부터는 중간에서 자매님이 함께 해주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며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청년부에서 준비해준 놀이시간에 저희 부부는 새로운 감정을 재경험 했습니다. 늘 교회 행사가 있는 때에는 남편이 술을 마신터라 긴장 속에서 보내기 일쑤였는데 멀쩡한 모습으로 제 옆에서 함께 팀을 이루어 퀴즈를 맞히거나 줄넘기를하여 우리 부부가 속한 팀이 1등을 했는데 그 때의 기쁨을 오롯이 맑은 눈으로 마주보고 마음에서부터 가득 진짜기쁜 웃음을 지을 때 ‘우리 평범하게 웃고 있구나. 우리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걱정을 조금 품고서가 아니라 정말 행복하게 웃었다.’ 라는 생각이 밀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삶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순간이 제게는 정말큰 행복이었습니다. 일말의 걱정거리나 눈치나 불편함을 안지 않고 함박웃음으로 행복하게 웃은 이 순간은 내가, 남편이, 아이들이 회복된 이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일 것입니다. 이후에는 자매들은 공동체로, 형제들은 남아서 웃통을 벗고 마음껏 뛰며 노을진 하늘 아래서 신나게 축구를 했다고 합니다. 들리는 후문으로는 이 때의 뜀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며 참 자유를 누린 것 같다라는 마음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녁에 교회와 라파공동체가 함께 모여 마당에서 바베큐파티를하며 앉은 자리에서 깊은 밤이 오기까지 침묵과 대화가 오고가는 코이노니아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중간에 들어왔지만 끝까지 자리에 참석했던 남편은 본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 형제들이 마음을 열어주었고, 과거 가족을 잃은 슬픔과 직장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점들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의아한 점은 보통 나눔에서 형제가 우는 일은 드문 일이라 제 기억 속에는 그간 참여했던 수련회에서 예배나 기도시간 외에 그런 모습을 보기가 참 힘들었는데 그저 대화 속에서 깊은 공감과 나눔, 눈물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의 눈물은 시골 공동체에서 누리는 소박한 일상에서 되찾은 감정의 눈물, 아픔을 나누고 보내는 회복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형제든 자매든 이곳에서 나눈 것들을 통해 나의 삶에 깊이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를 통해 느꼈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날의 교제가 우리 삶에 자주 가져야 할 코이노니아라고 하셨습니다. 무언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하지 않더라도 삶을 통해 나눠지는 것은 깊은 힘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밤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침묵속에 일하시는 성령님이 느껴지는 깊이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방에서 잠든 저와 아이들에게도 말이지요. 



 마지막 날 공동체에 한 달살이로 온 고등학생 자매가 모닝빵을 100개 넘게 구워줘서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우리 손으로 만든 음식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손님이 오실 때에 베이킹은 빠질 수 없는 환대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굽는 냄새가 새어나가면 그 기대감이 빵처럼 부풀어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하고, 그 향이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자리를 회상할 수 있기에 빵이 구워지는 냄새는 참 특별한 것 같습니다. 빵의 향기를 마음에 품은 식사가 끝나고 청년들은 저마다 머물렀던 자리를 손으로 깨끗하게 청소하고 마지막 예배를 드릴 때, 우리에게 준비한 것이 있다며 옷을 맞춰입은채 자리에 서서 ‘행복’ 이라는 찬양을 합창으로 불러주었습니다. 30명의 목소리에서 각자 다른 음으로 행복의 가사를 우리 귀로 흘려보낼 때 저는 천사들의 노래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고운 목소리였습니다. ‘하늘에서 천사들이 합창한다면 이런 소리겠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를 선물로 준비해준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진 자원으로 마음 다해 섬겨주는 모습이 제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끝으로 청년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타고 온 차에 몸을 싣고 떠났습니다. 우리에게 가지고 온 많은 것들을 주고 갔고, 청년분들이 준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받았다며 겨우 얻은 휴가를 아웃리치에 사용하기를 잘했다고 말하는 이와 아쉬움에 눈물짓는 이들을 내가 선 자리에서 배웅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에 저들이 찾아와주고 함께 머물다 간 것 만으로 행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함께 공유하고 나누고 누리다 간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또 만나자고 말하는 기약없는 약속이 행복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의 만남 이후 이 땅에서 혹은 천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또 만날 것입니다. 그 곳에서 서로가 또 다른 코이노니아를 경험하기까지 삶을 잘 살아내기를 서로 중보하며 나눌 이야기들을 가득 안고 마주하는 그 날까지 안녕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시간은 우리 사이에서 발견한 도토리를 자매님이 부지런히 심어주고 심은 열매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라게 하셔서 서로가 서로에게 만남의 축복이 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높은 뜻 광성교회 청년부를 통해,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형제 자매님을 통해 많은 것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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