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아내의 이야기 - 존중에 대하여 -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 무더운 날 가운데 반가운 비소식이 있어 흠뻑 젖은 흙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사람이라 그런지 흙 냄새는 언제나 좋습니다. 단단하면서도 푸르고 상쾌한 냄새. 그 땅 위로 예초기가 지나가 자라난 풀들의 기를 꺾고나면 언제그랬냐는 듯 비가 찾아와 다시 쑥 자라납니다. 늘 의기양양하게 자라나는 풀들의 꺾이지 않는 모습은 힘듦 가운데 희망이기도, 굳게 자리잡은 나의 고집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흙 위에 발을 딛는 나는, 한낱 풀이 흙을 양분삼아 자라나듯 누군가를 양분삼아 자란 존재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함께 일상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별할 때가 올까요? 이번 주는 존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문자를 읽을 때 무언가가 생생히 와닿는 편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가장 생각이 활발해집니다. 이를테면 계절이나 온도에 대하여, 여행한 장소나 직접 본 꽃에 대하여 설명을 해둔 책을 읽노라면 그 장소가 머리에 그려지고 온도와 분위기, 냄새 등이 상상이되어 정말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집니다. 또 내가 살아온 일상에 대하여 대화할 때에는 횡설수설 정리되지 않은 말로 인해 정신없는 순간이 많은데,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의 이야기가 섞일 때면 몹시 곤란해집니다. 이것이 나의 느낌인지 타인의 느낌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휩쓸려 가는 대화에 지쳐버리는 순간도 있습니다. 조용히 글을 쓸 때면 손 끝이 움직이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다보면 정리가 되는 경험이 많아 아마도 글을 통해 담아내는 것이 내게 잘 맞는가보다 생각하곤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홈스쿨이 무엇인가 알아보려 책을 읽다가 ’크리스천 씽킹‘이라는 책을 알게되었고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은 무슨 생각을 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한 권으로 정리해둔 간결하고 잘 정돈된 책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점은 ’존중‘에 대하여 적힌 부분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람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번개도 제가 여기있나이다 하고 울부짖을만큼 크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며, 그 한 사람이 깨닫기까지 하나님은 졸지도 쉬지도 않고 밤낮으로 일하시기 때문이며, 그 한 사람을 위해 대속의 은혜를 주셨기에 쉽게 판단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이번 주에 천둥 번개가 며칠 계속 되어 첫 째 건이가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진을 찍으시나봐. 근데 너무 환해서 내가 잘 수가 없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 번개가 울부짖는 것이 구름과 구름의 부딪힘 너머에 하나님을 향한 ’제가 여기있나이다.‘ 하는 소리라고 하니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세계관의 변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번개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가만히 계시지 않고 밤낮으로 깨닫기까지 일하신다고 하니 무척이나 신뢰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살며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 어려운 점은 밤낮으로 이 사람을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피할 길 없이 계속 마주치는 일은 불편함을 안고 하루 온종일 살아가는 일이기에 잘 해결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6개월을 이곳에서 살며 나는 갈등의 순간에서 얼마나 그 사람을 존중했는가? 생각해보니 무척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실상 사람을 옳고 그름으로 보면서 늘 틀린 사람, 가해자, 게으른 사람, 자만하는 사람 등 꼬리표를 붙인 나의 비평적 안경으로만 그 사람을 보았지 그 사람의 세계관이 어떠하기에 저런 행동과 말이 나오는지는 볼 수 없었기에 늘 평화는 없는 암묵적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크리스천 씽킹에서는 ‘피스메이커’가 되라고 했는데 나는 트러블 메이커였던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것이 삶에서 깨달아진 실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형제님과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3달 전 입소한 형제님은 날렵한 얼굴 속에 묵묵한 모습이 인상적인 분이었습니다. 수학 선생님으로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내오신 형제님은 사회생활 할 때의 이야기들을 주로 해주셨고, 그 속에서 터득한 것은 늘 눈으로 보고 몸으로 해보아야 내 것이 된다는 가치관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가치관을 가지고 공동체의 큰 일거리들을 찾아 함께하는 형제님은 10년 전 첫 방문 이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이곳에 있는 것이 말이되지 않는다며 갔다가 올 해에는 자발적으로 전화하여 입소하기를 희망한 분이었습니다. 시작이 그랬듯 주어진 일은 자발적으로 척척 해내는 형제님과 함께 생활한지 3개월.

어느 날인가 형제님의 날렵한 얼굴 못지 않게 날카로운 말들이 귀에 들어와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아 진짜 할 수 있어요? 그래요 그럼.” “도와주면 고맙죠. 근데 쉽지 않을거예요. 두고 봐요. 그것봐 어렵다니까? 이건 이렇게 하는게 아녜요.“ ”이건 다 같이 하는게 맞지 않나? 왜 이렇게 해요?“ 형제님의 말 속에서 상처를 받는 순간도 종종 있었습니다. 입 밖으로 상처가 불쑥 나와 형제님에게로 닿기 직전, 하나님께서 나의 어린시절을 알게 하셔서 오롯이 내가 어린아이 취급받는 것이 싫기에, 또 미움받기 싫기에 갖게되는 불편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차례 나의 마음이 잠잠해지는 시간을 갖고 나서야 그 형제님의 말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존중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처럼 수 많은 상처를 갖고 자란 성인 아이의 모습과 상처로 인해 왜곡된 색안경을 끼고도 10년의 사회생활을 하며 쉽지 않은 생존을 해오셨을 형제님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처는 피해를 입히고 피해는 내 속에 고스란히 남아 그 자리가 건드려지면 아프지 않기 위해 방어를 하다가 다시 가해를 입히게 됩니다. 나는 방어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종종 가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나의 피해된 모습만 기억하게 되는데 나와 같이 형제님 또한 공동체 안에서 수 많은 일상을 지내며 성인 아이와 왜곡된 색안경으로 해석이 그르게 되어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가치, 피해자의 입장, 사랑받고 싶은 모습,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모습 등 여러 색안경이 두텁게 쌓여 때마다 진짜 형제님과 진짜 내가 만나 대화하는 일들을 왜곡시킬 때가 참 많았습니다. 실상은 여러 일들을 도맡아 하다 한계를 느껴 누군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생각했던 순간들을 형제님은 때로는 날카로운 말로, 때로는 ‘스포츠맨쉽’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출하기 시작했고 그 주에 돌담 쌓는 작업을 하던 중 땀흘려 돌을 옮기는 내 모습이 좋아보인다며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으로 칭찬을 하시기에 들뜬 마음과 동시에 더 잘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칭찬에 움직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칭찬은 즐겁고 좋은 것이나 일적으로 발현되면 서로가 무리하게 되고 요구사항이 들어가 자칫 조종이 될 수 있겠다 느끼니 어린 내가 부끄럽고 칭찬한 형제님이 미운 순간일 때 피해의식을 꺼내어 형제님을 비난하지 않고 존중의 태도로 형제님의 요구가 무엇이었기에 칭찬으로 나에게 다가왔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존중의 안경으로 바라보자 형제님은 힘든 일을 할 때 나의 손길로 돕는 협력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 몸으로 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터. 간식을 드리기는 하지만 형제님은 조금 더 나아가 수고했다는 말이나 시원한 먹거리들, 혹은 사소하게 도우며 함께하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스포츠맨쉽이라는 단어를 통해, 칭찬을 통해 표현했다고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지며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나를 미숙하고 어린 사람으로 만들지 않아도, 형제님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도, 내가 칭찬에 조종당한 피해자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대화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 서로 돕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이 한 사람을 통해 나에게 이런 깨달음 주시는 하나님과 형제님의 색안경을 비난하지 않고 덜어낼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긴 것 같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한 사람을 위해 밤낮 쉬지 않으시지! 무척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지! 존중! 내가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지! 그리고 내가 변함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목표인 회복을 행한 스포츠맨쉽을 보일 수 있지!

생각할 수록 나의 미숙한 부분을 감당해주는 형제님이, 그 손길 한 번을 통해 나를 돕는 순간이, 또 형제님의 미숙한 부분을 감당할 수 있게 도우시는 하나님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서로 공동 생활은 처음이고 살아온 생활 방식이 다르기에 서로의 말투를 쉽사리 오해하고 행동을 오해하는 일들이 존중을 통해, 또 성인 아이와 색안경을 자각함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라 느껴졌습니다. 그러고보면 나는 수 많은 깨달음 가운데서도 잡초와 같은 고집이 살아날 때가 많은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존중이라는 예초기로 고집을 꺾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사도행전 바울의 고백처럼 늘 죄된 생각 뿐인데, 이런 나를 하나님은 일상 가운데 우연이 없는 선택들을 통해 나를 만지고 계심을, 그 하나님을 양분삼아, 내 주변 이들이 나를 담아주고 견뎌주는 순간들을 양분삼아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달으니 이번 주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소중한 주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은데 깨닫는 주와 못 깨닫는 주가 있으니 나는 참 미숙하고 어린 딸인가 봅니다. 늘 나에게 한결같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 분의 피조물인 나를 존중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나라를 존중하는 그 마음이 내게 자라나고 고집은 껶여지는 매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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