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아내의 이야기 - 어린 나의 목소리 -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 이번 주는 환대의 정원과 주차장을 구분짓기 위해 묵직한 돌로 경계를 세웠습니다. 작은 돌로 기초가 잡혀있었으나 시간이 지나 흐트러지고, 잡초에 의해 가려져 정원느낌을 내기 어려웠는데 커다란 돌을 무더기로 옮겨 손수 하나씩 다시 세워주니 꽃들이 안전히 자라는 느낌과 관리된 느낌이 들어 완성도가 높아진 정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성장함에 따라 놓여진 자리를 다시 돌아보고 커다란 돌로 경계를 짓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받아들여서 날마다 완성도 높은 정원이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한 주 동안 어린 초림이를 만나 지내다보니 이제는 나의 행동에서 어린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할 때 그저 들어주고 ‘그랬구나, 정말 그러네?’ 대답해주는 부모의 반응을 듣기까지 말합니다. 또 무자비하게 울어댈 때 마음을 읽어주는 부모의 말이 들리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어 안심한듯 목놓아 울다가 금새 그칩니다. 그러나 울어댈 때 반응하지 않으면 알아달라는 표시로 더 심히 울거나 형태를 바꾸어 징징거리는 말로, 행동으로 부모의 반응을 얻어내려합니다. 반응하지 않는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는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내가 어디까지 수용되는지 알지 못해 늘 전전긍긍하며 방법을 바꾸어야하고, 어떤 때는 수용되었다가 어떤 때는 거절되는 모습에 일관적이지 못해 신뢰를 좀처럼 쌓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어린아이 짓을 해놓고도 눈치를 보거나 내 마음이 아닌 부모가 하는 반응에 맞추어 움직이는 아이가 되어 점차 자신을 잃어갈 것 같습니다. 언제 부모가 떠날지 알 수 없어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를 유일하게 받아주고 수용해주고 반응해주던 이의 상실감으로 나타나 다른 애착을 만들고자 애쓰지만 생각해보면 나를 낳은 부모 외에 누군가가 나를 수용하고 받아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한 주동안 제가 만난 어린 초림이입니다. 한 번은 남편에게 말을 할 때에 마치 어린아이처럼 내가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말하다가도 그에대한 사실적인 대답이 돌아오면 화를내며 그저 들어만 주면 된다고 감정섞인 말을하여 다툴 뻔했는데 일순간 자동차 뒷자석에서 둘째 단이가 ‘엄마! 엄마! 엄마! 저기 경찰차야! 경찰차가 두 개야! 도둑잡으러 가나봐!‘라고 하는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단이에게 ‘아니야, 이 시간이면 저녁먹으러 가는 것일거야.’ 하지 않고 ‘어머 그러네? 두 대가 가는구나. 삐용삐용 소리가 나니까 정말 멋지다. 아마도 저 소리를 내며 도둑을 잡으러 멋지게 달려가는 건가봐.’ 하고 말해줍니다. 그 때 단이는 만족하여 엄마아빠 들으라고 쟁쟁거리던 말을 멈추고 다시 창밖을 응시합니다. 감정이 가라앉고 생각해보니 남편에게 내가 지금 그저 들어달라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을까? 온갖 말을 쏟아내며 어때? 라고 물어놓고 왜 그냥 들어만 달라고 했을까? 의문을 갖다가 어린 초림이가 나왔구나. 그래서 그저 반응해주고 들어주는 남편을 기대했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이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니 그제야 웃으며 ‘아이고 그랬구나. 아까는 대답을 해달라기에 열심히 말했더니 갑자기 짜증내어서 나도 짜증났는데 이제 이해가 되네. 들어줄게.’ 하고 말하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몹시 든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단이도 이런 기분으로 뒷자석에 앉아있었겠지요? 



 또 한 번은 공동체 형제님과 대화를 하는데 이곳에서 별명이 ‘하얀 머리 삼촌’이신 젊어서부터 백발을 가졌던 형제님입니다. 형제님은 통통튀는 성격으로 가끔 종잡을 수 없는 분이신데 이 분과 지내다가 또 어린 초림이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하얀머리 형제님과 지낼 때 하루마다 제 행동이 바뀌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어떤 때는 몹시 즐겁게 장난하며 놀다가, 어떤 때는 이유없이 눈치를 보며 혹시 화가나지는 않았나? 생각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처음에는 ‘그 형제님이 너무 통통 튀는데다 종잡을 수 없으니 내가 이러는 것이 당연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의 책임을 맡아 지내는 한 형제님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얀머리 형제님이 어떠하든 늘 허허 웃으시고, 때때로 놀랄 선택을 하는 하얀머리 형제님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고 다음에는 이렇게 해달라 요청을 하는 모습이 어른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마치 벽 끄트머리에서 바깥을 향해 눈만 내어놓고 내다보며 오늘은 이럴까? 저럴까? 눈치보는 어린아이 같고 때에 따라 기분에 맞추려 신경쓰는 모습인 것을 보고 이것이 어린 초림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상대에게 일관되기를 바라기보다 내 마음에서 눈치보는 아이를 불러 무어라 말을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안심할까, 상황에 개념치 않고 자신의 모습을 보이도록 격려하기를 얼마나 해야할까 고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고민에 깊이 빠져들 때 즈음 아이들과 읽던 동화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이 ‘괜찮아, 아가야.’ 라는 책입니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가며 마주하는 세상이 일순간 두려운 대상으로 느껴질 때마다 집이 도깨비로 변하기도 하고, 바다가 상어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 때마다 아이에게 ‘괜찮아, 아가야. 도깨비는 없단다. 이리 오렴 꼭 안아줄게.‘ 하며 위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나의 아이들에게 읽어주다 문득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유아적인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다시 오는구나. 책을 읽고 또 읽게됩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한편, 이런 것들을 부정하는 어른 나를 만날 때입니다. 어린 초림이를 불러 겨우 벽 뒤에서 나오나 싶으면 앞을 가로막고 서서 ’나는 어른이라 이정도까지는 필요없어. 괜찮아.‘ 라는 생각으로 어린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위로받고, 돌봄 받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고 나는 어른이니까, 나는 컸으니까 괜찮다며 거절하는 나의 모습. 공동체 식구들이 나에게 ’이거 하나는 너 해라. 너 것도 챙겨가라.‘ 하면 나도 모르게 ’아녜요. 저는 괜찮아요.‘ 하며 거절하는 나를 보게 될 때 무척이나 무안하고 진심을 거절한 것 같은 미안함과 솔직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발밑부터 정수리까지 일순간 잠수라도 한듯 잠식되어갈 때 되려 더 오버스럽게 행동하고 말하게 되어 이런 나를 가려가는 모습을 거울에 비친듯 자각하노라면 시간을 멈추고 혼자 어딘가로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정신없는 모습이라니!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하다니! 그래서 너는 진짜 원하는게 뭔데! 라는 질책어린 마음으로 터덜터덜 어두운 굴속에 들어가 멈춘 시간 동안은 바깥을 신경쓰지도, 바깥에서 나오고 싶지도 않아집니다. 어두운 곳에서 쭈그리고 주저 앉아 아주 커다랗게 노래를 틀어놓고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갈 때 오르락 내리락하는 음률에 요동치는 내 감정을 내어놓고 흐르는대로 이 순간이 노래가 끝남에 따라 그저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게됩니다. 그리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게 됩니다. 



 또 한 번은 공동체의 책임을 맡아 지내는 형제님을 대하다가 떠날까 두려워하는 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은 겉으로는 경상도 사투리로 무심한듯 보이지만 속이 무척 여리고 슬림한 체형이지만 마음은 널찍한 분입니다. 형제님은 이 공동체에 오는 모두에게 담아주기를 잘 하십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랬구나 반응해주고, 무슨 말을 하던지 듣고 수용해주는 모습이 나에게도 올 때 무척 편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것이 나에게만 오기를 바라는 독점욕과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을 발견하였기에 왜 그럴까 고민하던 중에, 첫째 건이와 둘째 단이와 함께 책상에서 아이들이 뛰어 나에게 안기면 받아 안고 한 바퀴 돌아 다시 내려주는 놀이를 했는데 그 때의 아이들이 짓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뛰기 직전 내가 받아줄 것을 알고 호기어린 눈빛과 의기양양한 말투로 ‘조금 더 뒤로 가봐 엄마!’ 하기에 뒤로갔더니 다리에 힘주어 점프하여 내게 안기는 아이를 보며 받아내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뿌듯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마 제가 형제님에게서 느꼈던 마음은 이런 수용에 기대고 의지하는 어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늘어놓아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너는 괜찮아. 그저 괜찮아. 해주시는 담아두기가 내게 올 때 이전에 받고싶었을 의존하는 마음, 수용되는 마음을 형제님에게서 바라던 나의 모습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으나 시간이 갈 수록 나에게만 주어지기를, 또는 언젠가 이 대상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내게 남게 되었던 것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이 마음은 엄마, 아빠에게로 향하여 그 분들께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너무 바쁜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두 분의 갈등만으로도 벅찼던 때에 나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어 지나온 것이 지금은 무척 후회됩니다. 젊었던 엄마, 아빠의 얼굴을 마주하고 조금이라도 더 말해서 얻어낼 것을,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달라고 때라도 부려볼 것을, 그 때에는 착한 딸이 되고싶어서 성숙한 딸이 되고 싶어서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 이제와 다른 이에게 보여지니 너무 부끄럽습니다. 나도 나의 아빠에게 "아빠! 나 받아줘! 아빠 조금만 더 뒤로 가봐!" 웃으며 훌쩍 뛰어내릴 수 있는 철부지 어린 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 커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는 어른이 되기 전에 아빠 옆에 앉아 두유를 마시며 커다란 아빠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걸어갔던 그 때에 내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이 조금 더 여유있는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젠가 아빠에게 이 말을 하기까지 이 감정을 깨닫도록 완전한 타인인 내게 담아두기를 통해 형제님의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고 수용해주고 들어주었던 그 순간들이 어린 내가 나올 수 있는 아주 든든한 받침돌이요 디딤돌이 되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형제님을 통해 받은 든든하게 받쳐진 느낌이 너무 의존하는 길로 가지 않게 그저 내가 나올 수 있는 길이 되어준 것에 감사하며 잘 성장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당시 아빠나 엄마에게 버려질까 두려워 하지 못했던 아주 아쉬운 마음임을 깨닫습니다. 또 이전에 사모님께서 새벽예배 시간에 기도하시며 들려주셨던 것처럼 의존해야할 때 의존하지 못했던 순간에서 나오는 행동이며, 보호받아야 했을 때 보호받지 못해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후회의 눈물과 함께 이곳에 아쉬운 말들을 쏟아봅니다. 



 수 없는 모습의 초림이는 한 나이에서 오는 다양한 결핍이 있었음을 깨닫고 난 후, 그 결핍을 인정하고 다독이기란 매 순간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부정하는 생각을 버리고 솔직히 나의 욕구를 표현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저 감당하고 견디는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나의 내면이 자랄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 없이 사람을 마주할 때에는 미움받을까, 버림받을까 염려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람을 만나게 될까요? 제게 너무 어려운 일이기에 이 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더없이 고요하게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매 순간 나에게 번뜩이며 여러 모습을 한 아이를 보여주시고 다독일 말씀도 보여주시는데 내게는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내가 깨닫는 순간까지도 기다려주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 내 모든 행동이 향하기를, 매 순간 깨닫고 그 때마다 하나님을 찾아 그 분께서 주시는 순간의 마음과 성장하기까지의 만지심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환대의 정원 돌담이 무너져있고 잡초에 가려져있었던 것처럼 내 인생에도 무너진 자리가 있음을, 그리고 작은 돌로 두었던 기초가 아닌 이제는 더 큰 돌로 든든하고 더 완성도 있는 마음의 정원을 만들어주시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뿌듯한 정원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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