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아내의 이야기 - 어린 나를 마주하며 -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올 해 라파마을 텃밭에는 수박,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당근, 상추 등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물을 주고, 잘 자라도록 곁순을 따주고, 지지대를 세워 줄로 묶어주면 햇볕과 물을 머금고 튼실하게 자랍니다. 작물은 잘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이 목적이기에 주변 작물과 같이 두어도 되는지, 이 다음에는 무엇을 심을지를결정하는 농부의 마음에 따라 위치도 손질 법도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정하신 위치와 손질 법도 다 다른 것은 한 사람에게서 맺는 열매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공동체로 지내면 나와 가족이 아닌 사람과 24시간을 함께 살게됩니다. 밭에 여러 작물을 위치를 정하여 모아두고 한 밭이라고 하듯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을 갖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하루를 보내지만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여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나고 자라면서 얻은 생존 방법은 다 달라서 본인이 원하는 욕구에 따라 그 욕구를 얻기 위하여 취하는 행동도 모두 다릅니다. 어떤 이는 인정받기를 원하여 일을 많이 맡아 하고, 어떤 이는 사랑 받기를 원하여 모두에게 잘 해주고, 어떤 이는 효능감을 위하여 책임감있는 일을 많이 맡고, 어떤 이는 친밀감을 원하여 타인에게 맞춰 대화를 하고, 어떤 이는 소속감을 원하여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이 다름을 조율하는 것이 대화이기에 대화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사모님의 교육을 통하여 배우던중이었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가족 안에서 살았을 때, 그 가정안에서의 규칙이 다 다르기에 모두에게 '이것이 옳아!' 하는 반응을 하여 옳고 그름으로 타인을 대하지 않도록, 서로 대화를 할 때 타인을 향해 비난, 경멸, 방어, 반격, 담쌓기라는 형태의 언어나 행동을 취하지 않고 아이메세지를 사용하여 내가 느낀 감정, 생각, 기대를 사용하도록 배우고 있던 중 이것들이 없이 살아가는 삶에서 나는 나로서 온전할 수 없고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마주하게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혼란을 겪는 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마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부모를 마주하여 부모의 시선으로 나를 알아가듯이 가족을 벗어나 낯선 이곳에 놓인 저 또한 내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마주하는 사람들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기라면, 응당 사랑 받고 보호 받고 의존하며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하지만 라파에서 살아가는 32살의 저는 어른이기에 응당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사랑 받고 보호 받은 경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어야 하는데 이곳에서 마주한 저는 너무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내가 마주한 어린 나를 알게 된 과정은 타인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내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며 기준을 벗어나는 타인을 볼 때, 내 기대에 맞게 움직여주지 않는 타인을 대할 때였습니다. 모든 것이 내 중심이 되어 살아야 하는 어린아이. 어린아이 중심으로 움직이는 부모와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이곳에서 다시 가정을 재현하듯 나는 모든 이들이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나에게 맞추어 행동해주고, 내가 말한 것들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그 표출은 타인에게 '나는 할 수 없어요. 대신 해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은연 중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났고 이를 통해 완전히 기대고 의존하는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 나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타인을 나의 편 만들고자 한 마음, 한 의견이 되기까지 수 없이 많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수업 때 들었던 하지 말아야 할 옳고 그름을 가져왔고, 나의 편 만들고자 편이 아닌 사람을 향해 비난하고 담을 쌓고, 나만의 규칙을 적용시키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두려웠던 것은 이 시도 끝에 내가 나의 편 만들기, 나에게 힘이 되어줄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글로 작성하는 지금 얼마나 이상한 것이었는지 알지만 그것들이 무의식중에 드러나 행동했을 때에는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당연시 생각될 만큼 아주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통해 잘해주며,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타인에게 호소했던 나의 모습을 보면 이 생활 방식이 얼마나 익숙했고 또 유일하게 성공해본 나의 생존수단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이런 수단을 갖고 살면 누군 가는 불편하기 마련인데, 저를 불편하게 생각해주는 이가 있었기에 이 사태에 대하여 눈 가리고 그대로 살지 않고 알고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의 수업을 통해 처음 마주한 어린 나. 어린 나를 인정하고 들여다보기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어린 나와 어른 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서 그 사이에 돌을 쌓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무척 많은 반발심과 반항심, 부인, 변명과 핑계, 회피, 외면의 돌을 하나씩 내려놓아 어린 나를 가려갈 때 즈음 완전히 가려져버린 그 아이를 보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을 느끼며 이대로 뒤돌아 외면하며 살고자 할 때, 나를 붙잡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해주는 말이들려왔습니다.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매님이 돌담 뒤 어린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어른 나를 향해 "이대로 우리가 이렇게 계속 친하게 지낸다면 무척 위험할 것 같아요." 라고 이야기했고, 그 뒤 사모님이 어린 나의 손을 잡고 어른 나에게 "초림 자매님, 자매님이 사람들 많이 의존하는것 알고 계세요? 그리고 의존하면서 동시에 내 편을 만들고자 하는 것도 알고계시나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른인 나를 공격하는 듯 들렸습니다. 뒤돌아 마주하기가 싫었습니다. 어른인 내가 아니라 어린 나의 편에 서서 나를 움직이는 그 말들이 너무 싫어 두 사람을 미워하려 했습니다. '왜 위험하지? 의존하면 왜 안 되는걸까? 내 편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가? 이대로 살고 싶어. 이대로 변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뒤돌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이 가득차 머리가 무거워 견딜 수 없을 즈음 입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갔고 그 틈을 비집고 많은 말들을 내뱉을 때에는 두 사람을 미워하는 말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대로 두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어린 나를 마주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간다면 나는 또 다시 반복하는 삶을 살겠지. 몸은 어른인 채로 마음이 어린 아이인채로 의존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사랑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속이고 의존하여 내 편 만들면, 그 관계는 오래 갈 수 있을까? 내가 늙어 할머니가 되어도 이런 방법들이 지속될까? 수 많은 생각 끝에 나는 무거운 어깨와 발끝의 방향을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더 돌아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었고 그 두 사람을 끝까지 뒤에 둘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의 편에 서서 이 아이를 봐 달라며 이야기하는 그 두 사람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편이 되어주고 있음을, 어른인 나의 안에 살고 있는 약하디 약한 어린 나를 유일하게 봐주는 사람들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미운 것이 아니라 정말 나를 사랑해주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응원해주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뒤돌아 마주한 두 사람에게 비난의 말도, 질책의 말도 들리지 않고 평상시와 다를바 없는 대화가 오고 갔고, 그저 두 사람은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보며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눈빛 만큼은 내게 '이 어린 아이를 보렴. 너무 사랑스럽지만 보호 받을 때 보호 받지 못했고, 의존 해야할 때 의존하지 못하여 여전히 네 안에서 살고 있단다. 어른인 네게 계속 이 아이가 보인다면 앞으로도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할거야. 어른인 너의 삶을 잘 살고 싶다면 이 아이를 만나 위로해주어야 해. 그리고 어린 네가 아니라 어른인 너로 살아가기를 바라.' 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 눈빛을 보며 조금씩 내 앞에 쌓인 돌들을 치울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나씩 쌓았던 돌을 내리며 마주해가는 어린 나의 머리카락이 보일때 즈음 이 아이의 키가 생각보다 작음을 실감했습니다. 내가 무릎 꿇고 주저 앉아야 마주할 수 있을 그 어린 아이. 돌을 치울 용기에 더하여 이 아이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내려놓는 돌들이 더 낮아졌을 때 즈음 마음으로'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향해 도와주세요. 어떻게 할까요?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떠올리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서 위로하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서 마주할 용기를 주시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몇 살인지도 모를 어린 나는 예전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파마한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고 끈 나시 티와 반바지를 입고 의자에 앉아 의젓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사랑스러운 맑은 눈을 앞을 향해 보이며 카메라를 응시하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 즈음부터 어린 나는 가정 안에서 생기는 마찰을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약한 엄마의 편이 되어야 했고, 엄마에게 도움이 되어야 했습니다. 엄마에게 의지할 딸이 되어주어야 했습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사랑 받고 보호 받고 의지하기보다 내가 의지할 대상이 되어주고 위로할 대상이 되어주어야 했던 그 시절의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마찰을 어찌할 바 없고 어느 것도 해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이 평화롭기를 바라며 끝내 미소지어야 했던 때, 내가 위로해주면 다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하며 위로의 말을 건냈던 때, 내가 도와주고 내가 의지할 수 있게 의젓해지면 엄마가 힘이생겨서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
그 때의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향해 그 때하지 못했던 말을,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 도와주세요. 내가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웃어주고, 위로해주고, 의지가 되어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나를 좀 도와주세요. 내가 할 수 없어서 그런데 대신 위로좀 해주실래요? 대신 도와주실래요? 대신 혼내주실래요?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가장 하고싶었던 그 말을 아직도 하지 못해 무슨 말이 하고싶었을 까 고민했을 때 비로소 작게 새어나오는 소리로 전해보며 이곳에 적어보는 말.
"엄마, 아빠 나를 좀 지켜줘!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해? 엄마, 아빠는 언제 괜찮아져? 우리 이대로 괜찮을거야?"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던 그 순간에 가장 듣고싶었던 말은 "딸, 괜찮을거야. 엄마, 아빠가 할게. 해줄게. 다 괜찮아." 한 마디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때 어린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끝없는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해 늘어놓은 여러 장의 카드더미들 속에서 앉아 무릎을 끌어 안은 자세로 고민하는 나에게 진짜 답이 찾아지기를.
주저 앉아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아직 다 알 수 없어서 고민하는 나의 모습과 여전히 그 때의 얼굴을, 미소를 하고 나를 마주하는 어린 나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나의 현실임을. 나는 이제 이 어린 모습을 그만두고 어른인채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야 함을. 그리고 정말 내가 필요했던 온전한 위로를 하나님께서 내게 해주시고, 나도 나에게 해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때 우리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