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홈스쿨 이야기 - 덖는 재미 -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 옥천에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의 생을 통해 그 시절을 돌아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그들이 표현한 나라 사랑이 모여 오늘 우리의 하루가 되었음을, 그저 사회적 아픔을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을 다 바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그 마음이 오늘의 우리가 되었음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덖는 재미가 아닐까, 뜨거운 불에 달군 솥 안으로 감 잎과 뽕 잎을 넣어 덖어대면 맛 그대로 담긴 말린 잎이 되듯이 내 마음을 그대로 덖고 덖어서 응축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덖는 재미.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마음들을 지나치지 말고 잘 응축해서 주변에 주는 덖어진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홀로 보내는 시간이 참 많았습니다. 일 나간 부모님, 할머니댁에 맡겨졌으나 일하러 나간 할머니와 삼촌들. 그 빈 시간은 하교 후 문구점에서 다이어리를 사며,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보냈습니다. 그 사이 쌓여만 가던 외로움은 구석에 먼지 앉을 틈도 없이 날로 새롭게 쌓여만 갔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의 외로움만 알던 제게 남편이 말하는 외로움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였습니다.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홀로 버스타고 학원에 다녔다는 남편. 혼자서 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타인의 손에 맡겨질 때가 많았으며 그 속에서 끝없는 배움을 다 받아들이고 결과를 내야만 했던 남편. 남편은 그 바쁨과 쉼 없는 시간 속에서 마음 둘 곳 없어 외로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다름은 우리의 결혼 생활에도 고스란히 들어와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아서 제 머리는 같이 있고싶다고 말하나 몸은 익숙한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습니다. 남편은 머리로 혼자 쉬고싶다고 말하나 몸은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를 원했습니다. 익숙함에 쌓여 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타협점은 어디인지 알 길 없이 지내다보니 우리는 참 서로 다르다고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중간에 아이들이 들어와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해주기 바빴습니다. 첫 째 건이는 아빠와의 시간이 늘 부족해서 라파에 온 이후 날마다 아빠를 찾았고, 아빠와 무엇이든 같이 하려고 했으며 혼자 노는 것 보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같이 하기를 원했고 둘 째 단이는 혼자 조용히 놀다가 가끔 우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건이가 "아빠! 아빠!" 하고 외치는 소리에 남편이 슬쩍 웃으며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찾는 아이의 부름에 반응하는 아빠. 그리고 손 잡고 걸어가며 "건아, 아빠는" 하며 멀어져만 가는 둘. 두 사람이 함께 어딘가를 다녀오면 건이는 꼭 집안에 들어와 입을 삐죽이며 닭 부리를 흉내내면서 "엄마! 내가 닭을 봤는데 입이 으릏게 뾰족한데 아래 부리가 더 튀어 나와있었어!" 라거나, "엄마! 저 쪽에서 하늘소를 봤는데 등이 검은 색이고 만지면 이렇게 뽀록 뽀록 소리를 내!" 라거나, "엄마! 내가 아빠랑 오토바이타고 나갔다 오면서 보리 보고 노래를 만들었어! 들어봐!" 라며 신바람 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들이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없는 시간에 내가 할 일을 하고 싶어 딱 집중하려던 타이밍에 나에게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알았다고 어줍잖이 대응해주고 돌아서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워야 할 대목에서 왜 귀찮다는 마음이 들지? 내가 형편없는 엄마로 느껴져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목사님과 상담을 하는데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서 위로해주세요. 마음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를 만나서 그 때 들었던 마음들을 위로해야해요." 라고 말씀해주셔서 잘 이해는 안갔지만 곰곰히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운 나는 이미 익숙해졌는데 왜 위로해야하지? 엄마, 아빠가 갈 때 많이 울었었는데 그 때 나를 보고 뭐라고 말해줘야 하지? 고민하던 때 목요일 밤 침묵 기도를 하려고 단이를 안고 있는데 일순간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출근하는 엄마 아빠를 보며 할머니 집에서 무척이나 울었던 그 날, 그리고 내가 다음 순간 헤어질 때 우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던 그 날. 엄마 아빠가 가시면 한 동안 오지않아 할머니 댁에 남겨져 혼자 감당해야할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체감한 그 어린 초림이는 이후 엄마 아빠와 헤어질 때 울지 않고 버티게 되었습니다. 울음을 삼키고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며 돌아오면 좋고, 가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버티며 살아온 제게는 날마다 나에게 달려와 본 것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들어달라고 들들 볶아대는 건이의 울음과 말소리는 지치고 귀찮은 일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들어줘야 하는 의무가 마치 내게 없는 듯 행동하고, 아이 혼자 해결하기를 은근 바라고 기대하며 건이에게 외로움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혼자 울음을 그치고 다른 것으로 채우며 나를 찾아주지 않게 되기를 바랐고,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를 발견하고 침묵 기도 시간에 안고 있던 단이가 어린 내가 된 듯 눈물이 터지며 안아주니 마음이 포근하고 참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에 될 일은 아닌지 머리로는 '이렇게 해봤자 안 될텐데, 그래도 안 올텐데 뭐.' 라며 포기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하루를 살던 저에게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 "엄마!". 이 소리를 날마다 듣다보니 일순간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나에게 오는 것이구나. 누구나 건이의 엄마자리에 앉는다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거구나. 잘 하고 못 하고가 아니구나. 



 저에게 건이는 날마다 방법을 알려주는 아이입니다. 조곤 조곤 엄마를 찾아주고, 울며 불며 엄마를 찾아주는 나의 아이. 엄마가 있음을 확신하고 집으로 들어와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엄마!" 하며 불러주는 나의 아이. 문득 달려오며 이유도 없이 "엄마! 이쁜 얼굴 좀 보자" 라며 그저 나를 보고싶어해주는 나의 아이. 나를 들들 볶는다고 생각하며 귀찮게만 들렸던 그 울음과 말소리들이 이제는 내가 들어줘야 하는 말, 내가 반응해줘야 하는 말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건이를 통하여 다른 것이 첨가되어 지지고 볶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를 온전히 덖는 재미를 알아갑니다. 아! 이것이 엄마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덖고 덖어서 진짜 엄마가 되게 해주는 말이구나! 이것이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구나! 아이를 통해 첨가되지 않은, 그저 나를 만들어가는 사랑을 알아갑니다. 나이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사랑 주는 법을 알아갑니다. 이런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갑니다. 나를 이렇게 만드신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는 것도 알아갑니다. 저는 아이를 통해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우고,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엄마입니다. 



 이 시기즈음 홈스쿨을 배우며 홈스쿨은 온 가족이 떠나는 믿음 여행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아이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해야하고, 엄마 아빠에게도 좋은 것이 홈스쿨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배움이 건이를 통해 제 삶에 경험으로 와닿습니다. 내 어린 시절에는 이런 덖는 재미를 알려줄 엄마의 자리가 비어있거나, 함께해도 건이처럼 말하지 못하는 때가 참 많았는데 그 때 못했던 것들을 건이와의 관계를 통해 회복하니 가족이라는 것은 나에게 참 좋은 여행이 되었습니다. 또 나를 키울 때 어쩔 수 없이 비워야만 했던 그 자리가 나의 엄마 아빠에게도 참 슬픈 시간이었겠구나, 딸을 두고 돌아서야만 했던, 돌아왔을 때 건이처럼 밝게 "엄마!"하고 부르지 않게 된 어린 나를 봐야만 했던 엄마 아빠의 그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제게 가족은 외로움의 자리, 중독으로 힘들고 지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된 엄마인 나는 엄마의 자리가 무엇인지 알지못해 헤매고 어렵던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그저 두지 않으시고 모든 시간이 지나 좋은 여행이 되게 하셨습니다. 라파를 만나 외로움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깨닫고, 중독으로 부터 자유함을 얻기 위해 치유되어져 가며, 온전히 나를 성숙하게 하는 덖는 재미를 알게 해주는 이 시간들이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엄마를 준비하거나, 엄마로 살고 있는 모두에게 아이의 목소리가 온전한 나를 만들어가는 덖는 재미로 들려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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