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가족, 라파 입소 후 첫 위기! -2편-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저희는 요즘 두릅 수확이 한창입니다. 공동체 형제 자매님들과 두릅을 수확하고, 택배나 장터에서 판매하는 일을 하며 한 주가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낍니다이 또한 지나가는 일, 하루의 삶에 충실하며 새로운 한 주도 잘 지나가기를 소망합니다



 



 



목사님의 불호령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차, 논점을 놓쳤구나. 술만 안 마시면 다행이 아니구나!' 그렇습니다. 남편 준 형제는 게임과 도박을 하며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밤새 옆에 핸드폰 게임을 켜놓고 잠들고, 게임 유튜브를 보다 잠들고, 게임 머니를 충전하고, 스포츠 도박을 하면서 남몰래 2~10만원씩 충전하여 돈을 벌던 그 습관은 남몰래 술의 그림자에 숨어 다시 나올 때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 교묘한 게임과 도박은 번쩍이는 눈을 하고 숨 죽인 채 다가와 나의 숨통을 노렸습니다. 



 



"아이 아빠로서 이게 할 짓인지 생각해봐! 나는 이 교활하고 비상식적인 과정 자체가 재발이라고 생각하는거야! 준 형제는 이런 중독적인 생각을 도끼로 찍어 내버려야 하는거야!"



 



이곳은 아주 추운 엄동설한, 화목 난로를 태우기 위해 낮이면 도끼로 나무를 팹니다.  일상의 손짓은 우리에게 중독에 대하여 일깨우는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힘주어 내리치는 도끼 끝에서 단단하고 나이든 원형 나무토막은 쩍 갈라지며 옆으로 나동그라집니다. 그 나무토막은 태워져 따뜻함을 주고 한 줌 재가 되는 줄만 알았는데, 오늘은 저희에게 찍어 내버려야 하는 중독이 되었습니다. 만약, 중독이 내 눈 앞에 천 년된 나무처럼 무성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아마 저는 너무 커버린 상실감에 주저앉았다가 나를 고통 속에 살게 한 원망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 도끼를 사서라도 찍어 없애버리려 할 것입니다. 정말 중독이 내 눈앞에 사물로 보이기만 한다면, 참 좋겠습니다. 



 



준 형제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본인에게 숨어있던 게임과 도박을 찾아내어 고쳐야 할 문제임을 직면했습니다. "제가 다중 중독이었네요. 알코올만 심각한 줄 알고 게임은 아닌 줄 알았습니다. 모두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은 제 귀에 그저 한 낱 변명으로만 들렸습니다.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또 죄송하다고 말하면 끝이구나, 괴로웠습니다. 일그러지는 저의 얼굴에 옆에 계시던 사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매님, 병원에 있을 때 준 형제는 중독자라는 이유로 가족이 다친 소식 듣고도 와보지 않고, 연락해도 시큰둥한 목소리에 많이 외로웠을거예요. 준 형제님 엄청 외로웠죠? 그 때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게임이 드러난거예요. 지금 드러난 것이 감사하네요."



 



중독에 가려진 문제는 게임과 도박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 저도 있다는 것을 들으며 한참 고민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남편이 원망스럽던 세월을 무관심으로 되갚아 주고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대전까지 달려올 마음이 없는 것을 아이 둘 육아로 힘들다고 핑계대고 가지 않았습니다. 핸드폰도 카드도 없던 남편이 음료수라도 마시고 싶은 날에 전화하면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또 술 마시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나 하고, 돈만 가게로 이체해주고는 안부도 없이 끊었습니다. 내가 당한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감정이라고 치부하며 서로를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싹에서 묘목으로 자라가는 무관심을 저는 방치했습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옆 자리 사람에게 공기계를 빌려가면서까지 게임을 하고, 연락도 오래 되지 않았던 지인에게 돈을 빌려 게임에 충전을 했습니다.



 



중독은 상처를 타고 들어옵니다. 중독은 남편의 외로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내게로 오라고 손짓하며 내 남편을 품에 안고 달래주었습니다. 그 모습은 아내인 내게 너무 큰 수치로 다가왔고, 내가 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중독으로 달려간 남편에 대한 원망이 몰려왔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마치 내가 털이 덮수룩한 곰이 되어 눈물흘리며 교활한 여우의 눈짓, 손짓을 허망하게 보는 듯 했습니다. 그제야 우리 사이를 어지럽히는 것이 남편의 문제만은 아닌, 나의 문제도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독자의 아내로 사는 것은 중독에 대한 화, 원망도 재발 앞에서 모두 내 탓으로 돌리게 되어 나를 갉아먹는 것입니다. 외로움에 대한 부분을 알고, 그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준 형제 나름대로 외로움에 대한 처치를하며 아내로서 나는 의심보다 믿어주는 연습과 중독자라는 이유로 거두어버린 관심들을 다시 돌려주는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서로 자신을 탓하며 주저 앉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나도 치료가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술만 안마시면 되는 것이 아닌, 돌아온 남편을 맞이할 아내로 나도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았을 때, 다시 직면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라파는 재발하면 퇴소됩니다. 다시 올 마음이 있고 자발적 치유를 향한 마음이 있을 때 6개월 후 받아주신다고 합니다. 눈 앞이 아마득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아이들과 남아있을 나의 모습, 바깥에서 허망하게 보낼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이들 눈 앞에서 아빠를 쫓아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이 중독이 난 너무 싫어.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칼자루를 내게 쥐어주는지 알아? 중독은 주변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하, 준 형제는 앞으로 라파 화목난로에 쓸 땔감 해오도록 해. 이 추운 날 다친 손 재활되기도 전에 구부러진 채 얼어붙을까봐 걱정했는데 차라리 그 손가락 보면서 중독에 대한 경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행이야. 퇴소는 안하겠지만, 본인이 얼마나 주변에 아픔을 줬는지, 내가 찍어내버려야하는 중독이 뭔지 깊이 반성해."



 



여전히 나만 생각하고 있을 때, 목사님께서도 얼마나 이 일로 고심하고 괴로운 마음이신지를 들으니 눈물이 났습니다. 아내인 나는 어떤 것도 책임져 줄 수 없고, 치료해줄 수 없어 그저 눈물만 흘릴 때 우리 서로가 그 때 왜 그랬을까, 모두 내 탓이라며 물끼얹은 난로처럼 힘 없이 꺼져만 갈 때 치료를 위한 길을 알려주시는 목사님이 계신다는 것이, 다시 불을 지펴 타오르게 하도록 기도함으로 함께 고민하고, 중독 치유 사역이라는 책임을 가지고 알려주시는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 중독이 껴있는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진정한 부부의 삶을 되찾을 때까지 나를 알아가고 서로를 알아가며 치유되어져가는 이 곳.



 



라파에서의 첫 위기는 남편의 다중중독과 아내로서 치유할 것들을 잔뜩 안겨준채 돌아가지 않을 정류장이 되어 우리의 뒤에 남아있습니다. 이 날을 기억하며 새로운 정류장은 한 층 희망적이기를, 그 때에는 우리가 더 성장해있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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